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무너졌던 날들의 기록
이 기록은 방심하지 말고 살아가기 위해 남기는 나를 위한 기록이자, 과거의 내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었던 도움처럼 누군가에게도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나는 원래 두통이나 어지러움이 잦은 사람이 아니었다. 살면서 딱 한번 전정신경염을 앓은 적이 있었고, 흔히 말하는 귀감기라는 설명을 듣고 약을 먹은 뒤 괜찮아졌다. 그때는 MRI나 CT 같은 영상 검사는 하지 않았고, 이후 반년 정도는 아무 문제 없이 지냈다. 그래서일까, 뇌출혈 증상이 시작됐을 때도 처음에는 그 심각함을 알아채지 못했다.
병원에 가기 약 열흘 전부터 두통과 어지러움이 서서히 시작됐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어서 편두통에 좋다는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하며 일을 계속했다. 타이레놀을 먹으며 며칠을 버텼지만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까지도 두통은 계속되어 신경과 의원을 찾았고 간단한 신경학적 검사 후 의사는 뇌경색이나 뇌출혈이 의심되지는 않는다며 편두통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두통약과 어지러움 약을 처방받고 돌아왔다.
약을 먹은 지 이틀쯤 지났을 무렵, 새벽에 잠을 자다 왼쪽 팔과 다리가 저리고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확연한 마비는 아니었다. 인터넷에 나오는 뇌졸중 자가 테스트를 따라 해 봤고, 팔과 다리에 힘도 들어가고 얼굴도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위급한 상황은 아니겠지'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다음날 종합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다시 잠들었다.
다음날 종합병원 신경과 외래 진료를 보았다. 의원에서 받았던 것과 비슷한 신경학적 검사와 VR기계 같은 검사를 했고,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혹시 모르니 MRI를 찍어보자며 다음 날 검사 일정을 잡아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고민 끝에 MRI검사를 취소했다. 비싼 검사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하루 푹 쉬면 괜찮아질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낙관적인 생각이 앞섰다.
그날 낮, 증상은 어지러움 위주였고, 팔과 다리 저림은 사라진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망치로 머리를 한 번 맞은 것 같은 순간적인 두통이 있었지만 금세 괜찮아졌다. 저녁에 산책을 하면서도 왼쪽 다리에 이상한 느낌이 있었지만, 별일 아니라고 넘겼다.
다음 날, 증상은 더 애매해졌다.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의자에서 일어날 때나 앉을 때, 꼰 다리를 풀 때 미묘하게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말을 할 때도 상대방은 느끼지 못하지만 나만 알 수 있는 발음이 새는 감각이 있었다. 그 미묘함이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종합병원에 다시 가려 했지만, 외래 진료를 본 의사에게 가야 한다는 안내를 받고, 기다리지 않고 내 발로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급성기 환자로 분류되었다. MRI와 CT를 포함한 각종 검사가 빠르게 진행됐고,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그래도 누워있으면 두통과 어지러움만 있었고, 움직일 때문 다리의 이상감각과 혀 꼬임이 느껴졌기에 나는 여전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반 병실 입원 정도를 예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경과 의사는 뇌출혈이 보인다고 말했다. 뇌경색은 아닌 것 같고, 병원에 영상판독 전문의가 없어 외부판독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주고 가는 신경외과로 바뀔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행히 근무시간 내에 응급실에 도착한 덕분인지 신경외과 주치의가 비교적 빠르게 왔다. 현재는 출혈 대문에 혈관 형태가 명확하지 않지만 해면상혈관종이 의심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또 다른 의사는 동맥기형이 아닌 정맥기형으로 보이며, 예후가 좋은 편이라고 했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잘 받으면 회복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를 붙잡아 주었다.
가족들은 중환자실로 가기 전 잠시 얼굴을 봤다. 배우자는 얼굴이 상기된 채 울먹였고, 나는 괜찮아질 거라며 밥 잘 챙겨 먹으라고 말했다. 엄마는 "빨리 온 게 잘한 거다", "너는 복이 많다"라고 말했다. 저녁 9시가 넘어서 나는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중환자실에서는 휴대폰 사용이 금지였고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 소변줄을 하고 기저귀를 찬 채로 지내야 했다. 정신은 또렷했기에 답답함은 더 컸다. 창문 없는 격리 공간에서 보이는 건 간호사들의 움직임과 디지털시계뿐이었다. 머리맡에서는 기계음이 계속 울렸다. 간호사가 틀어준 라디오가 유일한 외부 세계였다. 사람들의 시답지 않은 이야기와 음악을 들으며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로 버텼다. 답답한 마음에 회진 때마다 일반 병실로 보내달라고 졸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만큼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약물치료가 시작되면서 팔과 다리 힘 빠짐, 혀 꼬임 증상은 점차 사라졌다. 두통과 어지러움도 이전보다 완화됐다. 이후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간호사실 가까운 중환방에 배정되었다. 창가 침대였다. 창밖의 하늘과 산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화장실을 혼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감사할 줄은 몰랐다.
밤에는 여전히 소음이 심해 잠을 깊게 잘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 2인실로 옮긴 뒤에야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잠을 자면서 마음도 가라앉았다. 흙탕물 같던 감정들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병동에서의 하루는 단순했다. 피검사, 식사, 회진 그리고 병동을 걷고 또 걷는 일. 그렇게 2주를 보냈다. 휠체어에서 독립보행으로, 보조가 필요하던 화장실에서 혼자 이동하는 단계까지 왔다. 왼쪽 다리는 약해졌지만 재활로 회복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퇴원 후 나는 입원한 병원에서 교수님께서 이 병은 서울로 가서 진료를 보길 말씀하셨다.
3곳 정도 서울에 있는 병원을 갔었다. 3곳 중 2곳에서는 현재 상태에서는 수술보다 경과 관찰이 낫다고 했다. 모양이 나쁜 편이 아니고, 지금 상태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말. 다만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가야 한다고 했다. 이후 나는 경과 관찰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1년에 한 번 MRI를 찍으며 추적 관찰을 하고 있다. 지금도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있는지, 몸의 작은 변화들을 유심히 살피며 지내고 있다.
달리기를 하고, 일을 하고, 일상을 살지만 완전히 잊고 살 수는 없다. 그래도 중환자실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시간을 세던 그날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분명히 살아 있다. 이 기록은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방심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나는 계속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