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기록을 시작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에서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다. '설마'라는 말로 넘기기엔 힘들었지만, 마음 한편에서 암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기대를 붙잡고 있었다. 서울에서 진료를 받은 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암일 수도 있대."
그 말을 듣는 순간, 일상의 바닥이 갑자기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졌지만, 나는 끝까지 부정했다. 아닐 수도 있고, 괜찮을 수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애썼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수술 당일, 수술실 앞에서 의사를 마주했다. "암입니다. 1기와 3기인지는 조직검사 결과가 나온 뒤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감각이 뚝 끊겼다. 눈물이 나야 할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아무 감정도 따라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완전히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의사가 "궁금한 점 있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내가 겨우 꺼낸 말은 "암인가요... 진짜 암이 맞나요"라는 두 문장이 전부였다.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지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게 현실인지, 누가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혼자 들었다는 것도 버거웠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부모님께는 어떤 말부터 꺼내야 덜 충격적 일지, 병원 지하 푸드 코트의 텅 빈자리에 앉아 휴대폰만 붙잡고 있었다.
'암에 걸렸다고 알리기'
'환자에게 암진단 사실을 말하는 방법'
검색창에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입력했지만, 정답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의 글 한 편 조차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날, 남편에게 직접 암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수술 후 회복 중인 남편에게 내가 전달하는 대신, 다음 날 회진 때 의사에게 직접 설명을 듣게 하자는 쪽을 택했다. 그게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덜 잔인한 방법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 결정이 옳았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순간의 나는,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원래 나는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이 복잡해질수록 울거나 무너지기보다는 '이건 이렇게 받아들이면 된다'며 이성적으로 정리해 버리는 쪽에 가까웠다. 엄마가 예전에 뇌동맥류 수술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걱정은 했지만, 수술이 잘 되면 일상으로 돌아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실제로 엄마는 큰 후유증 없이 일상으로 돌아왔고, 그 경험은 남편의 암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편의 암은 1기였고, 수술로 제거한 뒤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 없이 추적 관찰을 요했다. 3개월, 6개월 단위의 검사일정이 이어졌고, 나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최악의 경우는 떠올리지 말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오히려 강해지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의 감정을 돌보지 않았다. 불안이 올라와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고, 그냥 모른척하며 평소와 같은 삶을 유지하려 했다.
그 무렵, 집을 사고 이사를 준비하며 새로운 시작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인테리어를 맡긴 실장님에게서 갑작스러운 전화가 왔다. 인테리어 계약으로 알고 지낸 지 한 달 남짓한 사이였다.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가 병원에 갔다가 갑자기 여러 검사를 받게 되었고, 암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직 어머니 본인은 모르는 상태라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구나. 가까운 사람도 아닌, 고객인 나에게까지 전화를 걸 만큼 그녀 역시 물어볼 사람이 없었겠구나. 예전의 나는 그런 상황이 나에게만 찾아온 줄 알았다. 내가 유난히 주변에 사람이 없는 사람이고,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결과라고 자책했었다. 그런데 그날, 모두가 비슷한 자리에서 막막해진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당장 할 수 있는 검사는 지방에서 먼저 진행하고, 큰 병원 진료는 최대한 빨리 예약을 하라고,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도 말하지 않아도 본인의 상태를 알고 있을 테고, 나는 남편의 암 사실을 의사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선택했다고. 전화를 끊고 나서 묘한 감정이 남았다. 뿌듯함이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떠올랐다. 병원 지하에서 검색창만 붙잡고 있는 그때의 나, 그때 나에게도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
남편은 수술 후 회복했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늘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재발하면 어떻게 될지,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그런 생각들을 혼자서만 삼켜야 했다. 불안을 전염시키면 안 되었고, 말할 곳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고립을 선택했고, 누군가의 글 한 줄이 절박해지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그때의 나처럼, 병원 지하에서 검색창에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검색하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답을 찾지 못해도 비슷한 상황을 지나온 사람의 글 한 줄이라도 읽고 싶었던 그 시간을 기억하면서. 이 기록이 누군가의 상황을 바꿔주지는 못하더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만큼은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 기록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