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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l 14. 2019

#225 From Michael Jackson?

회사에 있을 때 뉴욕 출신 Jamie와 한 팀이 된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영어 공부 한 번 해 본 적 없는 나였지만, 국내 사업을 담당한다는 말에 ‘별 일 없겠지’ 라고 생각했다. 물론 완전한 오산이었다. 최소한 팀의 단톡방과 업무 회의는 영어로 이루어졌으니까. 나는 구글 번역기와 영문법 체크 어플의 도움을 받아 꾸역꾸역 업무를 따라갔다.  


영어 팀에 가서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나에게 영어로 된 이름 하나쯤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하기사 요즘은 스타벅스만 가도 직원들이 ‘Summer’니 ‘Hanna’니 하는 영어 명찰을 달고 있으니까 특별할 일은 아니다. 업무를 하다 보면 영어 명함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음날 이렇게 말했다.  


“I made my English name. It’s Michael. I’m Michael Han.” 

“Oh! Cool! Michael from Michael Jackson?” 

“No. Michael from Michael Singer.” 

"Michael Singer? Who is he?” 


마이클 싱어. 많이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기 힘든 사람. 그는 원래 평범한 경제학부 대학원생이었다. 1947년 생으로 긴 머리에 가끔 맨발로 다니기도 하는 히피였으나 그 당시에는 히피가 꽤 많았으므로 그 정도는 ‘평범한’ 젊은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다. 어느날 명상을 하다가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좋다’ 혹은 ‘싫다’라는 딱지를 붙인다. 장사가 잘 되면 ‘좋다’고 하고, 회사에서 쫒겨나면 ‘싫다’고 한다. 이상형을 만나면 ‘좋다’고 하고, 감옥에 들어가면 ‘싫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좋다’와 ‘싫다’는 누가 판단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뇌가 판단한다. 그렇다면 뇌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까. 역시 간단하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한다. 의문이 드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내가 가진 과거의 경험들이, 과연 무엇이 정말로 나에게 좋은 것인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것일까.  


사실 우리의 경험들은 대단히 초라하다. 기껏해야 몇 십 년을 사는 동안 머릿 속에 저장한 데이터 아닌가. 그 정도의 얄팍한 데이터를 가지고 무엇이 진정으로 나에게 좋은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해고당할 때 배신감으로 길길이 뛰었지만, 훗날 고백하기를 그 덕분에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아베베 비킬라는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뒤에 폭스바겐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지만, 그 차를 몰다가 사고가 나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가기 싫은 마음을 누르고 억지로 나간 자리에서 이상형의 연인을 우연히 만날 수도 있고, 이상형이라 생각했던 그 사람이 알고 보니 사기꾼일 수도 있다. 무엇이 진정으로 나에게 좋은지, 엄밀하게 이야기하건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좋은 일이라 기뻐하고, 나쁜 일이라 침울해질 필요도, 사실은 없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마이클 싱어는 차라리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한다. 내가 가진 조그만 지성으로 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 나보다 확실히 더 큰 지성에 내 삶을 그냥 맡기기로.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저 한 번 잘 살펴보는 것이다. 마이클 싱어가 생각한 자신보다 확실히 더 큰 지성, 그것은 바로 ‘삶’ 자체다.  


“삶이 우리에게 주려는 것이 우리가 스스로 얻어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싱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삶이 자신에게 내미는 손짓’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예스’라고 답하기로 결심한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만 좋고 싫음의 문제일 뿐이라면,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취향과 계획을 고려하지 않고 그 손짓에 웃으며 응답하기로 한 것이다. 좋고 싫음을 내려 놓는 연습. 그는 그것을 ‘내맡기기 실험(Surrender Experiment)’이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이 연습은 날씨를 두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식이다. 소풍을 가기로 한 날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억수로 내리고 있다. 원래의 나라면 ‘젠장! 비라니! 싫어!’ 라는 생각이 들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싱어는 그럴 때 다만 이렇게 중얼거렸다.  


“참 아름답구나. 비가 내리네.”


물론 이런 연습이 차가 막힐 때 짜증이 덜 나게 하거나, 반찬 투정하는 버릇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로 인해 가정이나 직장에서 ‘요새 얼굴이 좋아보여요’라는 말을 듣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삶이 싱어에게 준 선물은 그런 소소한 것들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경제학과 교수가 되었고, 건축업자로 성공했으며,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마침내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의 CEO가 되었다. 영성 공동체의 리더이자 전미 1위에 오른 베스트셀러의 작가로서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것도 언급할 가치가 있는 선물들이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도 여전히 숲 속에 사는 싱어는 소설로 쓰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그의 기적이 삶이 주는 모든 것을 따르기로 시작한 순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성공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우주가 직접 시킨 것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응답했다."


Michael Singer가 누구냐고 Jamie가 나에게 물었을 때, 나의 영어는 이런 설명을 차근차근 해줄 만큼 유창하지 못했다. 1년이 지나지 않아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났고, 그 뒤로 나를 Michael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혹여 앞으로 내가 영어 이름을 소개할 일이 생긴다고 하여도 Michael from Michael Singer라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괜히 그렇게 사족을 붙였다가 “Singer? You mean Michael Jackson?”이란 질문이 꼬리를 물면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똑같이 싱어처럼 생각하면서 일하는 중이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우주가 직접 시킨 것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응답하는 것. 그렇게 일하다 보면 어디에 닿아도 닿겠지, 라고 생각한다. 이 글도, 어제의 글도, 그리고 내일 쓸 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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