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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경단 Jan 16. 2023

니가 가라... 베트남 파견

P은행 다니는 직장여성 최민경입니다 16

능력 부족일 수도 있다. 사내 정치 부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경은 어쩌다 한 번씩 선발되는 해외주재원 명단 리스트에서 왜 여직원은 찾아볼 수 없는지 궁금했다.


해외 주재원 선발은 매우 치열하다. 한 번 발령이 나면 적어도 4~5년씩 근무하고 오기 때문에 자리가 자주 나지 않아서 어쩌다가 한 번씩 주재원 선발 공문이 뜬다. 공문이 뜨면 자기소개서와 각종 자격증, 그리고 업무경력을 곁들인 지원서를 제출하고, 서류합격을 하면 면접을 두 차례 본다. 흡사 취업할 때와 비슷한 프로세스다. 외국어 실력은 기본이고, 뛰어난 업무 능력과 회사 내 인맥도 필수다. 아무래도 ‘잘 아는 직원’과 ‘전혀 모르는 직원’ 중에는 잘 아는 직원을 뽑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해외 주재원은 보통 과장급 이상부터 지원이 가능하므로 아직 대리급인 민경은 주재원 선발 공문이 뜰 때마다 미래를 상상하며 유심히 읽어본다. 몇 년차, 어떤 직책부터 지원할 수 있는지, 어떤 경력과 업무능력이 필요한지, 어느 국가에서 근무하게 되는지, 어떤 언어가 필요한지 꼼꼼히 체크한다.


민경은 해외 주재원을 꿈꾸며 각종 연수도 듣고 자격증을 취득하며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은행 내에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에도 선발되어 약 네 달간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평일에는 근무를 해야 하기에 보통 주말 스케줄과 온라인 강의로 이루어졌다. 어학강의를 듣고, 영어시험 점수를 갱신했다. 주말에는 지역전문가 특강도 듣고, 연수원에서 1박 2일로 조별 토론, 강의, 프레젠테이션 등으로 이루어진 집합연수도 들었다.


글로벌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한 70여 명의 직원들은 각자 관심 있는 국가를 선택해서 국가별로 조가 짜였고, 민경은 베트남 지역을 선택했다.


민경이 속한 베트남지역 조에는 과장급 직원 1명과 민경을 포함한 대리급 직원 5명이 있었는데, 여직원은 민경 혼자였다. 중국이나 미국, 유럽 쪽에는 여직원들도 있었지만-그렇다 해도 총 70여 명의 직원들 중 여직원의 비중은 10% 정도였다-동남아 쪽으로 지원한 여직원은 별로 없었던 모양이었다.


민경이 베트남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아무래도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선진국에 비해 경쟁률이 낮을 것 같았고, 그만큼 추후에 지역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개발도상국인만큼 앞으로 국내 기업의 진출과 성장도 더욱 활발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은행의 역할도 더욱 커지고 중요해질 것이기에 베트남 지역으로 주재원을 나가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것 같았다. 삐까뻔쩍한 선진국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몇 해 전 다녀온 베트남 여행의 즐거웠던 기억과 민경이 좋아하는 쌀국수도 지역 선택에 한몫했다.


글로벌 인재 양성 프로그램의 꽃은 5개월간의 현지 단기파견 근무다. 프로그램의 막바지에는 그동안의 연수 참여를 토대로 한 점수, 그리고 개별 프레젠테이션 평가를 통해 5개월간 현지 지점으로 파견 근무를 갈 직원을 선발하는데, 아무래도 현지에 ‘발을 담가 본 경험’이 있어야 추후에 주재원으로 선발될 때 유리할 테니 모두가 노리고 있는 기회였다.


민경 또한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혹시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당분간 현지 근무는 힘들 테니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일단 발을 담가 보고 나중에 과장으로 진급한 후 본격적으로 주재원 지원을 할 계획을 세웠다. 몇 명을 뽑아서 파견을 보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같이 베트남을 지원한 조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민경에게 충분히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나 만큼 적임자는 없어. 업무경력도 충분하고 베트남 가면 베트남어를 배워야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영어는 기본인데 내가 제일 잘하는 것 같네!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 개별 프레젠테이션은 엄청난 긴장 속에 이뤄졌다. 주제는 ‘현지에서 은행이 성장할 수 있는 아이디어 제안’이었는데, 흡사 취업할 때 면접을 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민경은 프레젠테이션이라면 자신 있었고, 자료도 철저하게 준비했다. 


