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사랑하는 건 아니야. 그냥 실수였어.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
“너에게 상처줄 생각은 없었어. 그냥 파트너였어. 내겐 네가 가장 소중해.”
사랑은 위험하다. 아니 사랑한다는 믿음이 위험하다. 사랑한다고 믿을 때 매번 자기모욕의 시험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는 이들은 흔하다. 대부분의 그런 믿음은 본인을 아름답게 채색하려는 기만적인 화장일 뿐이다. ‘너’를 사랑한다고 믿으며, 온통 ‘나’만 보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너’를 사랑한다고 믿으며 자본에, 불안에, 욕정에 눈이 먼 이들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그들은 모두 ‘나’의 돈과 ‘나’의 불안과 ‘나’의 섹스에만 온통 마음 쏠려 있다.
‘너’가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며 돈에 눈이 멀어버린 이들. ‘너’를 가장 아낀다고 말하며 불안에 눈이 멀어버린 이들. ‘너’가 소중하다고 말하며 섹스에 눈이 멀어버린 이들. 이들은 돈과 불안, 섹스 때문에 ‘너’에게 상처를 주고 ‘너’를 외면해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자신을 보지 못한다. ‘너’를 사랑한다는 믿음이 그 사실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하며 그 반복으로 그 말을 믿을 뿐이다.
사랑한다는 믿음은 무엇이 문제인가? 돈, 불안, 섹스 때문에 ‘너’에게 상처 주는 일인가?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 기만적인 믿음은 자신을 모욕하는 일이다. 이것이 가장 치명적인 문제다. ‘너’에게 상처 주는 모든 일은 자기모욕의 결과일 뿐이다. ‘너’를 사랑한다는 믿음이 크면 클수록 더 크게 자신을 모욕하게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자신의 삶을 모욕하고 있다는 그 치명적인 사실. 그 엄연한 사실을 그 자신만 모를 뿐이다. ‘너’를 사랑한다고 믿으며 ‘나’의 돈, 불안, 섹스를 가장 먼저 챙길 때, 자기모욕은 점점 커져만 간다.
사랑한다고 믿지 않는 것은 안전하다. 그들은 자기모욕의 시험대에 오를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대가로 자기를 잃어갈 것이다. 사랑한다는 믿음조차 없는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발견할 곳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사랑한다고 믿는 이들만이 자기모욕의 시험대에 오른다. 그리고 그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자신도 모른 채 자신을 모욕하는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사랑한다고 믿었기에 자신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겠으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스스로에게 모욕당한 이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쉬이 ‘너’를 사랑한다고 믿고 싶지 않다. 매번 사랑의 시험대 위에서 사랑을 확인하고 증명하며 살아가고 싶다. ‘나’ 자신을 모욕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사랑받고 싶다. 사랑은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