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두던 안 두던 흐르는 언어를 붙잡아보다.
삶은 본질적으로 유한하기에 그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 젊은 시절에는 모든 것이 영원히 이어질 듯 보이지만, 시간이 쌓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소멸과 유한성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나, 다 덧없다”라는 말은 체념이나 허무가 아니라, 오히려 삶을 관조하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완전하고 아름다운 것도 결국은 사라질 운명을 가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고, 더 깊은 평온을 얻을 수 있겠지
나 역시 어느덧 어머니와 할머니의 말씀이 왜 그렇게 자주 입에 오르내렸는지 알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반백 년을 지나오니,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말들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냐, 다 덧없다.” 젊은 날에는 허무의 다른 이름으로만 들리던 이 말이, 이제는 한 세대의 목소리를 넘어 나의 언어가 되었다.
덧없음은 삶을 공허하게 만드는 대신, 매 순간을 더 소중하게 바라보도록 일깨우는 말..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귀하고, 사라질 운명이라서 아름다운 것 아니겠는가.
덧없음을 부정하는 대신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우리를 삶의 진짜 본질로 데려다주는 문일지도 모른다.
덧없음은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매 순간을 ‘다시 확대해 보게 하는 돋보기이다. 영원하지 않기에 오늘이 귀하고, 붙잡을 수 없기에 이 순간이 빛난다.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이 허망하다면, 피어 있는 짧은 순간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특권일 것이다.
어쩌면 덧없음은 우리를 가볍게 만드는 집착에서 놓아주고, 소유의 무게를 덜 어내며, 남은 생을 조금 더 자유롭게 살도록 돕는 언어가 되길 바란다. 끝을 알기에 시작을 사랑하게 되고, 소멸을 알기에 살아 있는 지금을 감사하게 되기를 바라는 단어가 아닐까?
그러니 덧없음은 " 덧없다" ~한숨짓는 허무의 언어가 아니라, 삶의 가장 큰 스승으로 여기라는 우리네 어르신들의 소망 아니었을까. 소멸의 운명을 알면서도 여전히 살아내고, 사랑하고, 웃는다. 그 자체가 삶이 주는 역설적인 선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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