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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Feb 12. 2016

#156 인생에서 한번쯤 커피와 함께한

커피집을 할 때 일이다.


공정무역 사업을 하시는 PEACE COFFEE 대표님으로부터 원포인트 레슨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쩌다보니 공정무역 커피에 대해서 특강을 나가게 되었는데, 실제 생두가 얼마에 거래되는지, 정말 그 사업이 할 만한 것인지처럼 생생한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이 넘도록 커피집 창문에 기대 열변을 토하던 대표님은 '이 정도 알려주면 당장 우리 스태프로 들어와야 되는데' 라면서 껄껄 웃었다. 


레슨을 마무리할 즈음이었다. 커피 사업의 의미에 대해 이런 말씀을 덧붙였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카페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릅니다. 수없이 많은 커피집이 생기고 문을 닫고 하니까요. 하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 이렇게 커피와 함께 한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팔다보면, 그래서 커피를 공부하면서 커피라는 산을 열심히 올라가면 그 산 꼭대기에서 산에 있는 여러 골짜기가 한 눈에 보여요. 이 골짜기는 공정무역과 연결되어 있고, 저 골짜기는 세계화와 연결되어 있고, 또 다른 골짜기는 제국주의고, 빈곤에 GMO에 인증제도에... 커피를 중심으로 그렇게 연결된 세상을 한 눈에 보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 날 공정무역 커피 업계의 현황에 대해 정말 세세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제대로 된 노트도 한 권 없어서 손바닥만한 일수 돈 광고지 뒷면에 메모를 휘갈겼다. 메모지가 하도 많아서 나중에 순서를 찾아 정리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건만, 지금은 커피 생두 원가니 1kg당 이익이니 하는 것들이 조금도 생각나지 않는다. 생생한 것은 그저 두 시간 레슨의 말미에 들었던 산꼭대기와 골짜기 이야기 뿐이다. 


실제로 운영하던 커피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경쟁이 치열했던 탓도 있고, 경험이 부족했던 까닭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내가 '까무러쳐 죽더라도 이것만은 반드시' 하는 식의 마음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은 대표님 말씀대로 '인생에서 한 번쯤 커피와 함께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 후에 직장을 다니고, 글을 끄적이고, 마이크를 붙잡은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그 날의 레슨, 즉 무슨 일을 하던간에 일단 산꼭대기에 올라가 그와 연결된 다른 골짜기들을 한 눈에 본다는 그 이미지만은 종종 생각이 났다. 이직을 권하는 시대, 누구나 평생 몇 번쯤의 커리어 전환을 겪어야되는 변화의 시대에 살면서도 그나마 이유없는 불안감에 덜 흔들리는 것은 산꼭대기와 골짜기라는 그 감각 덕분이 아닐까 한다. 


어쩌면 방법론으로서의 자세 같은 것이다. 어디에 있건 간에 계속 공부하려는 마음이 있는 한, 그다지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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