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말하는 고통은 산스크리트어 ‘두카dukkha’에서 유래했다. 이는 ‘어긋남’이란 의미다. 기대한 바가 어긋날 때 느껴지는 감정이 ‘고苦’라는 것이다. 우리의 고통이라는 것은 기대한바 만큼의 어긋남 아닌가? 돈(사랑) 때문에 겪는 고통을 생각해 보라. 이는 돈이 많기(사랑이 계속되기)를 기대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 아닌가? 그 기대 만큼의 어긋남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는 반대로 말해, 기대하는 바가 작으면 그만큼 고통도 줄어든다는 의미다.
불교에서 ‘고’를 다루는 방식은 근본적이다. 즉 기대를 완전히 없애는 방식이다. 기대한 바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애초에 어긋날 일도 없으니까. 이는 근본적이기에 확실하다. 그런데 속세의 수행을 지향하는 나는 이 근본적인 고의 해방의 관점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욕망과 기대가 드글거리는 속세에서 기대한 바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철학과 불교를 횡단하며 ‘고’를 다루는 또 하나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 삶이 어긋남(고)의 연속일지라도, 그 삶을 잘 다룰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어긋난다는 건 기대와 결여가 불가분의 한 쌍이기 때문이다. 이때 기대는 기쁨이고, 결여는 슬픔이다. 이때 시선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삶의 고통은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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