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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노력인가? 아닌가?

1.  

 사랑은 노력인가? 사랑은 불가항력적 사건이다. 한 존재에게 매혹되어 빠져들게 되는 게 바로 사랑 아닌가? 그러니 사랑은 노력이 아니다. 한 존재를 사랑하려는 마음 자체는 결코 노력으로 만들 수 없다. 이것이 사랑 없는(혹은 아닌) 이와 ‘사랑의 관계’를 시작하려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불행으로 가닿게 되는 이유다. ‘거래의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미화하는 역겨운 일은, 오직 '사랑은 노력'이라는 믿음 아래서만 이뤄진다. 사랑은 결코 노력이 아니다.      



2.

 그렇다면 사랑은 노력이 아닌가? 사랑에는 어떤 노력도 개입하지 않는가? 사랑의 역사는 사랑의 ‘잉태기’와 사랑의 ‘성숙기’로 구분할 수 있다. ‘사랑은 노력이 아니다.’ 이 명제는 삶의 진실이다. 하지만 이는 오직 사랑의 ‘잉태기’에 한해서다. 사랑의 ‘성숙기’에서는 다르다. 불가항력적으로 시작된 ‘사랑의 관계’ 아래서 사랑은 노력이다. 노력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결코 더 깊어지지 않는다. 이 역시 자명한 삶의 진실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삶의 진실 앞에서 모종의 반발감을 느끼게 된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지, 억지로 노력하는 것이 무슨 사랑이냐?’ 이처럼 반박할 수 있다. 이 반박은 옳은가?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사랑했다. 여자는 우울했지만 아름다웠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사랑했다. 여자 역시 남자를 사랑했기에 그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독한 우울만큼 불안했던 여자가 남자에게 줄 기쁨이 없었다. 여자가 줄 수 있는 건 ‘몸’ 뿐이었다. 자신의 우울과 불안을 보듬어주려고 애쓰는 남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섹스뿐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사랑이었다. 둘은 무엇 하나 억지로 노력한 것이 없다. 남자가 여자의 우울과 불안을 이해하고 보듬으려고 했던 것도, 여자가 몸으로 남자를 기쁘게 해주려고 했던 것도 모두 자연스럽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의 역사는 흘러갔다. 그 역사 어디 즈음에서 둘은 조금씩 지쳐갔다. 남자는 자신이 이해하고 보듬으려 했던 여자의 우울과 불안이 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쳐갔다. 여자는 그렇게 조금씩 지쳐가는 남자를 기쁘게 해줄 것이 자신의 몸뿐이라는 사실을 깨달고 자괴감에 지쳐갔다.      


 남자는 억지스러운 노력으로 여자를 이해하고 보듬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여자 역시 억지스로운 노력으로 남자와 잠자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둘은 그런 억지스러운 노력은 결코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예전같지 않아. 사랑은 노력이 아니잖아." 짧은 말로 그들의 사랑은 끝이 났다. 그들은 노력하지 않는 사랑으로 시작했고, 노력하지 않는 사랑으로 끝났다. 그들은 사랑을 잘 이해했을까? 사랑의 ‘잉태기’에서는 그랬고, 사랑의 ‘성숙기’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3.

 사랑은 ‘의무’가 아닐 뿐, ‘노력’이다. ‘사랑은 노력’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의무’와 ‘노력’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무'는 수동적 노력이다. 내가 원치 않는 노력이 '의무'이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수동적인 것은 아니다. 능동적인 노력이 있다. 내가 원하는 노력이 있다. 내가 어떤 존재를 간절히 원하기에 온 마음을 다해 노력할 때가 있다. 바로 그 ‘능동적 노력’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은 노력이다. 능동적 노력. 남자는 더 노력했어야 했다. 여자의 우울과 불안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으려 애를 써야 했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덜 슬프게 하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해 더 노력했어야 했다. 여자는 더 노력했어야 했다. 남자에게 몸 말고도 줄 수 있는 다른 기쁨을 만들려고 애를 썼어야 했다. 그를 조금이라도 더 기쁘게 하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해 더 노력했어야 했다. 


 '사랑'이 점점 더 부식되어, 사랑의 형체가 사라지기 전에 그렇게 했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어렵사리 잉태된 '사랑'을, 더 깊은 그래서 더 기쁜 '사랑'으로 성숙시킬 수 있었을 테다. 그들은 ‘사랑’했지만, 그들의 ‘사랑’은 성숙하지 않았다. 그들은 드물게 찾은 사랑,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을 발견했지만, 노력하지 않으려다 ‘사랑’을 놓쳤다. 사랑은 무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기껏 찾은 ‘사랑’을 세계 속에 흩뿌려버리는 무책임일 뿐이다. 무노력은 무책임이고, 이는 결코 사랑일 수 없다.     

 

 ‘사랑’은 지금 줄 수 있는 기쁨을 주는 일이다. 돈이 있다면 돈을 주고, 몸이 있다면 몸을 주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랑은 더 깊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당장 줄 수 있는 기쁨을 주는 일인 동시에 줄 수 있는 기쁨을 끊임없이 늘려가는 일이다. 어떠한 노력도 없는 채로 시작된 ‘사랑’은, 오직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능동적 노력만으로 성숙한다. 누가 사랑을 노력이 아니라고 하는가? ‘사랑’은 지독한 노력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다시 '사랑'을 만나기를, 그리고 다시 만난 '사랑' 앞에서는 더 노력하기를, 그렇게 더 깊은 그래서 더 기쁜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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