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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래 Oct 01. 2016

역발상 과학 (17) '수직'이 안되면 '수평'으로

옆으로 해결하는 엘리베이터와 선박 건조공법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한 가지 일을 끝까지, 그리고 꾸준하게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운도 따라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우물을 파는 지역의 지하수가 말라 버렸다면, 헛수고만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한 우물이 아니라 여러 우물을 팔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준다 ⓒ wikipedia

이 같은 상황은 오늘날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엘리베이터를 계속 팔아야 하는데, 더 이상 팔기 어려울 정도로 시장이 포화되어 있다면? 선박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데, 더 이상 만들 수 있는 도크(dock)를 지을 수 없다면? 상황이 이렇다면 우물을 아무리 파더라도 지하수를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시각에서 보면 이처럼 난감한 상황들이 오히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기회로 작용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지금 소개하는 ‘옆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와 ‘옆으로 미는 선박 육상건조공법’도 마찬가지다. 한 우물이라 할 수 있는 ‘포화된 엘리베이터 시장’과 ‘도크 부지가 모자라는 조선소’라는 악조건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장 창출의 가능성을 연 역발상의 결과물들인 것이다.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의 핵심 개념은 사람이나 사물을 힘들이지 않고 건물의 위나 아래로 빠르게 이동시키는 것이다. 탄생이후 16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엘리베이터는 많은 발전을 해 왔지만, 이 개념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같은 핵심 개념이 엘리베이터 분야의 글로벌 기업 중 하나인 독일의 티센크루프(ThyssenKrupp)사에 의해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이 회사가 개발 중인 멀티(MULTI)라는 이름의 신개념 엘리베이터 때문인데, 수직 뿐만 아니라 수평으로도 이동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수직으로만 움직이는 기존 엘리베이터의 가장 큰 단점은 한 개의 통로에 한 개의 엘리베이터만 운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비효율적 구조는 낮은 건물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고층 건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직과 수평으로 움직이는 멀티 엘리베이터의 개념도 ⓒ ThyssenKrupp

수많은 탑승자들이 한 개의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 따라서 많은 건물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개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만, 이는 비용이나 공간 확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는 시스템이다.


반면에 멀티 엘리베이터는 통로를 수직은 물론 수평 방향으로 만들어 여기에 다수의 엘리베이터를 운용하는 것이 핵심 개념이다. 작동 원리도 기존 방법과는 완전히 달라서, 자기 부상 열차와 비슷한 방식을 사용하여 승차감도 높이고 소음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제조사 측의 설명이다.


티센크루프가 이 같은 역발상 엘리베이터를 개발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날로 포화되어가는 엘리베이터 시장 때문이다. 특히 돈이 되는 고층 빌딩의 경우는 신흥 엘리베이터 업체들이 저렴한 가격과 짧은 공사일정을 무기로 거센 도전을 하고 있어서 시장을 지키는 것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형편이다.


티센크루프사의 관계자는 “만약 엘리베이터가 오가는 통로가 두 개 뿐인 건물이라 하더라도 통로와 통로 사이에 횡으로 연결된 통로만 있으면 10대 이상의 엘리베이터가 오갈 수 있다”라고 소개하며 “이는 10개의 통로에 각각 한 대씩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던 기존 방법과 비교해 볼 때 공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절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크가 아닌 육상에서 건조하는 선박


독일의 티센크루프가 시장의 포화 및 비용절감을 위해 수평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개발하고 있다면, 우리나라의 현대중공업은 도크가 아닌 육상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역발상 공법을 개발하여 전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을 개발한 이유는 도크를 추가로 지을 부지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선박의 길이가 보통 300m를 넘기 때문에 이에 걸맞는 도크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 정도 규모의 도크를 여러개 씩 지을 수 있는 장소는 국내에서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육상 건조공법이다. 이 공법은 도크가 아닌 육상에서 배를  조립하여 만든 뒤 배를 옆으로 밀어서 바다에 띄우는 방식이다. 도크는 배를 만든 뒤 바다에 띄울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대규모 웅덩이로서, 도크의 규모와 수는 해당 조선업체의 건조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만큼 선박 건조의 필수 조건으로 인식되는 기반시설이다.


이 회사의 연구진은 도크가 아닌 육상에서 기본적인 장비들이 탑재된 블록을 수백개 씩 만든 뒤, 이를 하나하나 용접하면서 조립하여 길이 300m가 넘는 초대형 선박을 건조했다.

현대중공업이 육상건조 방식으로 만든 10만 급 원유운반선 ⓒ 현대중공업

육상에서의 건조 과정은 도크에서 지을 때 보다 오히려 수월했지만, 문제는 10만 톤이 넘는 선박을 어떻게 육상에서 바다로 옮기느냐는 것이었다. 워낙 무게가 많이 나가는 선박이라 잘못 힘을 가했다가는 마찰력 때문에 배가 파손될 우려가 높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현대중공업이 선택한 것은 공기부양 방식이었다. 선박 밑으로 스키드 레일(skid rail)을 설치한 뒤에, 공기부양 설비를 활용하여 배를 지면에서 약간 띄운 뒤 조금씩 옆으로 밀어 바다에 떠 있는 바지선에 옮기는 방식이었다.


이후 바지선을 수심 30m가 넘는 심해로 끌고 나가 반(半)잠수시킨 뒤, 건조된 선박을 바다에 띄우면서 육상 건조공법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팀은 이를 위해 관제탑을 제외하고는 물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는 특수 바지선까지 제작하는 열의를 보였다.


현대중공업의 관계자는 “얼핏 보기에 원리는 간단하지만 고가의 선박을 손상 없이 육상에서 건조하여 바다에 옮기기 위해서 작업 단계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밀함이 요구됐다”라고 회상하며 “이 방법이 성공함으로써 도크를 추가로 지을 땅이 없는 국내 조선업체들의 고민이 해결됐고, 동시에 선박 건조능력을 도크의 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가 됐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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