10분간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속으로 ‘됐다!’라고 외쳤다. 평가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기에 발표장을 나오는 순간부터 머릿속은 이미 반미 샌드위치와 분보남보 생각으로 가득 찼다.


‘민경아 프레젠테이션은 어땠어?’


덩달아 긴장하고 있었던 재훈에게서 카톡이 왔다.


‘괜찮았어! 사실 좀 잘한 것 같아! 나 베트남 갈 것 같아!’

‘오~! 결과는 언제 나온대?’

‘2주 후쯤 연락 준대. 배고프다. 바로 집으로 갈게.’

‘고생했어! 오늘 저녁은 치킨 시켜 먹자!’


집에 도착한 민경은 재훈과 치킨을 뜯으며 베트남에 대해 본격적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하노이로 파견을 나갈 것 같아 직항은 있는지, 비행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찾아보고, 신혼인데 5개월간 떨어져 지내면 아쉽고 심심하겠다는 생각에 파견을 가 있는 동안 재훈이 휴가를 써서 놀러 오면 되겠다는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세웠다.


아, 너무 설렌다.

베트남! 비엣남! 내가 곧 간다!


2주 후, 글로벌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 종료되었다는 공문이 떴고, 파견근무 대상자 명단이 첨부파일로 붙어있었다.

민경의 이름은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민경은 크게 당황했다. 모든 프로그램에 성실하게 참여했고, 연수 성적도 괜찮은 편이었다. 업무 경력이나 어학점수도 절대 뒤지지 않았고, 프레젠테이션도 상당히 좋았는데. 

같이 베트남을 지원했던 민경네 조원들 중 과장 1명과 대리 1명의 이름이 보였다.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선발된 대리는 원래 유럽 쪽을 지원했었는데 지원인원이 너무 많아 잘려서 베트남으로 분배된 것이라고 했었다.


내가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 


지난 2주간 베트남 갈 생각에 부풀어 있었는데. 주재원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가는 것 같아 기쁘고 스스로도 대견스러웠는데. 마음이 너무 앞서 나갔나 보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했었나 보다.

민경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5시가 되고, 싱숭생숭한 마음을 다잡고 부지런히 마감을 하고 있는데, 예전에 같은 지점에서 근무하다 현재는 본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Y에게서 연락이 왔다. Y는 재작년 글로벌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서 독일지점 파견근무 대상자로 선발이 되었는데 아직 파견을 못 나가고 있었다.


‘민경아, 잘 지내고 있지?’

‘과장님 오랜만이에요!’

‘오늘 글로벌 인재 양성 프로그램 공문 뜬 거 봤어. 민경이 너도 지원했었지?’

‘네 맞아요. 저 베트남 지원했었는데, 파견근무 선발에선 떨어졌어요.’

‘다른 지역 파견 대상자 명단도 쭉 봤어?’

‘대강이요. 왜요?’

‘잘 보면, 여직원이 거의 없어. 대부분 남직원들이야.’

‘아, 그런 것 같네요.’


민경이 공문을 다시 열어 찬찬히 살폈다. 파견 대상자는 30명이 조금 넘었는데 여직원은 2명뿐이었다. 중국과 일본 지역이었다.


‘요즘은 여직원들 해외근무 잘 안 보낸다더라고. 그나마 보내는 게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이래.’

‘왜요?’

‘자세한 건 모르지만 소문에 의하면 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나 봐. 안전상의 문제로 여직원보다는 남직원을 보내는 분위기야. 나도 지금 계속 대기 중인데 파견 발령이 안 나고 있잖아.’

‘아.. 그런 일이 있었대요? 좀 속상하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특히 동남아처럼 치안이 안 좋은 곳은 아마 여직원들이 나가기 더 힘들 거야. 나는 독일인데도 지금 무한 대기 중이잖아. 갈 수 있으려나 몰라. 바로 발령 날 줄 알고 둘째 출산계획도 미루고 있었는데 어영부영 시간만 지나서 외동으로 확정 짓던지, 그냥 지금이라도 둘째를 가질지 고민 중이야. 민경이 너 너무 낙담해 있을 것 같아서 연락했어.’

‘사실, 낙담해 있었던 거 맞아요. 많이 아쉬웠거든요.’


‘회사 입장에서는, 일단 해외로 내보낸 직원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어. 5개월간 머무를 집도 마련해야 하는데, 이미 주재원 나가 있는 직원들 대부분이 남직원들이잖아. 안전 문제로 파견 근무자는 현지에서 단신 근무 중인 남직원들 머무는 집에서 같이 머물기도 하나 본데, 여직원을 보내면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 회사에서는 그것도 좀 신경 쓰이겠지.’

