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에 이식된 후에도 별다른 부작용 없이 신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미묘한 변화를 알아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전자 혈관(electronic blood vessels)’이 개발되어 의료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COSMOS는 지난 2일 자 기사를 통해 중국과 스위스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이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금속과 고분자막을 결합하여 개발한 전자 혈관으로 손상된 동맥을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생체 혈관을 대체할 수 있는 전자 혈관이 개발됐다 ⓒ Xingyu Jiang
기존 인공혈관의 문제점 해결하는 전자 혈관
중국 선전에 위치한 남부과학기술대학의 ‘싱유 지안(Xingyu Jiang)’ 박사가 이끄는 공동 연구진은 갈륨과 인듐이 함유된 액체금속 형태의 잉크를 유연하면서도 생분해되는 고분자막에 인쇄하여 신개념 전자 혈관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전자 혈관은 일종의 인공 혈관이다. 인공 혈관이란 수술이나 약물로 회복이 불가능한 신체의 생체 혈관을 대체하는 인공장기를 말한다. 인공 혈관의 역사는 비교적 오래되었다. 이번 전자 혈관이 개발되기 전에도 이미 많은 종류의 인공 혈관이 선을 보인 바 있다.
지난 1957년에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대크론(Dacron)이 처음 등장했고, 이듬해인 1958년에는 불소수지의 하나인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을 기반으로 하는 테플론(Teflon)이 개발되어 생체 혈관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 혈관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인공 혈관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응급처치 시에만 임시적으로 적용될 뿐, 장기적으로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혈액이 굳어 버려서 혈관이 막히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존 인공 혈관은 부작용이 많아 장기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 emergency-live.com
생체 혈관은 혈관 안쪽에 있는 내피세포가 자체적으로 항응고 물질을 분비해 혈관이 막히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인공 혈관에는 그런 세포가 없으므로 금방 혈액이 굳어서 혈관이 막히게 된다.
이런 까닭에 지름이 작은 인공 혈관은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큰 지름을 가진 인공 혈관만 사용되고 있다. 큰 지름을 가진 인공 혈관은 혈액이 빨리 통과하기 때문에 혈액응고가 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또한 혈관벽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놓기 때문에 인공 혈관이 막히는 일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하지만 이 방법도 완전한 것은 아니다. 인공 혈관을 이식한 초기에 미리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혈액이 누출되는 부작용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인공 혈관만으로는 장기간 사용이 어렵다는 것이 의료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토끼 대상 동맥 대체 실험에서 3개월간 성공
혈관은 유전물질을 전달하고, 약물 방출을 제어하며, 의료장비의 도움을 받아 약물 전달을 촉진하기도 한다. 기존 인공 혈관은 이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웠지만, 공동 연구진이 개발한 전자 혈관은 이런 문제점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있다.
지안 박사는 “전자 혈관은 생체 혈관을 최대한 모방하여 설계했다”라고 밝히며 “약물 방출을 제어하는 것은 물론, 유전자 치료 및 전기 자극과 같은 추가 치료에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공동 연구진은 생분해성 고분자인 카프로락톤(caprolactone)을 이용하여 금속 고분자 전도체 막으로 이루어진 혈관을 제작했다. 그리고 이 전자 혈관을 통해 전달된 전기 자극이 세포의 증식과 이동을 증가시켜 상처를 치료한다는 점을 파악했다.
이들은 개발된 전자 혈관이 실제로 생체 혈관을 대체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토끼를 대상으로 한 3개월간의 실험을 진행했다. 우선 뇌와 목, 그리고 얼굴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을 전자 혈관으로 대체한 뒤 모니터링을 했다.
그 결과 전자 혈관이 자연적인 동맥과 똑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혈관이 좁아지는 징후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인공 혈관의 부작용으로 일어나는 염증반응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전자 혈관의 성공 여부는 시스템의 완전 생체 내 삽입에 달려있다 ⓒ scimex.org
물론 지안 박사를 포함한 모든 연구진은 이 같은 전자 혈관의 결과가 당장 생체 혈관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분명 전자 혈관이 대체 혈관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물의 종류와 개체수에서 획기적인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실험 외에도 전자 혈관 시스템 자체를 개선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현재는 외장 배터리를 통해 전자 혈관을 작동시키고 있지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배터리를 체내에 내장시키는 초소형 시스템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지안 박사는 “전자 혈관이 생체 혈관을 완전하게 대체하기 위해서는 모든 부품을 신체에 완전히 이식 가능하도록 크기를 줄이고, 분해도 체내에서 완전히 이루어지게 만드는 생분해성으로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서는 배터리 및 내장 제어시스템을 최소화하여 제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며 “더 나아가 전자 혈관을 인공지능과 결합시켜 환자 개인의 혈속과 혈압, 그리고 혈당 수치 같은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함으로써 건강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활용하는 연구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