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Bah II
새로 이사 온 숙소는 시내로부터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허허벌판 한가운데 우뚝 선 아파트. 이 아파트는 시야를 가리는 어떤 것도 없이 전망이 좋고, 남향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쭉 해가 든다. 석양 보러 여기에 온 나에게는 매일의 날씨와 해변의 구름을 살피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그러나 일단 동남아의 숙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선생의 존재. 지난 숙소에서 호되게 당한 나는 나를 마중 나와 준 호스트에게 첫 만남부터 바선생의 존재를 물었고, 그들이 있다면 제발 살충제의 위치와 사용법, 주요 출몰 장소를 알려달라 애원했다. 여느 여행객이 물을만한 정보는 아니었다. 근처의 맛집과 가는 방법, 석양 보기 좋은 곳 같은 걸 물어보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내 몸에서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간절한 눈빛으로 "제발 나에게 진실을 말해줘"라고 텔레파시를 보냈고, 호스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아파트 복도에선 한 번 본 적 있으나 이 집에서 본 적은 없으며 이 집엔 개미가 있긴 하다"고 얘기해주었다. 그의 눈빛은 진실했다. 무엇보다도 개미라니! 나는 개미의 존재를 확인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Ant is Okay. Ant is Okay."
그리고 나는 정말 괜찮았다. 작디작은 개미들이 내가 어디서 과자를 먹었는지 귀신같이 알아내고, 내가 싸둔 음식에 설탕이 들었는지 여부를 감독하고, 그곳들을 줄지어 방문하는 동안 나는 매번 그들을 용서했다. 후후 웃기까지 했다. 그래그래, 고맙다. 조금 먹으렴. 먹어야지 그럼.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쪽에 날개 단 여왕개미가 두 마리 있지만… Ant is Okay다. 어디서 들었다. Ant는 바선생의 천적. 그들의 번식을 막는….
이들은 바선생과 뭐가 다른 걸까? 작은 개미들, 그리고 아파트 복도에서 만나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등이 초록빛 나고 느린 풍뎅이, 어제 밤늦게 현관을 열었을 때 하얀 벽에 붙어있던 도마뱀 한 마리. 나는 그들을 보고는 놀라거나 쫄거나 흠칫해서 얼어붙지 않는다. 그냥 쓱 과자 가루를 치우거나, 엉금엉금 걷는 걸 보면서 지나가거나, "나야~ 놀라지 마~"라고 조심스럽게 배려까지 한다. 그런데 바선생은….
아무래도 바선생은 아우라부터가 다르다. 나는 몇 번이나 밤중에 그의 존재를 눈치채고 눈을 뜬 적이 있다. 내 몸보다 훨씬 작은 그 존재는 엄청난 아우라와 존재감을 뿜어낸다. 누군가 '있다' 또는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잠을 깨울 정도. 나는 그런 날 눈을 뜰 때부터 숨을 죽이고 아주 슬그머니 눈알만 굴려 그의 위치를 파악하곤 했는데, 그가 천장에 붙어 나를 보고 있으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가 문 앞을 지키고 있을 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을 손이 모자라 고통받았었다. 그가 방의 중간부로 이동하는 순간을 노려야 한다. 침대에서 문 앞까지 한 번의 점프로 문을 열고 안방으로 러쉬하며 "엄마!!!!! 바퀴벌레!!!!" 하면 엄마가 짜증을 내며 "너는 왜 그런 걸 그렇게 잘 보고 그래!" 엄마는 못 잡은 날도 잡았다고 뻥을 치곤했고 허엌 나는 지금… 내가 글쓰기에 심취하여 저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써버렸다는 걸 깨닫고 얼른 지워버린다. 아무튼… 아무튼 엄마는 빨리 다시 자고 싶어서 뻥을 치곤 했는데, 나는 그 거짓말도 귀신같이 알아낼 수 있을 정도의 바레이더를 가지고 있다.
길거리나 어디에서든 바선생의 아우라는 나를 압도한다. 내 레이더가 그를 감지한다기보다는 그의 존재감이 나를 압도하는 것이 맞다. 나는 멀리 있는 무언가가 그인지 아닌지 대번에 느낀다. 내 몸이 먼저 안다. 어제 슈퍼에서는 철제 선반과 선반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쥐만 한 그를 보고 사려던 물건을 떨구고 도망쳐 나왔다. 물건은 빨리 계산하고 나와도 됐을 텐데… 머리로는 "아니 잠깐만, 이건 사가자!"하는데 손이 이미 출입구의 자동문 센서를 향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뜨거운 정오의 햇빛을 피해 선글라스를 끼고 종종걸음으로 슈퍼에서 멀어졌다. 다르다. 슈퍼에 가다 만난 풍뎅이는 멀리서도 그런 아우라가 없었다. 그는 그저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아무래도 바선생은 "죽여버릴 거야"같은 악심을 잔뜩 품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 아우라는… 아무래도… 좋은 것일 리가 없다. 이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이 본능 같은 거라면 나는 바선생과는 정말 천적인 것이다. 물론 먹이사슬 밑에 있는 것이 나다.
좋아하는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누가 좋은지 나쁜지 모르나 태어날 때부터 알았던 것들을…"이 좋은 노래를 이런 어두운 글에 인용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이게 딱 맞는 말이라고 느꼈다는 건 바선생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 바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문득 방충망이 없는 말레이시아의 창문과 열려있는 화장실 창문이 생각나 어서 가서 닫고 자기로 한다. 너무 많이 얘기했다. 이건 위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