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water"
잘 싸우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온몸에 힘을 잔뜩 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지 않기는커녕 매번 신나게 얻어터졌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온몸에 힘을 주었고, 여기저기 찢고 터지는 일들만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무엇이 잘 못되었던 걸까요?
체육관에서 한 번도 들리지 않던 음악이 들렸던 순간이었을 겁니다. 제가 왜 매번 얻어터졌는지 이유를 알게 된 때가. 이기기 위해서는 온몸에 힘을 빼야 하는 거였습니다. 몸에 힘을 빼서 상대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는 거였습니다. 이 삶의 진실을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조금 덜 맞으며, 조금 더 때리며 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잘 사는 법도 이와 같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서는 잘 살 수가 없지요. 타자에 맞춰 물처럼 변화할 수 있어야 삶을 잘 살 수 있는 거였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가 되어야 비로소 삶을 잘살 수 있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변신’이라고 표현하죠. 하지만 ‘변신’은 ‘물’이 아니죠. 이 삶의 오해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다시 또 먼길을 돌아와야 할 겁니다.
‘변신’과 ‘물’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습니다. ‘물’이 된다는 건 형체가 없음으로 형체를 갖는 일입니다. 물은 형체가 없지만, 흘러가는 상황마다의 형체(흐름)가 있지요. 반면 ‘변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가 되지만, 이는 매 순간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일이죠. 그 끊임없는 변화가 아무리 짧게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죠.
아무리 많은 ‘변신’을 한다고 해도, 결코 ‘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변화를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변신’은 결국 고정된 형체를 갖고 있습니다. ‘변신’은 언뜻 진보인 듯 보이지만, 이는 퇴행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변화를 긍정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고정된 모습을 바라고 있다면,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엄마를 욕망했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돈을 욕망하게 되고, 다시 명예를 욕망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변신’은 결국 이름만 바꾼 ‘엄마’에 대한 집착일 뿐인 것처럼 말이죠.
‘변신’한다는 말 속에는, 그 ‘변신’이 아무리 긍정적인 변화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테두리에 대한 은밀한 집착이 숨어 있습니다. 그 은밀한 집착마저 끊고 ‘물’이 되려고 할 때 비로소 삶을 잘 살아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 겁니다.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변신’ 너머 흐르는 ‘물’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