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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21. 2015

#97 계관시인 테드 휴즈의 '시 쓰는 방법(詩作法)'

시를 쓰고 싶은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전후(戰後) 최고 시인의 조언

외근을 나가는 자동차 뒷좌석이었다. 


함께 탄 회사 동료와 실타래를 주고받듯 수다를 떨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무슨  전공을 하셨어요?"


동료는 활짝 웃었다.

"문예창작이요."


전공을 이야기하면서 활짝 웃는다는 것은 선택에 만족한다는 뜻이다.

"재미있었어요? 문창과?"


환한 웃음이 끄덕인다.

"네, 아주 재미있었어요."


"문창과에서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뭐예요?"


뜸 들이지 않는 대답.

"시작법이라고, 시 쓰는 방법이에요. 얇지만 무척 재미있어요."


얇다는 말에 환한 웃음을 이어받았다.

"그래요?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

시작법詩作法. 원제는 Poetry in the making.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즈가 지은 책이다. BBC 교육방송에서 글쓰기 교육 프로그램에 사용한 원고를 모았다.


테드 휴즈는 전후 세계 최고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2008년 타임지에서는 그를 "1945년 이후 영국의 위대한 시인 50인"으로 꼽았다. 


테즈 휴즈는 계관시인이었다. 계관시인이란 (월)계관 시인 poet laureate을 말한다. 로마와 그리스에서 명예의 상징으로 월계관을 수여하던데서 유래했고 영국 왕실이 가장 명예로운 시인에게 내리는 칭호다. 계관시인은 종신직이었고, 일정한 연봉을 받았다. W. 워즈워스나 C.S. 루이스(그는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유명하다)도 계관시인이었다.


당대 최고의 시인이 쓴 시작법 여기저기에는 고수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이 책을 옮긴 역자는 테드 휴즈의 다음과 같은 한 구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마침내  열다섯  살가량이 되자 내 삶은 좀 더 복잡해졌고 동물들에 대한 나의 태도 역시 변했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동물들의 삶을 휘저어 놓은 데 대해 스스로를 꾸짖었다. 나는 이제는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 나름의 관점으로.

<시작법>을 두 번 읽었다. 그리고 나중에 써먹어보고 싶은 긴요한 조언은 따로 갈무리해 두었다. 테드 휴즈의 가르침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계관시인 테드 휴즈는 '시를 쓰고 싶어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첫째,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것


<시작법>의 머리말에서 테드 휴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에서 나는 어느 누구에게 있어서나 자기 표현의 잠재능력이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하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학생의 상상력에 많은 기회를 주고 억제하지 않음으로써 그에게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과 자연스러운 동기를 조금씩 주입시킨다면, 그 나머지는 우리의 평범한 재능(그렇게 많지는 않더라도 어느 만큼은 있을 것인데)이 말로 표현하기 시작할 것이다.

잠재능력이 무한하다는 말, 충분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우리의 재능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말, 달릴 수 있으리라 믿지 않으면서 계속 달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달리는 동안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무슨 말을 해주느냐에 따라 결과가 좌우될 것이다. 무슨 일을 하건, 우리에게는 적어도 한 명의 응원군, '나 자신'이 필요하다.


또한 휴즈는 친절하게도 소설을 쓰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는 작가 지망생에게도 용기를 북돋는 조언을 건네주었다. 

아마도 여러분은 줄거리에 대해 어떻게 그것을 이끌어가야  할지 어떻게 소설이 그처럼 길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걱정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말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일단 여러분이 그것을 움직이도록 해 놓은 다음부터 그것은 스스로 창조하고 여러분을 대신하여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 가운데 몇몇은 그것을 거의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물들은 자기 나름의 길을 밀고 나아갈 것이며 여러분을 모든 류의 상황과 예기치 못한 구석구석으로 이끌 것이다. 

여러분이 해야 할 한 가지는 그것이 마치 멈추지 않고 가라는 괴상한 거인의 뼈처럼 자라게 내버려 두는 것이며 그것을 펜 끝으로 따라가는 일이다. 또한 너무 멀리까지 앞을 내다보려 애쓸 필요도 없다. 

둘째, 스스로를 짜내 볼 것


소설가 김연수는 대학시절에 매일 같이 습작연습을 했다. 한 시간 동안 시 한 편을 써내는 것인데, 대개 상당한 분량의 장시를 휘갈기곤 해서  친구들로부터 "차라리 소설을 써보는 게 어때?"라는 말을 들었다.


스스로를 짜내는 연습은 시간 제한이라는 링 안에 우리를 던져놓고 '글'이라는 헤비급 상대와 데쓰매치를 붙이는 것과 같다. 흥분한 관중의 함성, 팔각형의 거친 철조망, 땀으로 미끈거리는 상대의 몸뚱이. 그 앞에 우두커니 던져진 넥타이 차림의 회사원처럼 우리는 긴박한 자극 앞에서 잠자던 본능을 깨울 수 있다.

