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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은 Jan 21. 2022

우리의 인생은 모두가 한편의 소설이다

영화 <작은 아씨들> 리뷰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

- 루이자 메이 알코트






    어릴 적 책에 있는 대사와 장면들을 모조리 외울 만큼 몇백 번을 반복해 읽었던 <작은 아씨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개봉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다 영화관으로 달려갔던 날이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에 푹 빠져 행복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 개봉으로부터 어언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외국 영화를 물으면 <작은 아씨들>부터 떠올리곤 한다.









    책이 닳도록 읽으며 수없이 머릿속으로 그리고 상상했던 장면과 대사들이 정말로 눈앞에 펼쳐지는 일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벅찬 일이었다. 특히 크리스마스인데 우리만 선물이 없다며 불평하는 에이미와 우리라도 어머니를 도와드리자고 말하는 메그,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자 달려가 안기는 네 자매, 험멜가에 식사를 양보하자는 어머니의 말에 음식을 챙겨 다같이 험멜가로 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땐 마치 어린 시절 이후 덮어두었던 책장을 다시 펼치는 기분이었다.










    영화 <작은 아씨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으로 전개된다. 과거는 네 자매의 가족과 로리네 가족의 따스하고 행복했던 이야기라면, 현재는 어른이 되어 각자의 현실 속에서 고충과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매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뉴욕에서 작가 일과 가정교사 일을 병행하는 조는 매일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에이미는 본인과 가족을 위한 경제적 거래와도 같은 결혼을 하기 위해 유럽에 있고, 가정이 있는 메그는 궁핍한 생활 속에서 가난에 쫓긴다. 저마다의 현실을 견디는 그들의 모습과 마주하다 보면, 집을 조용할 틈이 없는 곳으로 만들었던 그들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만으로 울컥하는 마음이 생겨나기도 한다.




    영화는 색감을 통해 현재와 과거에 명확한 차이를 준다. 과거의 색감은 대체적으로 주황빛이고, 채도가 높아 생동감 넘치고 따뜻한 분위기인 반면 현재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띄며 채도가 낮아 다소 차갑고 냉소적인 분위기이다. 영화 초반 현재와 과거의 대비를 뚜렷하게 만들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유년 시절에 빠져들게 하고, 현실의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어른이 된 우리에게 때로 힘들고 녹록치 않은 순간들이 와도 여전히 우리의 삶은 반짝일 만큼 아름다우며 그렇기에 우리는 여전히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꿈꾸며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과거
현재







    제 92회 아카데미에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의상상을 수상했던 <작은 아씨들>의 미술과 영상미는 그야말로 아름답다. 배경과 의상은 관객들을 작은 아씨들이 살고 있는 1860년대 미국 메사추세츠 콩코드의 작은 마을로 끌어당긴다. 롱샷으로 배경이 잡힐 때면 하나의 고전 명화 작품을 보는 듯한 황홀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따스한 느낌을 주는 영상미 덕분에 이야기가 가진 따뜻함 역시 더욱 깊이 있게 표현됐다. 디자인에 대해선 깊이 아는 바가 없어 의상에 관해 자세한 후기를 남기기는 어렵지만, 영화에서 의상을 통해 단지 당시의 시대를 나타낸 것만이 아니라 각 캐릭터의 성격과 개성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인생은 모두가 한편의 소설이다




    영화 포스터에 적혀 있던 문장이다. 이 문장을 증명하듯, 그레타 거윅은 여러 등장 인물들을 단지 전개를 위한 도구로 소비하거나 흘려보내지 않는다. 영화 <작은 아씨들>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단연 조라고 말할 수 있지만, 조만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연기를 좋아해 배우를 꿈꾸던 메그가 또다른 자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언제나 가족이 최우선이었던 수줍고 선한 베스가 로렌스 할아버지네 집에 가서 피아노를 치고, 손수 만든 실내화를 선물하며 소중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말괄량이 막내라고만 생각했던 에이미가 대고모님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가족을 위한 결혼을 하려 하는 모습에서 에이미의 남모를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더불어 영화 전반에서 예술가로서 에이미가 지닌 재능 역시 드러나기도 했다.









    영화는 자매들의 어머니나 넷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로리, 베스의 친구였던 로렌스 할아버지의 감정 역시 짧은 장면들을 통해 설득력 있고 섬세하게 풀어낸다. 한정적인 영화의 러닝타임 속에서 각 인물들의 서사와 감정을 모두 담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그레타 거윅의 연출력이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네 자매 모두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것 역시 이 영화가 가진 큰 매력이다.








여자도 감정만이 아니라 생각과 영혼이 있고 외모만이 아니라 야심과 재능이 있어요. 여자에겐 사랑이 전부라는 말에 신물이 나요. 지긋지긋해요. 그런데 너무 외로워요.

영화 <작은 아씨들> 中





    영화에 있어 가장 돋보이는 각색은 역시 결말부다. 원작에서 조는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던 본인의 생각을 꺾고 현실과 타협하여 가정을 꾸린다. 영화에서는 달랐다. 조가 결혼을 하는 장면을 그가 출판을 위해 소설의 엔딩을 수정하는 장면과 맞물리게 하여 조의 결혼이 소설 속의 일인 것처럼 만들고, 실제로 조가 결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관객의 판단에 맡긴다. 영화가 개봉한 이후 그레타의 여러 인터뷰들이나, 결혼 장면 자체를 허구처럼 보이게 만든 연출을 생각하면 그레타 거윅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정도는 금방 알 수 있다. 결말부 각색에 대한 그레타 거윅의 인터뷰를 번역하면 이렇다.



