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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n 29. 2019

#220 '하고 싶은 일'로 뛰어내리는 3가지 방법

자신을 ‘중년’이라 소개하는 여떤 여성 분이 법륜스님에게 질문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는데 아직까지 못 찾았다고, 어떻게 하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지금까지는 영업직에서 열심히 일을 해온터라 덕분에 수입은 괜찮은 편이었다고 했다. 법륜스님의 답변은 직업을 구하는 세 가지 단계로 이어졌다. 


첫번째, 일단 먹고 살 수 있도록 아무 일이나 하는 단계다. 사람이 스무 살이 넘으면 어른이다. 그러나 진짜 어른 대접을 받고 싶으면 자기가 밥을 벌어 먹고 살아야 한다. 스님은 군대를 제대하거나 대학을 마친 뒤에 ‘취직을 준비하는 중이에요’라며 쉬고 있는 청년들을 보면 당장 편의점이든 식당이든 당장 아무 곳에나 나가 아르바이트라도 하라고 호통을 쳤다. 취업 준비는 그러면서 같이 하는 거라고. 일일부작 일일부식(一日不作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동물들은 먹이를 구하지 못하면 당장 굶어야 하지 않는가. 제 손으로 밥벌이를 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이 아니라 동물의 기본이다. 물론 여기서의 ‘아무 일’에는 불법적인 일과 부도덕한 일은 제외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두번째, 최소한으로 먹고 살게 되었다면 그 다음은 더 잘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단계로 넘어간다. 어차피 일을 할 바에야 내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다. 효율성’이라고 해도 좋다. 이 효율성에는 당연히 보수가 더 높고, 직급이 더 높은 일이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회적인 성공’과 비슷할 것이다. 똑같은 시간을 일하면서 더 성공할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짚고 가야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이 단계에서 기준이 되는 ‘효율성’은 다분히 외적인 요소라는 점이다. 줄자를 대어 연봉의 높고 낮음을 잴 수 있지만, 그 줄자를 가져다 마음의 만족도를 잴 수는 없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대한 갈증은 이 단계에서는 해소가 불가능.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머물고 만다.


마지막 세번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사는 단계다. 이 단계에 이르면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하나가 된다. 이제부터 일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가 되므로 더 이상 ‘일하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로는 ‘일한다’고 하더라도,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억지로 출근한 직장인이 ‘나 지금 일하는 중’이라고 하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일이자 놀이이고, 일이자 춤이며, 일이자 휴식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게임에 로그인할 때와 똑같은 심정이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진정한 ‘노동(勞動)의 해방’이 일어난다.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퇴근 시간이나 불금을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일하느라 번 돈을 쇼핑에 쓸 이유도 없다. 스트레스가 있다면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일로 달려가야 세번째 단계에 사는 사람이다. 이런 경지를 마크 트웨인은 아주 간결하게 표현했다. "성공의 비결은 당신의 직업을 휴가로 만드는데 있다(The secret of success is making your vocation your vacation.)” 


그런데 이 멋진 단계까지 나아가는 사람이 왜 드물까. 간단하다. 세번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사는’ 단계다. 보통은 첫번째 단계로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다음 자격증을 따거나 이직을 하면서 두번째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단계에서 부지런히 나이를 먹으며 몇년을 보내면 주택까지는 어렵더라도 자기 이름으로 적금 통장 정도는 손에 쥐게 된다. '사회적 성공’에 조금 더 빨리 도달한 사람들은 부동산이나 투자 포트폴리오처럼 보다 묵직한 것들을 주머니에 불룩하게 넣고 다닐 수도 있다. 대개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그 다음이다. '두번째 단계에 닿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라는 자각이 그 고민의 문을 슬그머니 열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높은 효율성까지 단숨에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단숨에’ 닿는 것은 고사하고 ‘슬그머니’ 연착륙이라도 할 수 있으면 사실상 행운아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잘 먹고 잘 사는’ 수준이 아니라 그저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을 현실적인 목표로 해야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시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미 효율성을 맛본 사람의 눈에 ‘먹고 사는’ 단계가 성이 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매달 나가는 카드값이나 주택 대출금을 떠올려보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골짜기 저쪽 반대편으로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리는 수준의 결심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이쪽 절벽 위에 선 채로 절대 뛰어내리지 못할 반대편 절벽을 보며, 공허한 마음을 안고 사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마음이 가능한 덜 괴로우면서도 결국 어떻게든 세번째 단계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이다. 감사하게도 아주 넉넉한 환경에 태어나 처음부터 자기가 즐길 수 있는 커리어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환상적인 행운아들은 제외한다. 어차피 마라톤은 각자 각자 달리는 것이니 불필요한 무의미할 뿐 아니라 해악이다.  


