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유학생으로 살면서 돈이 필요할 때 미술관 작품 지킴이를 한 적이 있다. 돈 주고도 미술관에 가는데, 전시도 보면서 돈까지 받을 수 있다니 더 좋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나는 중요한 사람을 경호하는 것 마냥 정장을 차려입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마르세유에 있는, 1700년대에 지어진 거대한 성이었고 지금은 전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었다. 그 앞을 지나간 적은 몇 번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미술관 디렉터는 우리를 반기며 각각의 방을 소개해주었다. 아직 열리지 않아서 고요한 미술관 안에서 나는 커다란 계단을 오르내리며 여러 그림과 조각들을 구경했다. 내가 하는 일은 작품을 훼손시키는 사람이 없는지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었다. 내가 지키던 방은 불상으로 가득 차 있는 불교 미술관이었다. 사람들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작품을 감상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발소리를 듣는 것도, 눈을 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가끔 내게 미술관이나 작품에 대해서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특히 어린아이들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참을 수 없다는 듯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큐레이터도 해설자도 아니었지만 어렴풋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미술사의 지도를 더듬으며 어느 정도 그럴싸한 대답은 할 수 있었다. 전시실에 있는 작품들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았다면 좋았을 걸 싶었지만, 나는 별다른 정보 없이 작품을 마주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유리 관 안에 들어가 있는 작품을 지켜보고 있었다. 밤에 열리는 미술관 행사였기 때문에 해가 점점 지고 있었고, 바다 근처에 위치해있어 창 밖 저 멀리로는 수평선을 넘어가는 해가 보였다. 밤이 되고 사람들이 조금 줄어들 시간이 되자 나는 가만히 앉아서 불상을 쳐다보았다.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의 얼굴은 저런 걸까. 나는 늘 자주 화가 나고 초조했고, 불안과 조바심을 떨쳐내지 못하는 내가 자주 싫어졌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삶이 나를 울분에 차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무렵엔 더는 내 마음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처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왠지 무력해지는 기분이었다. 부러움이나 질투도 아니었고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 무언가를 만났을 때 무력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순간을 만난 건 우연이었을까. 어떤 작품은 정말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를 찾아오는 게 아닐까. 내 키보다 두 배는 큰 거대한 불상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나는 미술관이 잠깐의 멈춤이 허용되는 곳이라서 늘 좋았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있지만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도. 내게는 떠밀리고 떠밀리다가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을 때 들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날 원래는 일을 하러 간 거였지만 같은 자리에 몇 시간 동안 멈춰서 쉼을 얻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쉼은 어떤 여행이나 소비로 받는 보상이나 즐거움 같은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일 그 자체였다. 그날 밤 나는 모든 아름다움이 집합된 공간에 가만히 잠겨 그 아름다움을 물끄러미 보았다. 내가 구한 아름다움, 내게 끝내 응답하지 않았던 아름다움, 내가 도달하지 못해서 원망스러운 아름다움. 그 모든 것들이 떠오르자 나는 좀 더 차분한 상태가 되었다. 세상이 내게 응답하지 않는 건 내가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미술관은 내가 게으른 눈으로 세상을 흘길 때 다시 마주 보게 해준다. 내가 너무 쉽게 잊었던 얼굴과 풍경을.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불 꺼진 미술관을 나서는데 한 친구가 미술관에서 이런 일을 해본 것은 처음인데 정말 아름다운 시간이었다며 웃었다. 미소 짓는 친구의 양 볼에 짧은 키스를 한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