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을 함께 한 동기를 만났다. 나보다 여덟 살 어린 친구다. 그 친구는 적당히 입대를 했고 나는 굉장히 늦게 간 덕에 8년 차이가 나는데 군번이 같다. 살다보면 이런 인연도 있는 것이다. 제대를 하던 날 남대문 시장에서 칼국수를 나눠먹고 질질 울면서 헤어졌던 게 생생한데 어느새 그로부터 8년이 더 지났다. 이제는 그가 그 시절의 내 나이다.
“예전에 형이 말하길, '나이가 들면 더 좋아.’라고 했는데 서른 살쯤 되어보니 이제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군대에 있을 때, 서른이 넘으면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스무살 무렵인 친구들에게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가늠이 안되었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누군가는 가정을 꾸리기도 하는 그런 나이가. 그들은 궁금해 했다. 인생에서 좋은 시절은 다 끝났을지도, 아니면 모든 것이 다 갖춰져서 든든할 거라고도 생각했다. 초롱초롱한 스무 살들은 서른 살의 진실이 둘 중 어느 쪽인지 알고 싶어 했지만, 서른의 내가 보기에 답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서른 이후에도 인생의 가능성은 무궁하게 열려있었고, 서른이라 해도 단단하게 손에 쥔 것은 무엇 하나 없었으니까. 다만 한 가지는 그래도 확실했다.
“서른 살이 되면 스무 살 때보다 마음이 편해. 나이가 들면 더 좋아.”
나는 그랬다. 스무살 무렵에는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가야할 길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일뿐이었다. 그 생각이 나의 것인지 아니면 주변의 생각을 내 것이라 착각하는지 구분할 수 없었는데, 그런 까닭에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과 ‘이 길이 맞는 걸까’라는 회의 사이를 자주 왔다갔다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방황이라 불렀다. 그 방황을 편안하게 경험할 만한 지혜가 나에게 있을리 없었으므로 불안감은 종종 찾아왔다. 그것이 스무살 무렵, 20대의 이야기였다.
나이가 드니 확실히 나아졌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았고, 하기는 하더라도 잘 할 수 없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는지 이해하는 것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 테이블에서 접시들이 몇 개 치워지자 남은 음식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집중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고, 불안감이 사라진 자리를 꾸준함이 대신했다. 잔치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친구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열심히 살아왔구나. 그 말을 이해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제 30대가 거의 지나가면서 보니, 서른 살보다 지금이 더 좋아. 점점 더 마음이 편안해질거다. 계속 열심히 살기만 하면.
얼마 전에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방송을 보았다. 그 분은 1920년 생이다. 내후년이면 만으로 100년을 사시게 되는 셈이다. 100년의 삶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60세에서 80세까지가 아마도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다행이다. 아직 잔치는 제법 남아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