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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경단 Nov 21. 2022

결혼이란 어떤 사람과 하는 걸까?

P은행 다니는 직장여성 최민경입니다 09

“우리, 결혼… 할까?”


엉?

결혼?


민경은 순간 당황해서 두뇌가 정지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프러포즈인가? 아니, 근데 보통 프러포즈할 땐 한쪽 무릎을 꿇고, 반지를 준비해서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무릎 꿇는 것 까진 우리나라 정서에 좀 오버라고 해도 보통 반지는 준비하지 않나? 이건 프러포즈가 아니라 프러포즈 예고편인가? 그런 것도 있나? 아니면 이건 대체 뭐지?


“갑자기?”


혼란스러운 감정을 간신히 잡고 입을 뗐다.


“갑자기라니. 우리 이제 거의 1년 가까이 만나고 있는데.”


재훈이 슬쩍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음... 이게 프러포즈라는 거야? 반지도 없이?”


이번엔 재훈이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반지? 아.. 그 생각은 못했는데. 난 그냥 민경이랑 있으면 너무 좋아서.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꺼낸 거였는데, 반지까지는 내가 생각을 못 했네.”


민망한 표정을 짓는 재훈을 보니 민경은 살짝 멋쩍어졌다.


“자기야, 결혼이라는 건 쉽게 이야기 꺼낼 일이 아닌 것 같아. 결혼은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시점이잖아. 한번 하면 돌이킬 수도 없고. 물론, 뭐 이혼하거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를 갖고 오는 중대한 일이니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당연히 신중하게 결정해야지. 내가 가볍게 던진 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우리 둘 다 고민을 많이 해 보고 결정하자는 거지. 단순히 같이 있는 것이 좋아서 결정할 문제는 아니란 얘기야. 나도 자기랑 있으면 너무 좋지만, 고려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두 사람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집안과 집안의 만남 느낌이잖아. 각자의 집안이 너무 다르면 그것도 좀 힘들 거고, 결혼할 준비는 되었는지 이런 것도 생각해야 하고. 심적으로 현실적으로 전부 다.”

“이제부터 알아보면 되는 거지.”

“응, 뭐.. 그렇지. 아무튼 내 말은 충분히 고민해 보고, 신중하게 결정하잔 얘기야.”


그날은 어딘가, 어색한 기운이 흐르는 가운데 헤어져서 각자 집으로 갔다.



민경은 재훈이 결혼 이야기를 꺼낸 이후, 본격적으로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결혼이란 어떤 사람이랑 하는 걸까?

이 사람이다, 싶은 느낌이 오는 사람이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옆에 있는 사람과 물 흐르듯이 하게 되는 걸까?



민경이 같은 지점에서 근무하며 함께 점심을 먹는 동료 3명은 모두 기혼자로, 남자인 김 과장, 여자인 진대리와 윤 과장이었다. 윤 과장이 제일 선임, 그다음 김 과장, 진대리 그리고 민경 순이었다. 밥을 한 술 뜨며 민경은 직원들에게 물었다.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언제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어요?”

“어머 민경 대리, 남자 친구랑 결혼 얘기 나오나 봐.”


결혼한 지 1년이 채 안 된 민경보다 두 살이 많은 진대리가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지난주에 남자 친구가 갑자기 결혼 이야기를 꺼내긴 했는데 전 생각도 못하고 있어서 좀 당황했거든요.”

“왜 생각을 안 하고 있었어? 둘 다 나이도 30대고, 꽤 만나지 않았어?”


이제 5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김 과장이 궁금한 듯 물었다.


“이제 10개월쯤? 만난 것 같긴 한데. 연애는 연애대로 하고 있지만, 왠지 결혼이라는 건 아직 확 와닿지가 않았거든요. 과장님은 연애 얼마나 하고 결혼하셨어요?”

“나는 연애를 좀 오래 했어. 와이프가 고등학교 동창인데 대학 때부터 만났으니까 거의 9년 정도 연애하고 결혼했지.”

“와, 연애기간이 진짜 길었네요.”

“오래 만나다 보니까 당연히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딱히 고민도 안 했어.”

“하긴, 그럴 것 같아요. 다들 결혼하기 전에 4계절은 만나봐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그 사람을 잘 알 수 있다고.”

“그건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 몇 년을 만나고 결혼해도 이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짧게 만나고 결혼해서도 잘 사는 사람이 있어.”


윤 과장이 끼어들었다. 윤 과장은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과 7살인 딸을 둔 엄마였다.


“나는 5년 만난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헤어지고 나서 지금 남편이랑 연애 5개월 만에 결혼했어.”

“와~”


모두가 깜짝 놀랐다.


“5개월 만에요? 결혼 준비하는 기간 몇 달 걸리는 거 생각하면 거의 만나자마자 결혼하기로 결정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바로 전 연애가 너무 길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정착하기가 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또 그게 아니더라고. 만난 기간과 상관없이 결혼할 인연이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과장님은 언제 어떻게 확신을 갖고 결혼을 하시게 됐어요?”


민경은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음.. 글쎄. 5년 사귄 그 친구랑은 대학생 때 만났는데, 만나면 너무 좋았어. 근데 결혼은 또 다른 얘기더라고. 나도 김 과장처럼 오래 만났으니까 당연히 결혼할 줄 알았는데, 우리 둘이 생각이 많이 달랐어. 둘 다 사회 초년생이라 모은 돈도 별로 없었고, 남자 친구는 일도 더 하고 돈도 더 모아서 결혼은 몇 년 후에나 하고 싶어 했는데, 나는 그 정도 만났으면 결혼해서 같이 돈 모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 근데 결혼이라는 게, 한쪽에서만 진행하고자 하면 안 되더라고. 주변을 봐도, 둘이 같이 진행하거나 남자가 밀어붙여야 진행이 되더라.”

“맞아, 맞아. 보통 여자가 밀어붙이면 잘 안되고 남자가 밀어붙여야 되더라고요.”


진대리가 맞장구를 쳤다.


“현재 남편분이랑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같이 일하던 차장님이 소개해주셨어.”

“만나자마자 느낌이 확 왔어요? 이 사람이다, 이렇게?”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었는데, 확실히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었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다양한 분야의 대화를 할 수가 있어서 너무 재밌더라고. 그 전 남자 친구랑은 만나면 그 당시엔 재밌고, 좋고, 그 정도였다면, 지금 남편 하고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고, 생각의 방향이 비슷해서 금방 빠져들었던 것 같아.”

“남편분이 먼저 결혼하자고 하셨어요?”

“말은 남편이 먼저 꺼내긴 했는데, 나도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다 보니 만난 지 5개월 만에 결혼식장에 서 있더라.”

“과장님은 결혼 추천하세요?”

“난 추천~ 결혼생활이 언제나 행복할 수만은 없겠지만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결혼 안 해도 좋은 날도 있고, 싫은 날도 있듯이. 후회하더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아?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결혼하면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긴 해. 아이들도 너무 예쁘고.”


“진 대리님은 어때요? 이제 결혼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난 이제 6개월 되었나.”

“좋을 때다~ 그때가 제일 좋은 것 같아.”


윤 과장이 진대리를 보며 부러운 듯 웃었다.


“음.. 좋긴 한데.. 엄청 싸워요.”

“신혼 땐 다 그런 거야. 그러면서 맞춰가는 거지.”

“가끔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싸워요. 이러다 이혼하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라니까요.”

“보통 뭐 때문에 많이 싸워요, 대리님?”


민경이 궁금한 듯 물었다.


“싸우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아.”


진대리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듯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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