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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 Apr 13. 2023

뱃지를 줄게

  내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도 없는데 마음이 허했다.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왜인지를 묻다가 알게 됐다. 나도 오늘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구나. 듣는 역할만 하고 싶지는 않았구나. 

  그러면 나는 왜 듣고만 있었을까? 한마디 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내 얘기도 좀 들어달라고 하면 됐을 텐데. 아, 나는 바보인가? 언제까지 이렇게 소극적으로 살 거지 나는? 이러면 어디 가서 얕보일 뿐이라고! 

  몇 번을 돌이켜봐도 내가 그 자리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그려지질 않았다. 결국 유령이 된 기분이 들자 내가 미워졌다. 

  유령. 나는 정말 유령 같은 사람인가?


  좋아하는 사람들 서넛이 모였던 날이 떠올랐다. 그 사이에서 나는 재간둥이 노릇을 했었는데. 작년 봄의 어떤 만남도 생각났다. 친구가 눈을 빤-짝 빤짝하게 굴리면서 “더 해봐. 그래서, 또, 다른 얘기는 없어?”라고 했었지. 그때 나는 신이 나서 나한테 일어났던 재밌는 일들을 전부 다 털어놓느라 앞에 놓인 음식이 식는 줄도 몰랐다. 

  그러니까 나는 이럴 때는 이렇고 저럴 때는 저렇고, 유령인 날이 있고 날다람쥐인 날도 있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게 오로지 나만은 아닌 거다. 내 모습은 나를 만나는 사람들을 거울삼아 드러나고, 거울의 모양이 변하면 나도 변한다. 빈말을 못 하는 내가 누군가에게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그러면 나는 나 자신을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고 칭하고 싶은가, 진실한 사람이라고 봐주고 싶은가?


  나에게 배지를 달아주고 싶어졌다. 오늘은 남의 말을 경청하고 적절한 리액션으로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갔으니 <귀인 Ears human> 배지 하나, 얘기를 다 마친 상대가 후련한 얼굴로 돌아갔으니 <수다 테라피스트> 배지 하나.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의 나를 이왕이면 귀하게 여기고 싶어졌다. 그러고 나니 꼭 어깨띠를 맨 스카우트라도 된 것 같고, 나로 사는 게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자잔한 특성들, 내가 만나는 상황들과 거기에서의 내 모습은 배지 하나 정도의 것. 내 삶은 수많은 배지를 남기는 모험이다. 다음에 오늘과 같은 상황이 온다면 <재담꾼> 배지, 아니면 <불도저> 배지를 얻어보자. 그러자, 그러기로 하자. 그러면 된다. 

  나는 이렇게 ‘나는 바보야’의 굴레에서 벗어나 푹신한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지금의 나는 언젠가 내가 바랐던 나인 게 아닐까? 사람은 원하는 쪽을 향하기 마련이니까, 내가 오늘처럼 바보 같다고 여기는 리스너로서의 삶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에서 나온 모습일 거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되어왔다. 그리고 계속 해서 내가 원하는 내가 되어 가자. ‘남의 떡’과 ‘황새의 존재’라는 인류 최대의 난제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몇 번이고 나에게 배지를 달아주면서.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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