정해진 제목으로 곧장 집중해서 즉흥적으로 시를 쓴다는 생각이 더욱 중요하다. 일단 주제가 선정되면 주어진 길이(예컨대 한 페이지 분)와 주어진  시간(10분가량)에 따라 연습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인위적인 한계가 위기감을 조성해서 두뇌의 자원을 샘솟게 하는 것이다. 

서두르라고 강제를 하면 평범한 조심성은 타도되고 모든 것이 최고의 속도로 움직여져서, 보통 때에는 숨어있던 것들이 모두 돌출구를 찾아 나오게 된다. 장벽이 부서지고 죄수들은 감옥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셋째, 자기에게서 출발할 것


고객, 고객, 고객.

자나 깨나 고객을 생각하라는 것은 마케팅의 기본 가르침이다.


하지만 무의미한 서류뭉치와 끊없이 이어지는 시장 조사로 물든 핏빛 레드오션 위 어딘가에 맑은 샘이 퐁퐁 솟고, 푸른 잎의 야자수가 우거진 빛나는 섬이 하나 있다. 천국과 섬을 연결하는 무지개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고 전해진다.


"자기에게서 출발하라."


나는 이 섬에서 태어나 줄지 않는 열매의 풍요를 즐긴 사람들 중 몇몇을 안다. 


시장조사를 하지 않은 스티브 잡스. 

개성 있는 가게를 꾸린 우노 다카시.

자기가 읽고 싶은 소설을 쓴 스티븐 킹.

80억의 연봉을 지루하다는 이유로 버리고 나온 토니 셰이.


테드 휴즈는 우리에게도 이 섬의 거주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을 조언했다. 

어떻게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는가. 

확실히, 어떻게 해야만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는가는 전 세계의 수많은 작가들이 알아내려고 고심한 문제이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오직 진실로 여러분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이 재미있게 쓰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법칙이다. 지금 내가 몸을 던져 정말로 빠져들 수 있는 나 자신의 진정한 관심거리는 무엇인가. 내 삶의 어떤 부분이 내가 죽기 전에는 결코 나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것일까. 여기에서 해답이 나오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곧 여러분은 원하는 만큼 그것을 많게 건 적게 건 꾸며내서 소설을 그런 궤도에 대입시키게 되는 것이다. 

즉 여러분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을 가장 보고 싶은가. 또는 어느 장소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가. 아니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넷째, 생각하는 방법을 알 것


<시작법>의 제 4장은 '생각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최고의 시인이 가르쳐주는 생각하는 방법이란

리처드 파인만이 직접 마이크를 잡는 물리학 특강처럼 근사하게 보이지만, 실상 4장의 내용은 단 한 마디로 모아진다.

집중할 것. 
만일 여러분이 '아저씨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요청을 받으면 여러분은 그 아저씨에 대한 생각을 머리 속에 얼마나 오랫동안 붙잡아 둘 수 있겠는가. 

곧바로 여러분은 그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자마자 그는 여러분에게 다른 어떤 것을 상기케 해 주고는 자신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다 해도 배경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그러면 다시 그 아저씨를 불러 오도록 하자. 그리고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말고 아저씨에 대해서만 상상해보라. 


나는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유명한 심사위원이 도전자에  대해했던 말을 기억한다. 도전자는 하루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미션으로 주어진 과제를 마스터해서 심사위원 앞에서 공연해야 했다. 가사를 틀리는 도전자에게 심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가수에게 제일 중요한 능력이 집중력이에요."

대체 어디서 시인은 그처럼 하나의 물체에 자신의 생각을 앉히는 법을 배웠을까. 그런 능력은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것을 결코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하며, 많지 않은 사람들만이 그러한 능력을 갖고 있을 뿐이다. 

내가 가진 능력은 그렇게 대단한 것은 못되지만 나는 어느 정도의 기술을 익혔는데 그것은 학교에서가 아니라 낚시를 하는 동안에 였다. 작고 단순한 대상에 단순한 집중을 해보는 일은 모든 정신 훈련에 있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어떠한 대상도 괜찮다. 5분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며 시작하는 데에는 1분으로도 족하다. 만일 이 훈련이 모든 수업 때마다 되풀이된다면 그 결과가 곧 나타날 것이다. 글쓰기 연습은 이 뒤에 따르는 것이다.  

최고의 시인은 담담하게, 시를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조언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

스스로를 짜내 볼 것.

자기에게서 출발할 것.

생각하는 방법을 알 것.


'시' 대신에 '삶'이라는 글자를 넣어 읽어도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2001년에 나온 이 책은 지금 절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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