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 리뷰
작년 하반기 쯤 소년범이라는 소재를 다룬, 김혜수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했던 기억이 있다. 한번쯤 다뤄졌으면 좋겠다고 여겨온 소재의 드라마가 나온다는 게 반갑기도 했고, 탄탄한 캐스팅에 더욱 기대가 됐다. 물론 가벼이 다뤄서는 안되는 소재인 만큼, 기대 이상의 작품이 나와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드라마 <소년심판>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 드라마는 소년범들의 범죄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소년범이 저지른 범죄의 책임이 오롯이 소년에게만 있다고 할 수는 없으며, 그 책임의 무게는 부모와 사회가 함께 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지난 2월 25일 공개된 <소년심판>은 공개 전부터 집중된 이목과, 시청자들의 호평을 통해 입소문을 타며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들 중 손꼽을 정도로 좋았던 작품이었다.
1. '소년범'을 향한 냉정하고도 따뜻한 시선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소년심판> 中
<소년심판>의 주인공, 김혜수가 연기하는 심은석의 신념과도 같은 한 마디이다. 예고편이나 캐릭터 포스터에서도 활용되었을 정도로, 작품이 전면에 내세우는 슬로건과도 같다. 갈수록 소년범의 범죄가 대두되면서 많은 이들이 소년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요즘, 조금은 극단적이라 느껴지기도 하는 심은석의 이러한 표현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심은석은 소년범이 '감히' 그 어린 나이에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들을 혐오한다고 말한다. 작품의 초반부 심은석은 소년범을 혐오하고 그들의 강력한 처벌을 바라는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사실은 심은석 역시도 그들이 더이상 범죄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소년범들에게 엄격하게 죄를 묻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들이 범죄를 선택했기 때문에. 소년의 행동에 부모와 사회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범죄를 택한 것은 소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심은석은 소년범들에 대한 판결을 내릴 때 지금 이 판결은 소년범들에게 내리는 것이지만, 처벌의 무게는 소년들의 부모 역시 함께 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변하고 환경이 변해야만, 소년 역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보복이 두렵고 도망치고 싶지 않아 신고하지 못하는 유리에게 심은석 판사는 약속한다. 피해자는 집을 지키고, 가해자가 벌을 받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재판정에서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에게 심은석 판사가 하는 말들과 내리는 처벌을 들으며 유리는 많은 눈물을 쏟는다. 유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줄 어른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했는지, 그 눈물 속에서 유리의 안도와 원망을 모두 느낄 수 있어서 보는 나 역시도 많이 울었다.
결국 이 드라마는 '소년범을 혐오한다'는 심은석 판사의 대사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심은석과 차태주를 포함해 소년형사합의부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 그들과 협력하는 경찰까지도 소년들이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막고,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움직이는 이야기다. <소년심판>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단지 소년법 폐지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소년범의 죄를 과연 온전히 소년의 탓이라고 할 수 있는지, 소년법을 폐지하는 것이 소년범죄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2. 소년들의 이야기
드라마 <소년심판>은 한정된 분량 내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소년범의 강력범죄, 가정폭력, 청소년 회복 센터, 소년들 간의 폭력과 협박, 집단 성폭력까지,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소년들은 가해자가 되기도,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모든 에피소드가 완성도 높았고, 시청자들에게 최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한 작가와 감독의 노력도 빛을 발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유리의 이야기와 청소년 회복센터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유리의 이야기는 앞서도 잠시 언급을 했었지만, 무엇보다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의 손길이자 사회의 관심과 도움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에피소드였다. 또한 이전에 소년재판을 통해 처분을 받은 전적이 있던 유리가 가정폭력을 피하려다 가출팸한테까지 폭력을 당하는 스토리를 보여주면서 소년범은 특정 범죄의 가해자인 동시에 다른 범죄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고, 하나의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다른 폭력과 범죄에도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말한다.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소년범들의 처지를 드러내며, 그들을 심판하고 처벌할 뿐만 아니라 지키고 도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 좋았다.
"집에서 상처받으면 아이들은 자신을 학대해요. 평소에는 안 했을 범죄를 저지른다거나,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식으로. 본인들도 알아요. 하면 안 된다는 거. 알면서 하는 거죠. 나를 학대하는 게, 내 고통이, 가정에도 상처가 되길 바라면서. 나 좀 봐달라고, 나 힘들다고, 왜 몰라보냐고."
<소년심판> 中
청소년 회복센터 에피소드는 연출이 가장 빛났던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푸름청소년 회복센터의 오선자 원장과 그 곳의 아이들의 엇갈린 진술을 모두 사실인 것처럼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혼동시키는 연출을 통해 보이는 것으로 절대적 선이나 악을 판단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청자들의 에피소드 안으로 끌어당겼다. 소년들의 범죄가 자신의 상처를 알아달라는 마음에서 나온 자기 학대라는 오선자 원장의 이야기가, 결국 소년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느라 늘 뒷전이어야 했던 자신의 딸의 이야기가 되는 진행까지도 훌륭한 연출이란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초반부를 실제 사건을 연상시키는 소년범의 강력범죄 에피소드로 가져간 것 역시 시청자들을 극 안으로 몰입시키기에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소년심판>이 김민석 작가님의 입봉작이라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는데, 4년 여의 시간 동안 사전 자료 조사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놀랐다. 모든 에피소드에서 소년범에 대한 이야기를 정확하고 깊이감 있게 전달하려는 제작진들의 노력이 드라마에서 잘 보여진 것 같다. 매 에피소드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하다는 점도 이 드라마의 강점이라고 느꼈다.
3. 흠잡을 곳 없는 배우들의 앙상블
김혜수, 김무열, 이성민, 이정은.
