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촌 언니의 첫아들 결혼식에 다녀왔다.
어느새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친가 쪽 모임은 거의 없었던 터라 보고 싶던 가족들 친지들을 보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약간은 흥분된 마음으로 외출을 했다.
너무 반가운 얼굴들. 잠시 잊고 지냈던 고모들, 사촌 언니오빠들의 올망졸망 조카들까지 모이니 왠지 모르게 풍요롭고 복닥이는게 참 즐거웠다.
나의 아버지는 어느새 우리 집안 제일 어르신이 되셨다. 아버지는 친척들이 손을 붙잡고 인사를 나누는 내내
눈물을 찔끔거리시며 그 시간을 너무 소중해하셨다.
자꾸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는 약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신 아버지. 그렇게 모두 잊혀가는 아버지 기억 속에 조금이나마 저장하시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지우며 살아가곤 한다. 아니 자연스레 지워져 간다.
친척, 친구, 옛 연인. 어딘가 살아있겠지만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많은 사람들은 이미 사라져 버린 존재라 해도 전혀 이상할 일도 아니다.
1년에 한 번도 아니 몇 년에 한 번씩 드문드문 소식을 전해 듣기 때문이다.
몇 해 전 107세의 연세로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를 생각해 보았다.
워낙 왕래가 없는 외가 식구들 성향 탓도 있고 내가 결혼한 이후에는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어,그 긴 세월이 지난 줄도 모르게 할머니를 잊고 지냈다.
가끔 친정엄마에게 안부정도. 코로나 때도 할머니는 잘 견뎌내셨고 107세 되던 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고 병원으로 갔으니 말이다.
참 죄송스러웠다. 아마도 이미 오래전 못 보기 시작한 그쯤부터 할머니는 내 안에서 죽어계셨던 거 아닐까?
뜻밖에 소식에 놀랍지도 슬프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너무 죄송스럽고 마음이 당혹스러웠다.
어릴 때 방학 때 찾던 외갓집 다락방에서 할머니 미싱과 반짇고리가 내 기억 속에서 스쳐간다.
할머니는 목화솜보다도 부드럽고 구름빵처럼 폭신한 새우젓 넣은 계란찜을 해주시곤 했는데. 그맛이 잊혀지지 않아 지금도 나의 최애 반찬중 하나인데,.
살아있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말과 같다. 이름이 불리고 목소리가 떠오르고 문득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 여전히 그 사람의 세계. 어딘가에 내가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사람의 말속에서 내 이야기가 사라지고 기억의 맨 끝자락에서도 더는 불리지 않는 이름이 되면 나는 그 사람의 세계에서 조용히 죽어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내가 할머니를 돌아가신 것처럼 느낀 게 아니라. 이미 할머니 기억 속에서 그 어린 손녀딸 수현이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던 걸 미처 몰랐다.
죽는다는 건 꼭 숨이 멎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천천히 지워지는 것. 내가 아직 살아있는데도 그 사람에게선 끝난 존재가 되는 일이다.
그건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훨씬 깊은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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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관계와 기억 속에서 지속되는 것 같아요. 죽음과 이별은 기억 속 존재에서 잊힐 때 더 깊은 상실이라는 생각에 나의 할머니를 떠올려 글을 쓰게 됩니다
나의 아버지가 고령이 되어가시며 잦은 기억력을 잃어가는 모습에서도 이별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
죽음을 기억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