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숨을 쉬는 사람

by 이슬

사진 출처 Unsplash, Victor Garcia



낭독하는 동안에는 녹음기를 켜 둔다. 그러면 거기엔 나보다 높고 가는 소리를 내는 누군가의 음성이 담긴다. 소오름. 누구지? 누구긴 누구야, 나지. 벌써 몇십 개 넘는 녹음 파일이 생겼는데, 다시 들어보며 낯설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아주 정직한 내 목소리. 몸의 어딘가에 닿아 울리는 소리 하나 없이 매끈하게 몸을 빠져나온 쌩生목소리. 고-오맙다 녹음기야.

그런데 듣다 보니 목소리가 문제가 아니다. 호흡이 더 귀에 ‘띈다.’ 짧고 바튼, 한 문장도 여유 있게 읽지 못하고 문장의 말미에 가선 숨이 차고 마는 게 녹음 파일에 여지없이 담겨있다. 호흡이 가쁜 거다. 단단하게 소리를 받쳐주지 못하는 거다. 그러니 문장은 자꾸만 구멍 난 풍선에서 쉬익-바람이 빠지듯 사그라들고 만다.


자기 호흡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많이 있을까? 가엾게도 나는 내 호흡에 관심을 가져본 일이 없다. 명상을 하는 것도, 호흡을 중요하게 여기는 요가 같은 운동을 해본 것도 아니니 숨이라는 건 자동으로 쉬어지는 것이고 내가 신경 쓸 것도 없다고 여기고 살았다. 아마 생의 마지막 순간,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때야 ‘아이고, 숨이 넘어가는구나.’ 혹은 ‘아이고, 내가 그동안 어떻게 숨을 쉬었더라?’했을 텐데, 일찍이 성우학원에 다니기를 참 잘했다.


이제야 안다. 내가 굉장히 얕고 밭은 숨을 쉬어 온 사람이라는 걸. 흔히 말하는 복식 호흡을 하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가슴으로만 헐떡대는 숨을 쉬었는지라, 깊이 쉬어보려고 하면 갈비뼈가 조여 오는 듯 아프고, 오히려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아, 딱한지고…. 깊은숨을 쉬기엔 너무 급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제는 성우학원에 다니고 있으니, 나도 단지 내 만족을 위한 낭독을 넘어서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한’ 낭독을 목표로 연습하고 있다. 청자 입장에서 내 낭독은 여러 가지로 위태롭고 아슬아슬하며 불안하게 들리겠지만, 그중에서도 최악은 호흡이 달려 헉헉대는 것일 테다. 듣는 이도 편안하지 않고 숨이 차는 느낌이 들 테니까. 나는 누군가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뒹굴뒹굴 대며 듣다가, 무릎을 들어 배 가까이 다리를 모아 “겔겔겔” 웃을 수 있는, 그런 낭독을 하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 내 숨을 편안하게 쉬는 것부터 연습해야 할 것이다. 아, 생각난 김에 다 같이 해봐도 좋겠다. 코로 깊-이 스으으으, 입으로 길-게 후우우우.


"나는 어떤 숨을 쉬는 사람인가?" - 2019년 7월 5일의 메모


성우들이 캐릭터를 표현할 땐, 단순하게는 목소리를 변형하지만(변성), 호흡도 소리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배운 날이 있었다. 그날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어떤 숨을 쉬는 사람인가.’ 재미있게도 학원에서 여러 캐릭터를 연기할 때 호흡을 어떻게 쓰느냐가 핵심일 때가 많다. 호흡의 속도와 깊이에 따라 캐릭터의 성격과 연령대가 달라지니까(!) 예를 들어 호흡을 거의 섞지 않은 채 다다다다 말하면 어린아이의 느낌이 나고, 동시에 명랑하고 쾌활한 느낌의 성격을 표현하기에 좋다. 여기에 호흡이 조금씩 섞이기 시작하면 연령대가 높아지고, 노인의 소리는 공기 반 소리 반까지 간다. 진중하고 사려 깊은 성격을 표현할 때도 호흡은 느려지고 소리와 더 많이 섞여 나온다. 아, 갑자기 창피해진다. 내 급하고 예민한 성격도 이미 온 세상에 표출되고 있었다.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은 채.


"느리고 깊은숨을 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늦은 밤 집에 돌아와 노트 아랫줄에 이렇게 적어 넣었다. 정말이지, 깊은숨을 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대개는 어수선한 게 인생이지만, 전체를 두고 보면 가만-가만-가만히 머물러 간 듯한 템포의 생이었으면 좋겠다. 가만히 있다가 가마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sticker sticker

* 매주 화/목 찾아옵니다! 성-우로-드



keyword
팔로워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