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가치에 의미를 둔다는것

by 스틸앨리스

좋아하는 빵집에 들러 커피 한 잔과 빵을 함께 담아 나오던 순간은, 하루를 견디게 하는 작은 사치였다.

그날도 그랬을 것이다.

진열대 위, 윤기나는 빵 위로 파리가 앉아 작은 입으로 ‘깨작’거리는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그 이후로 나는 오픈된 빵을 사 먹지 않는다.

그 장면은 단순한 비위의 문제가 아니라, 몸에 각인된 기억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이 선택한 곤충)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이 바로 그 빵집이었다는 사실은, 이 책이 파리에 대해 얼마나 불편하면서도 정직하게 질문을 던지는지 보여준다.

조너선 밸컴은 이 책에서 묻는다.

우리가 혐오하는 존재는 정말로 쓸모없는가? 아니면, 이해되기를 거부당한 존재일 뿐인가?


파리는 우리에게 왜 이렇게 불쾌한가?

혹시라도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파리는 위생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안심하던 일상을 단번에 불안으로 뒤집는 불결의 아이콘 아닌가

그래서 파리는 인간 사회에서 종종 통제되지 않는 무엇에 비유된다.


더러운 곳과 깨끗한 곳을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우리가 애써 유지해 온 질서를 무심하게 침범한다.

마치 통제되지 않은 욕망이나 탐욕처럼 말이다.


그래서 파리는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무의미하지 않는다

파리는 우리에게 경계하라고 말하는 존재, 최소한의 위생과 책임을 상기시키는 살아 있는 경고등 같다.


그 이후로 파리가 활개치고 다니는 빵집은 더 이상

가지 않게 됐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파리는 필요한 존재다?

작가의 자리로 이동하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밸컴은 파리를 ‘혐오의 상징’으로 고정시키지 않는다.

그는 파리를 분해자, 무보수 환경미화원, 생태계의 가장 성실한 하위 노동자로 묘사한다.

너무 흥미로운 표현 아닌가? 파리가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여름이면 창문을 활짝 열어 신선한 공기를 곤충 걱 정 없이 즐기지 않을까? 나만의 생각은 그렇게 짧고도 단순했다.

파리의 역할을 잊고 있었던 순간 그 이면을 알기 전까지.


부패는 멈추지 않고, 죽음은 정리되지 않으며, 자연은 스스로를 회복할 방법을 잃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파리는 우리가 외면한 자리에서, 가장 더러운 일을 대신 수행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 책이 단순한 곤충학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 시선에 대한 질문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늘 묻는다.“나에게 이로운가?”


“그럼에도 필요한 존재는 아닌가?”


파리를 이해한다는 것, 용서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도 나는 여전히 오픈된 빵을 고르지 않는다. 이해가 곧 호감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달라졌다.

파리를 볼 때, 예전처럼 단순히 쫓아낼 대상이 아니라

‘내가 혐오함으로써만 유지되는 질서의 이면’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것.


밸컴은 .우리의 시선을 조금 넓히자고 권한다.

불편함을 제거하기보다, 불편함이 생겨난 맥락을 보자고 말한다.


(신이 선택한 곤충)은 파리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떤 존재를 가치 있다고 부르는 기준에 관한 책이다.


깨끗함, 유용함, 호감도라는 인간의 잣대 밖에 있는 존재들은 대개 혐오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정리된다.

하지만 생태계는, 그리고 삶은,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빵 위의 파리를 다시 떠올리면 여전히 불쾌하고 역겹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그 작은 곤충 하나가,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일부라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외면해 온 많은 존재들 역시 그 자리에 그렇게 남아 있었을 뿐이라는 것도

화요일 연재
이전 11화진짜 어른이 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