우선, 바로 세번째 단계로 들어가 어떻게든 생존하는 길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부동산 업자 시절에 ‘성공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다른 데서 커리어를 쌓아서 올 생각을 말고 가장 밑바닥이라도 좋으니 그 분야에서 시작해야 된다’라고 말했다. 의상 디자인이 배우고 싶으면 옷 디자인 공장에서 최저 시급에 험한 일도 마다 않고 어깨 너머로라도 배우라는 것이다. 이미 부동산 업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트럼프가 얼마나 최저 시급에 험한 일부터 시작했는지 미지수긴 하지만, 그의 조언 자체는 수긍되는 바가 있다.  


둘째, 첫번째 단계로 시작할 때부터 바로 세번째 단계를 모색하는 길이다. 나는 1.2평짜리 조그만 커피 가게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장학금을 받고 과외를 하며 모은 돈을 털어 침대 사이즈만한 가게를 구했다. 공정무역에 관심이 있었고, 한 잔 팔 때마다 원둣값을 기부한다는 아이디어도 가치가 있었으므로 그 가게를 구상할 때는 그것이 세번째 단계에 속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월세를 내고 버틸 수만 있으면 오래 할 생각이었다. ‘먹고 살 수 만 있으면 괜찮다’고 탁 마음을 내려 놓았던 것이다. 나는 비록 그 가게가 실패했지만, 두번째 단계를 포기해 버리면 건너편 절벽으로 훌쩍 뛰기가 쉬운 것은 경험상 확실했다.  


셋째, 첫번째와 두번째 단계를 착실하게 밟되, 세번째 단계로 건너갈 준비를 착실하게 다져 놓는 길이다. 여기서 준비를 다진다 함에는 몸으로 하는 행동와 마음으로 하는 각오가 모두 포함된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틈나는 대로 그것을 하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확인하고, 그 일로 넘어가더라도 막막하지 않게끔 어느 정도 일감을 만들어두는 것은 몸으로 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저쪽 절벽으로 훌쩍 뛰어내렸을 때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것, 즉 ‘먹고 사는 수준’으로 돌아갈 수 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음으로 하는 각오다. 두번째 단계에서 차곡차곡 쌓아놓은 통장의 숫자들은 그 각오에 제법 도움이 된다.  


이 세 가지 길을 통하면 세번째 단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해서 마지막 절벽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일어서서 먼지를 툭툭 털고 보니, 다행히 발을 삐끗하지도 상처가 나지도 않았다. 이쪽에 오고 보니 여기도 나름의 효율성이 있게 마련이라, 부지런히 하다보면 어떻게든 잘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세번째 단계에 닿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만약 “나는 이미 먹여살려야 할 가족이 있고, 매달 들어가는 돈이 있는데 한가한 소리 하지 말라고!” 라며 소리를 친다면 나는 어깨를 으쓱할 것이다. 그곳에 계시면 됩니다. 그쪽 절벽에는 그쪽 절벽 나름의 흥취가 있을테니까요. 그저 ‘진정으로 원하는 삶’ 운운하며 괴로워하지 않으시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이쪽으로 오기를 잘했다. 부지런히 일을 해도 일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히 멋진 일이다. 며칠 전, 영화 한 편을 보러 햇살 가득한 오후에 한 독립 영화관으로 향했다. 표를 예매하고, 영화관 옥상에서 달력을 보니 이쪽 절벽으로 뛰어내린지 한달 반이 지나 있었다. 한달 반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쉰 날이 단 하루도 없었음을 문득 떠올렸다. 음. 꽤 행복하게 살았군, 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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