‘여러 모로 많이 아쉽네요. 차별이라기보다는.. 회사 입장도 이해가 가니까. 어찌 되었든 남직원들이 훨씬 유리한 상황은 맞네요.’

‘그렇긴 하지.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 마. 지금 당장은 이런 상황이라도 나중엔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그리고 내가 보니까, 여직원들을 많이 안 보내는 이유가 결국 여직원들은 주재원으로 선발이 되어도 나가는 걸 많이 주저해.’

‘그래요? 왜요? 전 너무 가고 싶은데.’


‘지금이야 민경이 너는 그렇게 말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나중에 아기 태어나고 키우다 보면 애랑 남편 놔두고 혼자 갈 거야? 아니면 남편이 회사 그만두고 애랑 같이 따라갈 수 있어?’

‘거기까진.. 생각을 안 해봤어요.’

‘남편이 회사 그만두고 와이프 따라 해외 나가는 케이스, 난 본 적이 없어. 보통 남편이 나가면 와이프가 회사 그만두고 따라가지. 그렇다고 애는 아빠한테 맡기고 엄마가 혼자 나가서 단신근무를 몇 년간 한다? 가능한 얘기일까? 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봐. 중국이나 일본 같은 데야 주말에도 무슨 일 있으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니까 어쩌면 가능할지 몰라도.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지. 마감 잘하고. 또 연락하자.’


사실 민경이 여직원이라서가 아니라 점수가 뒤떨어져서 선발이 안 되었을 가능성이 당연히 크다. 하지만 비슷한 미래를 꿈꾸던 Y의 연락은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다.

그동안 주재원으로 나갈 목표를 갖고 커리어를 설정해 온 민경은 Y의 이야기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결혼 후 가족이 생기고 나서는 삶의 형태가 많이 바뀔 것이라는 걸 간과하고, 미혼일 때와 같은 마음으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릴 생각만 해 온 것이다.


퇴근 후, 재훈에게 파견근무자 선발에서 탈락한 것과 Y가 들려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 이번 휴가 때는 베트남 가는 줄 알았는데~”

“그러게 말이야. 너무 설레발을 쳤나 봐. 또 기회가 오겠지. 근데, 나 나중에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게 될 기회가 생기면 자기는 어떻게 하지?”

“그때 가서 봐야겠지만, 혹시 휴직 내고 같이 갈 수 있는지 알아보지 뭐.”

“휴직이 안 되면?”

“그럼 회사 그만두고 민경이 뒷바라지하러 같이 가지 뭐. 아니면 요즘은 디지털 노매드가 되면 지구상 어느 곳에 있든 인터넷만 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까, 새로운 일을 찾아봐도 되지. 그리고 그때쯤이면 아이도 있을 텐데, 내가 아이 케어하면서 민경이 외조도 하고 새로운 일도 찾아보지 뭐. 근데 그전에 내가 먼저 주재원으로 나갈 수도 있어~”

“그럼 내가 따라가야 되겠네? 나에게 무언가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수도?”


아이는 국제학교에 보내서 영어와 국제감각을 익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나는 은행원으로서 현지에서 일하고, 남편은 외조를 하며 새로운 일을 찾아본다. 아니면 남편을 따라 해외로 나가서 내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거나?

실제로 그때가 되면 어찌 될 진 몰라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라 그냥 던지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는 재훈이 내 남편이라서 참 다행이다.


둘은 즐거운 상상을 하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상 속엔 실패나 불가능은 없다.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민경은 문득 언젠가 외할머니가 하셨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 민경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인정받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외할머니는 참으로 강인한 여성이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그 옛날에 홀로 4남매를 모두 대학까지 보내셨다. 여자든 남자든 똑같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철학으로 차별 없이 키우셨다고 했다. 그런 외할머니가 욕심 있게 뭐든 해내는 민경을 보며 대견하면서도 한 편으론 딱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땐 이것이 외할머니의 성차별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해서 역시 옛날 분들은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었다. 연세에 비해 상당히 깨어 있다고 생각한 외할머니마저 내가 아들이 아니어서 아쉽단 말씀이신가 싶어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왠지 오늘만큼은 외할머니가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 알 것 같았다. 그저 세상을 조금 더 많이 살아본 입장에서 차별적 의미 없이 담백하게 보이는 그대로 던질 수 있는 말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외할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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