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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래 Apr 29. 2017

역발상 과학 (32) 죽으면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비상식량이 될 수 있는 생존가이드 책자’와 ‘새의 먹이가 될 수 있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속담이 있다. 


호랑이가 죽은 다음에 귀한 가죽을 남기듯이, 사람은 죽은 다음 생전에 쌓은 업적에 따라 명예를 남기게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 속담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라는 문구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물건을 만들더라도 사용 후 버려질 때를 고려하여 아무 것도 남기지 않도록 만드는 ‘제로(0) 디자인’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해 하나도 남기지 않는 제로 디자인이 유행하고 있다 ⓒ wikipedia


지금 소개하는 ‘비상식량이 될 수 있는 생존가이드 책자’와 ‘새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일회용 접시’는 모두 제로 디자인이 적용된 사례들이다. 지속가능한 미래의 환경을 위해, 그리고 한정된 자원의 보존을 위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지혜가 반영된 역발상의 결과물인 것이다.


전분으로 만든 책자가 비상식량으로 변신


랜드로버(Land Rover)는 4륜 구동차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영국의 자동차 제조사다. 4륜 구동차 브랜드 중에서는 지프(Jeep)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동차 회사다.


이 회사는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UAE)에 거주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독특한 환경 프로모션을 실시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위험한 아라비아 사막을 4륜 구동차로 여행하는 고객들을 위해 생존 안내 책자(Survival Guide Book)와 명함을 제공하는 캠페인을 실시한 것.


총 41페이지 분량으로 제작된 이 책자에는 위험한 상황을 만났을 때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생존 전략이 담겨 있다. 가령 길을 잃었을 때 별자리를 이용하여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이나 혹한기 상황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 또는 물을 구하는 방법 등이 사례와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렇게 특별한 것이 있다고 볼 수 없는데, 그럼에도 프로모션이 독특하다고 밝힌 이유는 책자의 내용이 아니라 재질 때문이다. 책자가 전분으로 만든 식용 종이와 인체에 무해한 천연 잉크로 제작되어서 한 장씩 뜯어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랜드로버사의 환경 프로모션 포스터 ⓒ Land Rover


이 같은 책자를 만든 이유에 대해 랜드로버의 관계자는 “사고로 고립되거나 고장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등 운전자가 위험에 처해졌을 때 책자를 비상식량으로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고 밝히면서 “최소 한 개의 치즈버거가 갖고 있는 670Kcal의 열량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책자는 비상식량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는 비슷한 내용의 책자를 배포했을 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폐지가 된 채 차 안이나 길거리에서 딩구는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 이는 또 하나의 자원낭비이자 환경오염이었다”라고 전하며 “우리 회사의 고객들에게는 최소한 자원을 낭비하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그 어떤 것도 제공하지 말자는 취지로 프로모션을 진행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랜드로버 측의 발표에 따르면 UAE내의 기존 고객 5000명에게 이 책자를 배포한 결과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추가 요청까지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제휴를 맺고 있는 자동차 매거진의 부록으로 첨부하여 정기적으로 배포한다는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소재와 첨가물로 만든 접시를 새의 먹이로 활용


산과 들로 소풍을 가거나 캠핑을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여겨지고 있는 일회용 접시일 것이다. 다행히도 요즘 들어서는 종이로 만든 접시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합성수지로 만든 일회용 접시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 같은 합성수지로 만든 접시가 완전히 분해되기 까지는 100년 이상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종이로 만든 일회용 접시를 사용하는데, 이 또한 완전히 분해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평소 환경보존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산업 디자이너인 미국의 안드레아 루찌에르(andrea ruggiero)와 벤트 브러머(bengt brummer)는 이 같은 일회용 접시가 일으키는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대안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들은 사용 후 빠른 시간 안에 소멸될 수 있는 일회용 접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마침내 조기에 100% 분해되는 접시인 ‘유에프오(UFO)’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사용 뒤에는 동물의 먹이로 변신하는 일회용 접시 ⓒ bengt brummer


UFO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에 대해 브러머 디자이너는 “접시를 사용하고 난 후 이를 숲이나 공원 등에서 날렸을 때, 날아가는 모양이 마치 비행접시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UFO의 특징에 대해서는 “감자전분과 식품첨가제인 구아검(Guar Gum)만을 사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음식물이 썩듯이 한 달 이내에 완전히 분해된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UFO의 진짜 특징은 따로 있다. 감자전분과 구아검 같이 사람이 먹어도 되는 재료들을 접시의 재료로 활용한 이유가 보다 빨리 썩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의 먹이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용하고 난 뒤 접시를 부숴버렸을 때 발생하는 조각들을 새나 다람쥐의 먹이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환경 전문가들은 환경에 무해할 뿐 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 그리고 동물 모두가 공감 할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제로디자인이라고 호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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