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의 게임에서 지다

by 스틸앨리스

며칠 전, 내 공방 앞에서 작은 사고가 벌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사고라 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작은 일이었다. 공방 앞 주차 공간에 불법으로 세워진 차를 두고, 그 옆 좁은 칸에 굳이 들어가려 한 내 성급함이 화근이었다.


나는 차를 세우며 순간적으로 ‘이 차 주인이 돌아오면 꽤 성가시겠구나’ 하는 상상을 했다. 차문을 열 때마다 옆 차와 부딪힐까 삐죽삐죽 몸을 비틀어야 할 상황이 뻔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마치 어디 숨어 있다가 튀어나오기라도 한 듯, 그 차의 주인이 날아오듯 나타났고. “차 좀 빼주시죠! 제가 차를 탈 수가 없잖아요!” 사과도 없이 그녀는 이미 불쾌함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차 쪽을 유심히 살피더니 눈빛이 돌변했다. “여기 보세요, 흠집이 났잖아요!” 순간 그녀의 도끼눈이 번쩍하며 나를 향했다. 나는 스쳤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아무런 충격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과라는 단어는 떠오르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도리어 ‘사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더욱 날 몰아붙였다.


차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흠집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흔적 하나가 보였다. 바퀴 옆에 살짝 스친 선, 물티슈로 한 번 문지르면 지워질 것 같은 그것. 그런데 그 작은 흔적 하나가 블랙코미디의 막을 올려버렸다.


상대는 막 신혼 티가 나는 젊은 부부였다. 새로 뽑은 수입차를 애지중지하는 눈빛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는 부모 같았다. 휠에 반짝이는 조명을 비추듯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미세한 흠집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듯 확인하는 모습에 나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속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 정도면 내 가방에선 빈티지 효과라며 오히려 더

편하게 몰고 다닐 텐데.

물론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몇 달치 월급을 고스란히 넣은 차일 수도 있고, 신혼부부의 첫 자산일 수도 있다. 애지중지할 만하다. 하지만 아이러니는 거기에 있었다. 그토록 새것에 집착하며 먼지 한 톨에도 심장이 철렁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인생은 결국 여기저기 흠집이 나며 굴러가는 것인데, 그 작은 흠집에 세상이 무너진 듯 반응하는 장면은 묘한 쓸쓸함을 안겨주었다.


각자 불려 온 각자의 남편들이 도착했을 때였다. 내 남편은 그 차가 어떤 브랜드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나를 오히려 한심한 듯 쳐다봤다.

그제야 T자가 콕! 박힌 수입차량이라는 사실을 안 나는 어찌나 속 땀이 맺히던지.. 그러던 중

반면 상대 남편은 보험처리를 하지 않으면 자기 쪽에서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불법주차부터 시작된 일이었으니, 먼저 사과하는 게 인간적인 예의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정의대로만 굴러가진 않는다.


그날 나는 삶의 게임에서 한게임 졌다. 조급한 성격 때문에 사고를 만들었고, 호들갑 앞에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하지만 작은 교훈도 얻었다. 삶은 흠집을 피하는 게 아니라, 그 실수로부터 다음에 생길 큰 상처를 방지하는 일이 되기를


새 차엔 상처가 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흠집이 아니라, 그 흠집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다. 젊은 부부의 도끼눈과, 내 무력한 웃음 속에서 나는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애지중지한다. 누군가에겐 차가 그렇고, 또 다른 이에게는 낡은 천 조각이 그렇다. 나는 오래된 헝겊을 붙들고 밤을 새워 바느질할 수 있고, 그들은 새 차 휠의 먼지 하나에도 잠을 설치며 신경을 곤두세운다. 각자의 ‘소중함’이 다른 것일 뿐이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흠집은 결코 인생을 망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흠집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이야기를 얻게 된다. 마치 오래된 가방의 바랜 자국이 그 가방의 역사를 말해주듯, 사람의 삶 역시 상처와 흠집 속에서 더 단단해진다.


그날, 젊은 부부의 과민한 반응에 순간 억울하고 답답했지만, 돌이켜보니 그것도 나에게는 좋은 공부였다. 인생의 시험지는 늘 사소한 순간에 불쑥 등장하고, 나는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다음번을 위한 연습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삶과의 게임에서 지는 날, 그 패배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연습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는 더 여유롭게, 더 유머러스하게, 또 다른 흠집 앞에서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남편에게 툭 한마디 던지고 쿨하게 말했다.

들이받아 박살 난 게 아니니" 참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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