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철 안에서

누구를 위한 배려가 또 누군가에겐 어떤 의미가 될지

by 스틸앨리스


(그 짧은 눈빛의 교차)


모처럼 나에겐 휴식 같은 주말이지만 평소 시간이 없어 배울 수 없는 소소한 공부를 위해 외출하고 돌아오는 날이었다. 서울에서 용인 오는 길은 전절을 세 번 환승하고 내가 있는 곳까지 경전철을 이용해야 하는 그날따라 긴 여정이었다.

몸이 무겁게 가라앉은 저녁, 경전철 좌석 하나가 기적처럼 내게 다가왔고 피로에 젖은 나는 그 자리에 몸을 묻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잔잔하지만 미세한 선로의 진동이 마치 자장가처럼 느껴졌다. 세상과 나 사이에 얇은 막 하나가 내려앉는 듯했다.


그런데 문득, 누군가의 시선이 내 정수리를 파고드는 기분에 잠결을 찢고 눈을 떴다. 그곳에는 한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작은 체구에 희끗희끗한 머리가락, 그리고 말은 없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일어나시오.’

그 눈빛은 소리 없이도 큰 소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그 눈빛이 너무도 분명했으니까.

자리에서 물러나며 저만치 떨어져 노선도를 확인하는 척했지만, 내 시선은 다시금 그 자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서 계셨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어느 젊은 남자였다.

‘어라?’ 머릿속이 잠시 멈췄다.

그 눈빛은, 그 당당함은, 그 고요한 외침은 도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속으로 생각했다."뭐야~이럴 줄 알았으면 모른 척하고 자는건데 "잠시 후회했다

경전철은 계속 미세햐 흔들림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그 순간 생각했다. 혹시 그분은 늙음을 내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노인으로서 배려받고 싶다는 마음보다, 단지 그 순간 자신의 힘으로 서 있고자 했던 것 아닐까.

그 눈빛은 자리를 원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쇠함을 견디려는 작은 의지의 불꽃이었을지도.

그러나 나는 그 뜻을 읽지 못하고, 너무도 성실하게 ‘자리 양보’라는 틀에 나를 맞췄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할아버지를 위해 일어섰지만, 그 자리엔 또 다른 누군가의 무심한 젊음이 앉아 있었다.

지하철 창밖으로 스쳐가는 어둠 속에서, 내 마음은 복잡한 결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날 나는 늙음이라는 것이, 노약자석이라는 것이, 자리 하나로 증명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아주 조금 배운 듯하다. 한편으로 노약자를 배려한다는 행동이 다른 한편으로 어르신 입장에서 보면 노인 취급당한다는 의미로 왜곡된 감정이 들까 조심스러워졌다.


그날 그 어르신도 한편으론 빨리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까 생각했을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꿋꿋이 건장한 모습으로 서 계시고 싶었으리라.

내리기 전 뒤돌아보니 그제야 할아버지는 다른 자리에 앉아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