<작은 아씨들>은 그냥 처음부터 책과 같은 결말을 낼 수 없단 걸 알았어요. 우선 작가 루이자 메이 알코트가 책의 결말을 좋아하지 않았고, 루이자가 생각한 조의 운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쓰는 문학인 독신 여성'이었어요. (중략) 150년이 지난 지금도 루이사 메이 알코트가 원했던 결말을 그녀에게 줄 수 없다면, 우리는 그동안 뭘 해 온 걸까요? 아무런 진전도 하지 못했다는 뜻일 거예요.

https://www.filmcomment.com/article/lifes-work/









    그레타 거윅의 연출 의도 역시 그랬겠지만, 나는 조가 결혼하지 않았기를 바랐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늘 꿈을 잊지 않고 잃지 않으며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조가 외로운 마음을 털어놓을 땐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안쓰러웠지만,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잊기 위해 사랑하지는 않았으면 했다.


    독신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외로움이, 꼭 결혼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외로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결혼만이 그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고,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앞으로도 씩씩하게 살아갈 조가 부디 본인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들 속에서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내 꿈이 네 꿈과 다르다고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영화 <작은 아씨들> 中




    메그의 결혼식 날 결혼하지 말고 자신과 떠나자고 말하는 조에게 메그가 하는 말이다. 이 대사가 참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방구석 1열>이란 프로그램에서 변영주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의 삶만을 보여주자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며, 지금껏 세상의 절반에서 나온 다양한 이야기들을 했다면, 이제는 다른 절반의 일상과 삶을 보여줘야 하는 것임을 이야기하셨다.



    세상이 변화해가면서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성의 주체적인 삶이라는 게 꼭 비혼을 다짐하고, 회사에 들어가 경력을 쌓으며 일과 자기계발에 집중하는 삶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주체적이라는 것은 말그대로 여성들이 자유롭고 자주적으로 본인의 삶의 방식과 미래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는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작은 아씨들> 속의 조처럼 독신주의자로 평생을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메그처럼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화목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꿈도 다른 꿈보다 낫거나 못하지 않다. 우리는 그저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응원하면 되는 것이다. 메그와 조가 그랬듯,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함께인 사실까지 변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어떤 천성들은 억누르기엔 너무 고결하고 굽히기엔 너무 드높단다

영화 <작은 아씨들> 中









    어렸던 시절의 네 자매들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도 나의 유년 시절을 돌이켜보게 된다. 시골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그 어떤 것과도 바꾸지 못할 경험과 기억들을 쌓으며 보냈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마냥 행복하기보다도 애틋하고 그리운 마음이 앞서는 것은 아마 그 시절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작은 아씨들>은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책이자, 이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되었다. 가족, 친구, 사랑, 꿈.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고민하고 추구하는 가치들로 가득한 이 이야기는 아마 오래도록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로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레이디 버드>로 이미 연출력을 인정받은 그레타 거윅이 감독이라는 소식과 시얼샤 로넌, 엠마 왓슨, 플로렌스 퓨를 포함해 유명하고 훌륭한 배우들의 출연으로 영화를 보기 전 기대감이 높았다. 시얼샤 로넌과 그레타 거윅은 <레이디 버드>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앞으로 그레타 거윅이 영화를 통해 해나갈 이야기들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처음으로 영화를 감상했을 때는 내가 사랑하는 시얼샤 로넌과 그의 풍부하고도 섬세한 연기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당당하고 솔직하고 자유롭지만, 때로 실수하고 후회하며 계속해서 성장해나가는,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조 캐릭터를 시얼샤 로넌은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시얼샤 로넌 특유의 생기발랄하고 밝은 느낌은 조의 캐릭터에 에너지를 더해주었다. 중간에 조가 머리를 자르고 나오는 장면에서는 시얼샤 로넌이 너무너무 예쁘고 잘생겨서 혼자 반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 영화를 감상해보니 플로렌스 퓨의 연기가 그렇게나 대단할 수가 없었다. 책을 읽었던 당시의 내가 어려서였을지도 모르지만, 에이미는 내게 호감형 캐릭터로 기억되지 않았다. 어리고 제멋대로인 막내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에이미를 재능 있는 예술가이자 조에게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조를 사랑해 마지 않는 동생, 결혼과 인생에 관한 고민을 안고 있는 캐릭터로 재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레타 거윅의 연출도 있었겠지만, 에이미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표현한 플로렌스 퓨의 힘도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둘 이외에도 <작은 아씨들> 배우들 자체의 앙상블이 굉장히 훌륭해 편안하고 몰입도 있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점점 빨라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더 자극적이고, 쉽게 소비하고 잊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찾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람'의 이야기가 가진 공감의 힘을 믿는다. 화려하고 스케일이 큰 영화들이 영화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도, 결국 우리의 마음에 가장 오래 남아있는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의 슬픔과 즐거움, 따뜻함과 사랑, 고민과 웃음을 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약 150년 전에 쓰인 <작은 아씨들>이라는 이야기가 여전히 기억되며 우리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작은 아씨들>이라는 책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꼭 영화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고, 네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따뜻함을 느끼고 그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영화를 본 후의 따뜻하고 벅찬 느낌을 글로 담기에 나의 필력이 모자라 슬플 따름이다. 영화<작은 아씨들> 리뷰는 여기에서 마치겠다.






*해당 글은 타플랫폼에 기재했던 글의 재업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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