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샌드위치 하나로 미국을 평정한 칙필레(Chick-fil-A)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남편이 미국 출장을 다녀오면 가방 속에 꼭 챙겨 오는 것이 있었다.
칙필레(Chick-fil-A) 매장에서 치킨 샌드위치 세트를 먹고 남은 작은 '소스'였다.
당시 나는 "뭐 이렇게 궁상맞게 햄버거집 케첩을 한국까지 가져오는 거야?"라며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편이 가져온 칙필레 소스를 한국 맥도날드 감자튀김에 찍어 먹어본 순간, 나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케첩도, 머스터드도, 바비큐 소스도 아닌 이 오묘하고 중독성 있는 맛.. 그것이 칙필레의 첫 기억이다.
나는 미국 음식이나 패스트푸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에 살면서도 매일 한식을 만들어 먹는다.
하지만 나는 주기적으로 칙필레 매장을 찾는다.
사실 뜯어보면 대단히 특별할 건 없다.
번 사이에 들어간 치킨과 피클, 양상추, 치즈가 전부.
하지만 과하게 맵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미국 음식 특유의 느끼함도 적다.
그래서 그런지 먹을 때는 평범한 맛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꼭 다시 생각나는 맛이다.
칙필레의 성공은 단순한 ‘맛‘의 성공은 아니다.
리테일 MD의 눈으로 본 칙필레는 단순한 패스트푸드점이 아니다. 고도로 설계된 ‘브랜드 운영 전략의 교과서’에 가깝다.
미국 패스트푸드의 절대 강자는 단연 맥도날드다.
매장 수만 13,000개가 넘고 매출 규모도 압도적이다.
반면 칙필레는 이제 겨우 3,000개 남짓이다.
하지만 매장당 효율을 따져보면 소름 돋는 데이터가 나온다. 칙필레의 매장당 연평균 매출은 약 100억 원으로, 맥도날드보다 2배 이상 높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패스트푸드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도 칙필레는 1위이다. 치킨 샌드위치 하나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된 것이다.
맥도날드는 365일 매일 문열지만, 칙필레는 매주 일요일마다 문을 닫는다.
근데 이상하게도 유독 일요일마다 칙필레가 생각난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이 하루는 칙필레를 향한 갈증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칙필레가 연간 무려 52일을 쉬고도 업계 최고 수준의 매출 밀도를 기록한다는 것은, 리테일에서 ‘얼마나 오래 여느냐’보다 ‘얼마나 밀도 있게 파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칙필레 매장에 가면 메뉴판 앞에서 고민할 일이 거의 없다. 치킨 샌드위치를 중심으로 몇 가지 옵션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단순함은 고객의 선택 시간을 줄여 줄을 빨리 줄어들게 하고, "무엇을 시켜도 실패 없다"는 안정감을 준다.
이 단순함은 주방 내부로 들어가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메뉴가 적으니 주방 동선이 꼬이지 않고, 식재료 관리도 쉬워 회전율이 극대화된다.
칙필레의 야채와 치킨이 유독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빠른 재고 회전 덕분일 것이다.
선택을 줄여 제품의 신선함과 매장의 효율을 동시에 잡아냈다.
칙필레 매장을 직접 경험해 보면 직원들의 친절함에 놀라게 된다.
매장은 항상 청결하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직원이 직접 음식을 서빙해 준다. 그리고 식사 도중 필요한 것이 없는지 먼저 묻는다.
주문을 할 때도, 무언가를 요청할 때도 그들의 대답은 늘 같다.
My Pleasure.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실제 칙필레 직원들은 이 표현을 사용하도록 교육 받는다. 이 사소한 언어의 차이가 패스트푸드점 고객을 ‘환대받는 손님’으로 격상시킨다.
칙필레의 또 다른 장점은 기다림이 적다는 것이다.
한번 점심 피크시간대에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 줄에 들어갔다가 20-30분을 허비한 적이 있다.
다시 차를 돌려 나올 수도 없고 약속 시간은 다가오니, 그 시간은 내게 곤욕이었다.
하지만 칙필레에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맏음이 있다.
직원들이 태블릿을 들고 차마다 직접 와서 미리 주문을 받고 결제까지 마친다. 가끔은 차로 음식을 직접 가져다 줄 때도 있다. 드라이브스루 줄이 길더라도 칙필레에서는 빠르게 내 차례가 돌아온다.
요즘 직원이 직접 태블릿을 들고 나와서 드라이브스루 주문을 받는 페이스 두 페이스 오더링 시스템(face to face ordering system)은 미국에서 꽤 흔해졌지만, 그 시작이 칙필레라고 하니 놀라운 사실이다.
칙필레는 매장 확장에도 신중을 기한다.
아직 미국 내에 3,000개 남짓한 매장만 운영한다.
흥미로운 점은 칙필레 가맹점주가 될 수 있는 확률이 하버드 입학 경쟁률 보다도 낮다는 것이다.
매년 약 6만 명~8만 명의 지원자 중 100명 내외가 선발된다. 가맹점주 합격률이 0.15%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글 입사 또는 하버드 합격률보다, 칙필레 점주 되기가 더 힘들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본사는 돈이 많은 투자자가 아니라, 매장에 상주하며 지역사회에 헌신할 ‘현장형 점주’를 뽑는다.
가맹비는 단돈 1,300만 원($10,000)으로 파격적이지만, 점주 한 사람이 여러 매장을 운영할 수 없는 ‘1인 1 매장’ 원칙을 고수한다.
덕분에 매장 경험의 균질성이 유지되고, 고객은 미국 어느 매장에서도 수준 높은 서비스를 받게 된다.
이제 남편은 더 이상 칙필레 매장에서 소스를 챙기지 않는다. 미국 마트 어디서든 대용량 칙필레 소스를 살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미국 교포 출신 한 연예인이 한국에서 향수를 달래기 위해 이 소스를 한국에 사간다고 한다. 그리고 나도 가끔 한국에 방문 할 때마다 마트에 들러 이 소스를 사서 선물한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한국에는 없는 독특한 맛 덕분에 칙필레 소스는 최고의 미국 여행 선물이 된다.
칙필레는 단순히 치킨 샌드위치만 파는 곳이 아니다.
고도로 설계된 운영 시스템, 통제된 공급망, 균질한 서비스 경험,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환대를 판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유니크한 맛의 소스, 햄버거 하나를 먹더라도 “대접받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공간.
효율을 극한까지 밀어 올리면서도 사람의 온기를 놓치지 않는 브랜드.
그 미묘한 균형이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버거, 칙필레를 만든 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