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유배사이

What the hell is this travel

by 이슬

시작은 효도였다. 매일매일 오디오 클립으로 <이근철의 츄라이 어게인 (Try Again)>을 듣는 엄마는 영어가 그렇게 좋다고 했다. 벌써 몇 년을 홀로 공부하는 엄마 덕에 우리 집 신발장과 부엌 찬장, 화장실 벽에는 노란 포스트잇들이 붙어 있다. 배웅할 때 See you again, 즐거울 때 I am happy to be with you가 입에서 술술 나온 지는 벌써 오래됐다. "아우, 영어 잘 하구 싶다, 아 원투 스피크 잉글리시 베리웰( I want to speak English very well)", "영어로 말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 그게 엄마 소원인 것을 익히 아는 나는 큰맘 먹고 코타키나발루 한 달 어학을 질렀다. 요즘 일을 쉬고 있으니 시간 여유 있는 때가 또 언제 오랴 싶기도 했고, 점점 더 추워지는 한국에서 겨울을 날 자신이 없는 몸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소원이던 공부를 하면, 나는 따뜻한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의사를 묻고 신이 나서 어학원엘 등록하고 특가 항공권을 샀다.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꺅꺅대며 설레했다. 반(半) 고아가 된 후 후회 없는 나의 미래를 위해 해오던 효도가 그렇게 정점을 찍었다. 막상 엄마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그런데 고목에 물을 줘서 무엇하냐, 공부는 네가 해"라며 울상을 짓기도 하고, 자꾸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엄마도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내가 반 고아가 되기 전, 우리 아빠는 지갑을 탈탈 털어 가족들에게 나눠주는 사람이었다. 딱히 저금 같은 것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빠는 돈이 생기면 집에 돌아와 술 한잔을 하다가 우리를 다 불러모아 지갑을 열곤 했는데, 그렇게 지갑을 열고 나면 정말로 아빠 지갑에는 오천 원짜리 한 장 정도가 남았다. 엄마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으므로 그런 아빠가 우리 집 경제계의 큰손. 그 큰손이 주로 이런 식으로 움직였으니 우리 집은 '당장 돈이 없으면 정말로 돈이 없는' 집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아빠를 미워하기도 했지만… 지금 보니 내가 딱 아빠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아낌없이 퍼 주고 끝! 퍼 줬기에 후회는 없다! 아마 이렇게 지른 뒤에 후회가 없다는 점이 가장 문제인 지점일 텐데.... 음, 아무튼 나는 적금을 깼고 아깝지 않았다. <서로 사랑하자> 아빠가 만든 우리 집 가훈은 여전히 건재한 것이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있다. 엄마는 투자받을 자격이 있다. 사실 나는 이제 나 자신이 paper를 fafer로 발음한다고 해도 다시는 공부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고, 공부 외에도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으니 돈 쓸 일도 없다. 공부는 하고 싶은 엄마가 하면 되는 것, 다시 말하지만, 엄마는 그럴 자격이 있다. 나는 그저 따뜻한 온도에서 몸만 잘 사릴 수 있다면… 그거면 됐다.


코타키나발루인 이유는 간단하다. 동남아. 따뜻한 곳. 항공권 특가 등장. 게다가 검색해보니 어학연수가 있다. 거기에 코타키나발루를 치면 따라 나오는 석양과 반딧불 사진. 아, 내가 또 어두운 데서 빛나는 거에 환장하지. 그렇다면 오래 생각하거나 비교할 것도 없이 FLEX. 나는 어디든 상관없는 사람이고, 엄마는 영어를 배울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는 사람. 우리는 그렇게 코타키나발루에 가게 됐다. 이 얘기를 들은 후배 한 명은 이 여행을 한껏 응원해줬다. 그 애는 무척 신난 얼굴로 '이것은 딱 유튜브 감'이라며 영상의 콘티까지 짜 주었다. "언니, 첫 시작은 언니가 은행에 가서 적금을 깨고 돈을 촤르르 뽑는 그 장면이에요." 사실 그 적금이 온전한 의미의 적금이라기보다는 백수 자금으로 대출받은 돈의 일부를 넣어둔 통장이었다는 것은 차마 말하지 못했으나…. 어쨌든 그 자리에서 내가 움직여야 할 동선과 카메라의 앵글까지 정해졌다. 그 영상의 제목은 <적금 깨서 엄마를 유학 보냈다?! - 효(孝)가 콸콸콸~!>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엄마는 곧 박막례 할머니처럼 유튜브 스타가 될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앞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그러나 곧이어 밝혀진 사실은, 내가 전생에 말레이시아를 영국에 팔아넘긴 바로 그 매국노였다는 것이다. 엄마가 유학을 취소했다. 그것은 그녀의 개인적이고도 신실한 신앙의 문제이므로 더는 문제 삼지 않도록 하겠다. 나는 매우 노하였으나 "그럼 아무 데도 가지 마!", "이제 다시는 엄마 데리고 어디 안 가!" 같은 말은 할 수 없었다. 눈으로는 했는지도…. 그러나 입으로는 하지 않았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이 모든 효도가 정말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게 들통나는 것이었으므로…. 효도의 정점에서 찾아온 끝도 없는 추락에서 내 밑바닥을 보여서는 안 된다. 엄마를 겁줘서 주눅 들게 하면 나는 완전한 고아가 된 후에 무척이나 후회하며 여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일단 이번 건은 취소하고, 다음을 기약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이를 앙다물고 손을 떨며 차례차례 취소 수수료를 알아봤다. 비행기 - 특가항공권은 언제 취소해도 수수료가 6만 원, 후후…. 8만 원에 샀는데 수수료가 6만 원. 오케이… 다음? 어학원 - 등록은 했으나 입금 전이었으므로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취소 성공.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자 다음? 공항 근처에 잡은 첫 번째 숙소 - 전액 환불 가능, 정말 감사합니다 호스트님…! 이 은혜를 어찌 갚을까요, 자 그럼 마지막으로 어학원 근처로 잡은 두 번째 숙소 - 장기 숙박이므로 취소 시 숙박료의 90%를 수수료로 내면…. 네? 얼마요?


이필립.jpg 쟤 왜 저래? 냅둬, 환불이 안 된대….

매국노는 본국으로 잡혀들어간다. 아무래도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고도 잘 먹고 잘살았던 모양이다. 그래, 그거라면 지금 내 인생도 설명이 된다. 아아, 생을 걸러 한국에 태어난 나를 말레이시아가 부른다. 나는 분명히 비행기를 타고 가는 중에 암살되거나, 내리자마자 주리가 틀릴 것이었다. 아니 왜? 왜 내가? 왜 내가 혼자서? 이렇게까지 말레이시아에를? 나는 숙소 주인에게 솔직하게 사정을 말하고 환불을 요청하며 애원했으나 전액 환불을 약속했던 그녀가 이틀 만에 마음을 바꾸었다…. 숙소 중개업체의 직원을 통해 소통해도 완고했다. 나는 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백만 원을 허공에 흩뿌릴 수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내 목숨과 바꾸겠어요. (응?)


공기 브랙퍼스트와 베드 데이빗님, 고마웠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 가기에는 좀 큰 집. 이렇게 혼자 갈 줄 알았으면 원룸을 예약했지. 으이그, 진짜 우리 엄마! 진짜, 하나님 아이구 진짜. 나는 연말에 시간이 빌 것 같은 사람들의 카톡을 톡톡 두드리며 방을 나눠 쓸 사람을 모집했다.


그리고 당연히 이렇게 급하게 코타키나발루를 갈 사람은 없었다. 나는… 혼자 간다. 시밤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