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철학의 본령을 지키려는 철학자가 얼마나 남아 있는가?
1.
철학하는 글쟁이로서 살아가기로 마음 뒤 세운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중 하나는 특정인의 의견에 관해서 가급적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판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나의 철학으로 정리해서 말하면 될 일지 굳이 특정인을 비판하는 일은 피하고 있다. 그 원칙을 잠시 내려둔다.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는 변명으로 글을 시작한다.
2.
진보 진영에서 목소리를 내는 철학자가 한 분 있다. 특정 정당의 당원들 교육을 담당하는 위원장을 맡을 만큼 영향력이 있는 분이다. 그분이 얼마 전 어느 방송에서 전 국민이 주식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하 발언 내용)
“우리 세대에 가장 잘못된 것이 주식을 화투나 노름처럼 생각한다는 거예요. … 주식을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 인구의 50%를 넘는 날 어떤 일이 벌어지냐? 여야가 모두 선거 때마다 유동성을 주식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지금 우리가 부동산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해결하는 하나의 길이에요. 그런 측면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 핵심적 위치에 있는 분들이 또는 정치적 책임이 있는 분들이 주식을 … 해야 한다.”
그분의 이야기는 정당한가? 그분의 이야기는 다 옳은 이야기다. 주식은 노름이 아니다. 노름은 단순 확률 게임을 통해 이뤄지는 비생산적 제로섬 게임이고, 주식은 기업 활동을 촉발해 사회적 부가가치를 촉발하는 생산적 투자 활동이다. 그러니 주식과 노름을 동일시하는 인식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전 국민이 주식을 해야 한다고 말할 이유가 되는가? 주식이 노름(비생산성)이 아니라는 사실이 전 국민이 주식을 해야 한다고 말할 근거가 되는가?
그 철학자는 전 국민이 주식을 해야 하는 당위에 대해서 부동산을 근거로 든다. 쉽게 말해, 전 국민이 주식을 하면 정치인들이 선거 때 부동산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주식에 휘둘려서 부동산 문제가 안정화될 것이라는 취지다. 이 역시 옳은 추론일 테다. 표에 목을 거는 정치인들은 분명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전 국민이 주식을 해야 한다고 말할 이유가 되는가?
철학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유사 이래 철학자는 당장 당면해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이었다. 그것이 철학자들이 긴 시간 고담준론만을 펼치는 현실감각 없는 이들로 오해받은 이유였다. 철학자는 그 오해를 견디며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인간다운 삶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이는 서양철학의 시조인 탈레스부터 서양철학의 정점이라고 인정받는 들뢰즈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탈레스는 올리브 농사가 대풍이 들 것을 예견하고, 올리브유를 짜는 기계를 미리 빌려 큰돈을 벌었을 만큼 천문학과 경제학에 밝았다. 하지만 그는 당장 필요한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추구했다. 들뢰즈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저서 『안티 오이디푸스』 와 『천 개의 고원』은 당장 온갖 편의를 주는, 동시에 인간성을 훼손하는 자본주의를 넘어 조금 더 인간다운 세계를 고민했던 결과였다. 이처럼 철학자는 당장 당면해 있는 문제 넘어 조금 더 긴 호흡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누군가는 주식의 효용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누군가는 당장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나는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먹고 사는 문제는 엄중하니까. 그런데 '먹사니즘'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지 않은가? 철학자를 자처하는 사람마저 그러한 목소리에 편승해야 하는가? 이는 철학자로서 너무 무책임한 일 아닌가?
모두가 주식을 하면, 부동산 문제는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것은 부동산 문제가 다른 자본주의적 문제로 옮겨가게 되는 것일 뿐이다. 전 국민이 주식을 하게 되면, 병적인 자본주의는 지금보다 더욱 악화될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그때가 오면, 지금의 부동산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을 불 보듯 뻔한 일 아닌가?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면, 그는 철학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 주식의 효용을 주장한다면, 그는 철학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모르는 것이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사업가는 당장의 이윤을 준비해야 하고, 정치인은 그보다 조금 더 큰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철학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다. 그 때문에 갖가지 비난과 오해를 받더라도 그리 해야 한다. 그것이 철학을 업으로 삼는 자의 소명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우리 시대에 철학의 본령을 지키려는 철학자가 얼마나 남아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