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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망 Sep 12. 2023

과도한 주접은 영업을 망친다

세상과 낯가리기 



과도한 주접은 영업을 망친다


 

  글쎄 <스파이더맨 뉴유니버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더유니버스>*가 반짝 재개봉을 하지 뭡니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죠. 메가박스로 9월 12일까지 얼른 가주세요! 


이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러닝 타임 내내 입을 벌리고 봤어요. 온갖 주접들로 머릿속이 시끄러웠죠. 

‘와… 이걸 극장에서 안 봤으면 인생의 손해였겠다. 지금 역사적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초 단위로 아무 장면이나 캡쳐해서 붙여놔도 현대미술이겠는데? 압도적이다. 천재들이 작정하고 만들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구나. 내 인생 영화 Top3 안에 올려야지.’ 


  친구들에게 이 영화를 열심히 영업했습니다.

나 : 얘들아 이거 꼭 봐.

친구1 : 오 재밌어?

나 : 이 영화 단점이 뭔지 알아? 이거 보고 나서 3일 동안 인생 모든 게 재미없어짐...

친구2 : 그럼 안 볼래 ㅠ 인생 재밌게 살고 싶어

친구3 : ㅋㅋㅋㅋㅋ나도 


... 이렇게 영업에 실패할 수도 있군요. 마음에 새깁시다. 과도한 주접은 영업을 망친다. 


*<스파이더맨 뉴유니버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더유니버스>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마일스 모랄레스' 버전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입니다. 속편인 3편 개봉 시기는 미정이고요.





1. 건축에 가까운 위로



  러닝타임 내내 웹스윙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쏴서 날아다니는 기술)을 하듯 리드미컬한 미디어 아트. 화려한 이 영화 초반엔 정적인 장면이 있다. 모자(mom & son) 독대신. 뉴욕-브루클린의 불야성 거리도 유난히 숨을 죽인 밤, 주인공 마일스에게 엄마는 조용히 말한다.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자식에게 최고의 위로를 건넨다.


"마냥 작던 꼬마가 불쑥 커버렸는데, 엄마는 오랫동안 그 꼬마를 돌봐왔어. 사랑을 듬뿍 주고, 여기가 네가 있을 자리라고 느끼게 해줬어. 내가 걱정되는 건 세상은 우리처럼 다정하지 않다는 거야. 어딜 가든 그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약속해. 자기 뿌리를 잊지 않고 사랑받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게 해주고, 세상 어디든 너가 있을 자리라고 말해줘."


 ‘네가 있을 곳이 바로 여기’니까 마음껏 날개를 펴라는, 내 뿌리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말. 이것은 위로라기보다 건축에 가깝다. 한 사람의 발판을, 세계를 공고히 만들어 주는 것.


  마일스의 정체성을 흔드는 사람들과 위기 속에서 그를 지킨 건 엄마의 메시지다. 그가 매서운 마음으로 일어나는 순간은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진다. 엄마의 강렬한 메시지를 상기해 내는 건 관객들이다. 이런 다정한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범죄자라도 교화되지 않을까?


  이 가족씬이 내겐 가장 판타지같았다. 레고, 공룡 스파이더맨까지 등장하는 환장하는 멀티버스 세계보다도 이런 부모의 존재가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 과거와 미래, 내면의 아이까지 돌봐주라는 말을 애니메이션에서 들을 줄이야. 바로 내 명장면 리스트에 추가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날이 오면 들춰봐야지. 내가 있을 자리를 찾기 위해서.








2. 나의 멀티버스




  멀티버스 속 나의 캐논(canon), 공식 설정은 뭘까? 인생의 모든 선택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된다는 것. 그런데 큰 줄기는 정해져 있다는 것. 그러고 보니 약간 사주 같기도 하잖아?


"네 인생의 큰 가이드라인은 정해져 있어."라고 점집에서 자주 들었다. 그런 데선 꼭 빠져나갈 구멍도 같이 얘기했다. "뭐, 자잘한 건 의지에 따라 바꿀 수 있긴 하지."


  몇 번을 태어나도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반복될 순간. 무신론자인 나는 누가 내 인생을 정했는지 모를 일이다. 멀티버스가 클수록 나는 여러 개로 쪼개질 텐데, 나1, 나2, 나3이 모두 비슷한 흐름으로 살까? 나는 답이 안 나오는 답을 구하려고 가끔 쓸데없이 열중한다.


  <스파이더맨>에서 마일스는 거미에 물린 후 능력이 생겼다. 처음엔 부정하지만 영웅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성장한다. 동시에 영웅에겐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마일스는 정해진 불행, 모든 스파이더맨이 받아들이는 희생(아버지/삼촌의 죽음)이라는 ‘캐논 이벤트’를 벗어나려 한다. “내 이야기는 내가 쓸 거야.”라는 쿨한 대사를 날리고는 뜨겁게 아래로 추락한다. 스파이더맨에게 추락은 비상이니까.


  다른 멀티버스 세계에선 지금 버전에서 뭘 포기하거나 더할 수 있을까? 과거의 시간은 젠가처럼 얽혀있다. 촘촘한 부분도, 헐거워서 한 손가락으로 쉽게 빠지는 부분(이벤트)도 있다. 하나를 빼면 나머지 블록들과 함께 와르르 무너질 결정적 순간이 뭘까 궁금해진다. 어떤 세상에선 내가 대학에 안 갔을 수도, 의사가 된 비혼 여성일 수도 있다. 또는 히스패닉 남성일 수도.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 내 이야기를 직접 쓰기로 결정한 나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또는 여행에서 밤하늘을 본 날, 중요한 사람과 만나거나 헤어진 날, 가족과 같이 축하하거나 크게 싸워서 뭔가가 망가진 날, 예술 작품을 보고 충격받은 날. 나도 모르게 세상에 없던 뭔가를 만들어 낸 날. ‘이날 이후로 영영 인생이 달라질 것만 같아.’ 하는 감각은 물감이 스며들듯 발소리도 없이 오곤 한다.


  모든 건 나중에 가서야 의미를 안다.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 라고. 지금 버전의 평범한 나는 망상할 수밖에 없다. 안전하게 지금의 인생을 꼭 붙잡은 채로. 많진 않지만 지금 가진 것들조차 스르륵 빠져나갈까 봐 바닥을 디딘 채 발가락을 구부려 본다. 앞으로 뭘 잃고 뭘 남길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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