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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20. 2015

#96 하루키처럼 '작정하고' 시작해볼까요

그는 원래 소설가를 꿈꾸던 사람은 아니었다

<1Q84>,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로 엄청난 독자를 거느린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는 노벨 문학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일본 작가라는 평을 듣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두 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지요. 뛰어난 묘사와 감각적인 문체,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독도는 식민지배의 상징'이라 고백한 실천적 지성인,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상을 한다면 일본 작가로는 세 번째 영광을 안게 됩니다.  

하루키는 원래 소설가를 꿈꾸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와세다대에서 문학을 전공했지만 '전공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대로 수업을 들은 적은 없었습니다. 

"칠 년 동안이나 적을 두었으면서도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 와세다 대학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지금의  마누라뿐인데, 마누라감을 찾았다는 게 교육기관으로서 와세다 대학의 우수성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몇 년 동안 바를 운영하며 칵테일을 만들었습니다. 재즈를 듣고, 밤새도록 온더락을 말며, 손님과 수다를 떠는 시간이 제법 나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이십 대 후반의 하루키를 본다면 한적한 시골 어디쯤에서, 자식도 없이 또 왁자지껄 한 친구도 없이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지금 그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제법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교 시절 나는 소설가가 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내가 언젠가 제대로 된 글을 쓰게 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책을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니, 책 담았던 상자의 냄새만으로도 행복했다. "


그러던 어느 날, 메이지 진구 구장의 1루 쪽 관중석에 앉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야구 경기를 보던 중에 쭉쭉 뻗어나가는 2루타성 타구의 행방을 쫓으며 문득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스물아홉 살이 되고 난데없이 소설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뭔가 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나 발자크에 필적할 가망은 없겠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잖아." 

하루키의 작업 스타일은 이렇습니다. 


머물고 싶은 나라를 정합니다. <상실의 시대>는 그리스에서, <댄스 댄스 댄스>는 이탈리아에서, <태엽갑는 새>는 보스턴에서 썼다고 합니다. 


두세 달 정도 미리 약간의 언어를 공부합니다. 간단한 현지 회화와 영어면(하루키는 프린스턴대에서 객원 교수로도 있었지요) 어느 곳에 가든 그럭저럭 말은 통할테니까요.


매일 글을 씁니다. 소설과 아울러 외국 생활 체류기랄까, 집필 기간 동안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을 수필로 묶습니다. 그래서 소설과 함께 이국적인 향기가 물씬 배어있는 수필을 같이 발표합니다. 


얼핏 보면 유유자적이 따로 없는 천국 같은 삶입니다. 외국, 여행, 소설. '낭만'이라 제목 붙은 카탈로그가 있다면 목차 1,2,3에 자리 잡을 법한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손을 뻗어 거머쥔 코앞의 자유(하루키의 표현입니다.)"가 무의미한 방만으로 담배연기처럼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서, 하루키가 자유로운 일상에 스스로 부여하는 한 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달리기


하루키의 하루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새벽 다섯 시 기상, 10km의 달리기. 오전과 낮에는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하고 저녁에는 펍에 가서 맥주를 마십니다. 밤 10시면 잠들어서, 다음날 다섯 시에 어김없이 일어나지요. 달리기에 필요한 것은 운동화 한 켤레일 뿐이므로 하루키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환경에 있습니다. 그의 달리기 사랑은 제법 유명합니다. 얼마 전에는 보스턴 마라톤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하루키가 뜀박질을 좋아했다거나 달리기에 적합한 스포츠 심장의 소유자였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첫째는 건강, 둘째는 재능이 나의 좌우명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건강이 재능을 불러올 수는 있어도 재능이 건강을 불러올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발자크처럼 쓸 수 있건 없건간에, 자신의 어딘가에 파묻힌 얼마만큼의 재능이라도 끄집어 내기 위해선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하지요.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 웹툰 <미생> 중에서 


하루키는 데면데면하던 달리기를 일부러라도 그의 일상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초대는 야구장에서 2루타를 보며 문득 지은 결심처럼 하루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되었을 때 작정하고 장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은 전에 내가 쓴 작품과는 적지 않게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 

여름입니다.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는군요. 죽도를 전력으로 부딪히다 보면, 10분을 남겨놓고는 바닥이 드러난 쌀독을 박박 긁어모으듯이 남은 호흡을 잔돈처럼 세어야 하는 철이 되었습니다. 


책이든, 달리기든, 음악이든. 

하루키처럼, 


무언가를 '작정하고' 시작해볼까요. 


우리도 나중에 언젠가, 쭉쭉 뻗는 2루타를 보며

문득 꽤 멋진 꿈을 꿀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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