이름만 들어도 감탄이 나오는 라인업으로 짜여진 이 작품의 주연들은 시청자들이 단 한 순간도 극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도록 탄탄한 흐름으로 극을 이끈다. 가장 선두에 서서 드라마를 이끄는 김혜수의 카리스마는 시청자들을 압도한다. 김혜수와 이성민이 힘 있는 연기로 극의 긴장감을 유지시킨다면, 김무열은 선한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극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정은은 오히려 힘을 뺀 연기로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과시한다. 김혜수와 이성민의 대립이 힘과 힘의 대립처럼 느껴졌다면, 김혜수와 이정은은 오히려 서로 반대되는 힘의 충돌처럼 느껴져 새로웠다.
이미 연기력이 입증되고도 남은 배우들이 총출동한 작품이기 때문에, 연기력으로 무언가를 평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장르 특성상 가볍게 볼 수 없는 드라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높은 몰입도를 유지하는 것에는 연출의 힘 뿐만 아니라 배우가 만들어내는 힘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네 명의 주연들 뿐 아니라 소년형사합의부의 참여관들과 직원들, 소년범을 포함한 모든 조연 배우들까지도 훌륭한 연기를 통해 극 전체에서 완벽한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서유리를 연기한, 개인적으로도 팬인 심달기 배우와 백성우를 연기한 이연 배우의 연기가 충격적일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매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에너지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부분 역시 <소년심판>이 가진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완벽하지 않은 어른들의 끝없는 성장
작품의 주요한 두 인물이자, 소년범을 대하는 데 있어 정반대의 태도와 시각을 가진 심은석과 차태주는 함께 소년범에 관한 일들을 처리하고 판결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딪힌다. 김혜수의 심은석과 김무열의 차태주는 '이성'과 '감성'의 영역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한 성향을 보인다. 심은석이 소년범을 정확하고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차태주는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그들을 교화하고 소년범들의 성장을 돕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서로 다르기에 갈등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다르기에 채워지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함께 일한다.
심은석과 차태주,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소년 판사지만 우리는 이들 중 누가 옳다고 말할 수 없다. 누군가는 심은석을 지나치게 냉정하다고 평가할 것이고, 누군가는 차태주를 선하지만 답답한 인물이라 말할 것이다. 절대적 선이나 악이라는 건 세상에 존재할 수 없고, 그게 누군가를 심판해야 하는 판사라면 더욱 그렇다. 절대적 선이나 악이 없기에,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워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부장 판사로 등장하는 강원중과 나근희에게서도 우리는 성장을 엿볼 수 있다. 이성민 배우가 연기하는 강원중은 소년범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관심으로 후배 판사들의 존경을 받기도 하고, 소년법 개정이란 목표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온 인물이다. 그러나 극중에서 그는 그가 바라던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잘못된 방식을 택한다. 그런 그의 길을 막아선 심은석에 강원중은 화를 내지만, 결국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책임지며 물러난다. 강원중이라는 인물은 우리에게 본질이 선하고 추구하는 바가 옳은 인물도 언제든 유혹에 흔들리고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동시에 아무리 옳고 큰 목표를 가졌더라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부정하다면, 그 목표의 가치마저 훼손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근희 판사는 자리에서 물러난 강원중 판사 대신 소년형사합의부의 부장판사로 발령을 온 인물이다. '소년심판은 속도전이다'라는 말을 신념으로 삼는 판사로, 일을 키우거나 필요 이상의 관심을 쏟는 대신 빨리 판결을 내리고 마무리 짓는 것을 선호한다. 심은석 판사와는 한쪽만이 기억하는 과거의 악연으로 이어진 관계이기도 하다. 자신이 내린 판단은 무조건 옳다고 믿는 나근희 판사지만, 극 중 마지막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심은석 판사와의 갈등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과거 소년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리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한다.
소년을 심판하고 교화하는 판사라면, 당연히 훌륭한 어른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겠지만, 사실 완벽한 사람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훌륭한 어른이라 칭하는 이는 오히려 기피 대상에 속할지도 모른다. <소년심판>은 어른들이 소년을 심판하고, 구제하고, 지키려 노력하는 이야기지만 분명 그 속에서 어른들 역시 소년들과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나오면 대부분 챙겨보는 편이지만, <소년심판>은 최근 시청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 중 내게 가장 깊은 인상과 감동을 주었던 작품이다. 중간에 멈추고 싶지 않아 하루만에 전체 10화를 다 보았지만, 워낙 몰입도가 높은 웰메이드 드라마이기 때문에,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아니라 TV 방영 드라마였어도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모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공개 전부터 기대를 하고 있었던 작품이지만, 기대 이상의 스토리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소년범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뜨거운 화제로 만든 것 역시 이 드라마가 가져온 선한 영향력이 아닐까 싶다. 소년범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와 관심이 필요한 만큼, 언젠가는 <소년심판>의 다음 이야기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 이를 거꾸로 말하면, 온 마을이 무심하면 한 아이를 망칠 수도 있단 뜻도 돼. 과연 피해자 강선아에게 가해자가, 저 아이들뿐일까? 누구도 비난할 자격없어. 모두가 가해자야."
<소년심판> 中
작품을 보고 나면, 극 중 심은석이 했던 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소년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 소년법 폐지와 처벌 강화를 얘기하기에 앞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소년범이 받는 처벌의 무게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소년범들이 자신의 범죄에 대해 대가를 치르고 처벌을 받되, 더이상 범죄에 노출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어른과 사회의 부족함으로 범죄에 노출되는 소년들이 사라지는 세상이 오길 바라며, 드라마 <소년심판>의 리뷰를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