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기로 한 나에게
나는 '착한 아이'로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그에 따라오는 배지는 수도 없이 있다. 그런 내가 꼭 한번은 얻어야 했고, 무척 갖고 싶었으며, 앞으로 몇 번이고 받아 매만지고 싶은 배지가 있다면 바로 <만개한 존넨쉬름> 배지. 드디어 얼마 전에 이걸 손에 넣었기 때문에 하루에 몇 번씩 꺼내서 닦고 있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신규 배지! 내 생에 이런 배지를 받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아, 존넨쉬름은 노란 독일장미다. 꽃말이 ‘거절'인. 한국어로 받아적은 이름이 참 묘하게 꽃말과 어울린다. 후후.
“자, 받아. 내 마음이야. 아, 이거? 존넨쉬름.”
거절은 쉽지 않았다. 3일 밤낮으로 고민했다. 집 근처 일자리였는데, 나로서는 해보고 싶었던 일, 그쪽으로서는 사람이 필요한 아주 잘 맞아 굴러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시받은 페이가 넉넉지 않았다. 그 넉넉지 않은 걸 채우려고 다른 일을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담 어떡해? 다른 일을 찾아야지.
그런데 말입니다. 이 간단한 답을 찾기 위해 저는 3일 밤낮을 고민한 것이에요? 왜냐하면 일 시작에 앞서 참관하러 갔을 때 동료가 될 분들이 나에게 무척 잘해줬단 말입니다. “지금 인원이 모자라니 꼭 와주면 좋겠다"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기도 했고요. 급여가 넉넉지 않고,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어 하루 일하고 오면 온통 몸이 퍼지겠지만, 그분들이 지금 사람이 없어 간절한 상황이란 말이죠? 내가 가면 딱 적임이란 말이죠?
믿을 수 없겠지만 내 고민의 8할은 사람이 없어 그 자리를 메꾸느라 바쁜, 딱 하루 만난 그 사람들의 필요였다. 누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하면, 그게 내 운명인 것만 같은 뇌 회로의 오류. 선택받는 입장에 놓이는 상황이 내가 선택하는 것보다 쉬운 나. 게다가 공고가 난 게 아닌데 내가 먼저 찾아가 일자리가 있는지 물어본 상황이라, 그들의 기대를 한껏 높여놓은 것은 아닐까, 그런 내가 못 한다고 하면 얼마나 실망할까 같은 마음이 내 마음을 휘저었다.
“선뜻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기뻤는데, 수입이 제가 필요한 만큼이 되지 않네요. 아쉽지만 일하기 어렵겠습니다.”
구구절절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쪽에서도 이해할 사유라, 서로 아쉬움을 표현하고 다음 기회를 이야기하며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에 맑고 차가운 바닷물이 밀려와 처얼-썩 머리부터 나를 적셨다. 푸핫, 웃음이 났다. 얼굴에 흐르는 시원한 물을 상쾌한 마음으로 닦으며 보니, 파도가 떠난 자리에 노란 배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꺅 소리가 절로 나오도록 반가운 배지, 만개한 존넨쉬름! 백사장을 가로질러 뛰어가 그걸 소중히 주워 안고 소리 질렀다. 꺄오! 너!무 시원해!! 이렇게 시원한 걸 봐서, 이 선택은 틀렸을 리가 없다.
당신에게는 당신에게 걸맞은 존중이 있고 자격과 권리가 있다. 그걸 지켜주는 건 당신 뿐이다. (…) 거절하면서 솔직할 수 없는 상대라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상대라면, 내 인생의 궤도 위에서도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럼 힘을 좀 덜 들이고 거절할 수가 있다. 거절을 어려워하지 말자. 잘 해내고 나면 남은 하루가 참 상쾌해지는 것이 거절이다. 이자람, <오늘도 자람> p.253
나는 촉수가 많이 달린 인간이다. 손가락과 발가락 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촉수가 적어도 수백 개는 있어서 상황과 분위기, 남의 기분과 감정을 파악하는데 능하다. 대처에까지 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유, 사람이 그렇게 욕심부리면 클나. 아무튼 촉수 하나하나에 눈이 달려서 가끔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 같이 께름칙한데, 이 타고난 촉수들을 다스리기 위해, 그것들의 눈 닫기를 수련 중이다. 여전히 잘 되지는 않는다. 기본값이 OPEN/개방인 걸 하나하나 닫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 나의 사랑 나의 고민 촉수!
촉수들을 나의 눈 삼아 세상을 보면 좋았을 텐데, 나는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라 그것들을 내 앞의 상대를 살피는 데 썼다. 그렇게 남들의 기대와 소망이 무엇인지 너무 깊숙이 봐버렸기 때문에, 아주 자주 그것이 내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나의 그런 점을 좋아한다. 내 촉수가 자기들을 둘러싸고 세심하게 살피고 달래고 배려하는 걸 좋아한다. 좋다고 하니까, 또 나는 고래마냥 춤을 췄지 뭐야.
하지만 나는 나다. 나에게도 입장이라는 게 있고, 상황이라는 게 있다. 나는 이제 디폴트값이 OPEN인 내 촉수들이 가져오는 자잘하고 많은 정보들 속에 내 목소리가 묻히지 않게 애쓰며 산다. “나는 돈이 필요해요. 그게 내가 지금 일을 찾는 이유예요” 나는 이번에 수많은 페이크(”어머! 날 필요로 하는 곳이었어.” “어머, 마침 사람이 너무너무 필요하다고 하네" “어머, 여기 동료들 정말 스윗하다, 배우고 싶다" “그냥 내가 조금만 무리하면 되지 않을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좋은 경험이잖아”…) 속에서 이 목소리를 건져낸 내가 자랑스럽다.
나는 나를 견디는 힘을 기르고 있다. 상대에게 쏟아지지 않고 서 있는 힘을. 다른 사람의 곤란을 내 희생으로 메꾸고 싶은 나를, 거절을 하고 나서 왠지 미안한 마음에 뭐라도 하고 싶은 나를, 부탁하지도 않은 일을 먼저 나서서 돕고 이것저것 챙기고 싶은 나를 견디는 힘을 기르고 있다. “전 괜찮아요!” 라고 말하려는 입에 지퍼를 채우고 견디고 있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이다. “나를 예뻐해줘”의 삶에서 벗어나,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몫이 아닌 것을 짊어지지 않는 사람, 내 삶의 파트너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그들을 믿어주는 사람. 상대의 것을 상대가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주고 싶다. 우리 각자에겐 각자의 삶을 이고 나갈 힘이 충분히 주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한다.
거절에 사족을 붙이지 않기. 거절의 뜻 먼저 분명히 밝히고 이유는 짧게 전하기. 상대가 자세한 이유를 물으면 미안해하지 말고 밝힐 것. 상대가 내 거절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침묵의 시간을 견딜 것. 그사이에 다른 대안이나 중간 단계의 제안을 하지 말 것. 그저 기다릴 것. 거절을 받아들일지, 다시 제안할지 그가 그의 몫의 선택을 할 시간을 허락하기.
고래야, 춤 추지마. 그저 가고 싶은 곳으로 헤엄쳐 가라. 자유롭게. 시원하게.
202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