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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왔던 대로 죽는다.

1.

 ‘사랑의 판타지’가 있다. 키스할 때 종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연인과 함께 하는 모든 일상이 아름다운 영화 속 어느 한 장면이 될 것이라는 상상.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는 것처럼, 운명 같은 사랑이 나타나서 우울하고 불행했던 자신이 삶이 송두리째 변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이는 모두 ‘사랑의 판타지’일 뿐이다. 진짜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진짜 사랑은 무엇인가? 키스할 때 마늘 냄새가 나더라도 너를 사랑해주는 일이다. 고되고 지루한 일상을 넘어 너를 사랑해주는 일이다. 우울하고 불행했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켜야 겨우 만나게 되는 게 사랑이다. ‘사랑의 판타지’에 머무는 이들은 사랑을 해보지 않는 이들이다. 진짜 사랑을 해본 이들은 ‘사랑의 판타지’ 너머 ‘사랑의 진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평온하게 ‘사랑’할 수 있다.      



2.

 ‘죽음의 판타지’가 있다.  지금은 헛되이 살지만 죽음이 임박하면 누구나 진실하게 살 수 있다는 상상. 죽음이 삶의 극적인 변화를 줄 것이라는 믿음.  이는 '죽음의 판타지'다. 이 ‘죽음의 판타지’는 ‘사랑의 판타지’보다 강력하다. ‘사랑의 판타지’를 허문 이들은 적지 않다. 사랑 뒤에도 여전히 삶이 어이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죽음의 판타지’는 다르다. 죽음 뒤에는 삶이 이어지지 않기에 ‘죽음의 판타지’ 너머 ‘죽음의 진실’에 이르는 이는 극히 드물다.      


 죽음을 선고받았던 다섯 명을 알고 있다. 소심하게 살았던 이, 이기적으로 살았던 이, 탐욕스럽게 살았던 이, 강박적으로 살았던 이, 지혜롭게 살았던 이. 이들은 어떻게 죽어갔을까? 소심했던 이는 죽음을 선고받고 자포자기하며 너무 빨리 삶을 포기해버렸다. 이기적인 이는 닥쳐온 자신의 죽음만 보느라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죽어갔다. 탐욕스러웠던 이는 죽음을 선고받고도 마지막까지 돈을 아끼면서 죽어갔다. 강박적인 이는 죽음이 코 앞에 온 순간까지 방청소와 물건을 정리했다. 지혜로운 이는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차분하게 자신과 타인의 기쁜 삶을 이어가면서 죽어갔다.      



 ‘죽음의 진실’은 무엇인가? ‘살아왔던 대로 죽는다!’ 이것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죽음의 진실’이다. 물론 죽음은 아주 강력한 사건이기에 잠시 삶이 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내 살아왔던 관성으로 되돌아간다. 소심하고, 이기적이며, 탐욕적으로 살아왔던 이에게 죽음이 덮쳐왔다고 해서, 그가 갑자기 대범한, 이타적인, 베푸는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영화에서나 일어날 뿐 현실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지혜롭게 살아온 자만이 지혜롭게 죽는다.


 있는 그대로의 삶은, 살아왔던 대로 죽는 삶일 뿐이다. 의존적으로 살았던 이는 무엇인가에 의존하며 죽을 것이며, 우울하게 살았던 자는 우울하게 죽을 것이며, 남 탓을 하며 살아왔던 자는 남 탓을 하며 죽을 것이며, 욕정에 휩쓸리며 살아왔던 자는 욕정에 휩쓸린 채로 죽을 것이다. 강건하게 살았던 이는 강건하게 죽어갈 것이며, 유쾌하게 살았던 자는 유쾌하게 죽을 것이며, 자신을 위해 살았던 자는 자신을 위하며 죽을 것이며, 사랑하며 살았던 자는 사랑하며 죽어갈 것이다. 삶은 지독히도 야박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살아왔던 대로 죽는다.



3.

 삶과 죽음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이어진 사건도 아니다. 삶과 죽음 그 자체로 하나다.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왔던 대로 죽게 될 뿐이다. 이 삶의 진실을 '매순간 죽음을 준비하라'는 메세지로 읽어서는 안 된다. 살아 있을 때는 신나게 살아야지, 살아 있을 때 조차 죽음을 준비하며 침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매일 죽음을 준비하는 삶은 슬픈 삶이다. 매일 죽음이 준비되는 삶이 기쁜 삶이다. 하루를 잘 사는 것보다 지혜로운 삶은 없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은 오늘 하루만의 일이 아니다. 그 쌓인 하루가 내일을, 내년을 그리고 끝내는 우리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까닭이다. 오늘 하루 기쁘게 살고, 그 기쁜 삶으로 죽음이 잘 준비되는 삶. 이보다 더 기쁜 삶을 사는 방법 또 어디 있겠는가?


 많은 죽음을 지나오고 있다. '죽음의 판타지' 너머 '죽음의 진실'을 본다. 오늘 하루 더없이 유쾌하게 살아갈 테다. 오늘 하루 더 없이 나를 위해 살아갈 테다. 오늘 하루 더 없이 너를 사랑할 테다. 그렇게 더없이 기쁜 하루를 쌓아갈 테다. 그렇게 살아가다 어느 날, 죽음이 찾아왔을 때, 깊은 미소로 지혜롭게 죽어갈 테다. ‘사랑의 판타지’  너머 ‘사랑의 진실’을  알게  되었듯, ‘죽음의  판타지’  너머  ‘죽음의  진실’에 이르려 한다.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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