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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돈은 중요한가?

우리는 자본주의資本主義 속에서 산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OO주의主義’라는 말에서 중요한 건 ‘OO’다. ‘OO주의’라는 말은 ‘OO’가 주인主이 되는 것이 옳다義는 의미다. 그러니 ‘자본주의’란 다른 무엇보다 자본, 즉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자본주의에서 돈이 없다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돈이 있다면 할 수 없는 것이 거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가장 중요하니까. 자본주의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돈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 중요한 것을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


삶이 불행에 빠질 때가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삶에서 중요한 것을 제대로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던 이들은 때늦은 후회로 언젠가 지독한 불행에 빠지게 마련이다. 부모의 죽음 뒤에 지독한 불행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 미처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사달이다.


돈도 마찬가지다. 돈은 중요하다. 이를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돈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우리 시대에 돈 때문에 불행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은 ‘돈이 없어서’라기보다 ‘돈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돈으로 인해 불행에 빠지고 싶지 않다면 더 늦기 전에 돈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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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의 두 가지 ‘부富’


돈은 ‘부’富다. 이 ‘부’에 대서 누구보다 깊게 사유했던 철학자가 있다.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다. 그는 『자본론』이란 저서를 통해, 자본주의와 부, 그리고 노동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 바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의 초고로 알려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부’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마르크스는 ‘부’라는 것을 단순히 돈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부’라는 것은 ‘경제적인 부’와 ‘실질적인 부’로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경제적인 부’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경제적인 부’는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경제적인 자원의 양을 말한다. 쉽게 말해, 지금 당장 팔아서 돈으로 만들 수 있는 자원(집, 자동차, 컴퓨터, 냉장고, 스마트폰, 옷 등등)의 양이 바로 ‘경제적인 부’이다. 쉽게 말해, 돈 혹은 돈으로 만들 수 있는 자원들이 바로 ‘경제적인 부’이다. 우리가 흔히 돈 많은 이를 ‘부자’라고 말할 때, ‘부’는 바로 이 ‘경제적인 부’를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이 ‘경제적인 부’ 즉 돈 이외에 또 다른 ‘부’가 있다고 말한다. ‘실질적인 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실질적인 부’는 무엇일까? 먼저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12시간의 노동이 아니라 6시간의 노동이 행해질 때, 한 민족은 진실로 부유하다. … 실질적 부는 각 개인과 전체 사회를 위해서 직접적 생산에서 사용되는 시간 이외의 가처분 시간이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칼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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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가처분 시간’이 바로 ‘실질적인 부’라고 말한다. 이 ‘가처분 시간’은 무엇일까? 이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시간 이외에 자신의 마음대로 처분 가능한 시간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자유시간이 곧 ‘가처분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이것이 바로 진짜(실질적인) ‘부’라고 말한다. 지금 마르크스는 돈이 많은 사람보다 시간이 많은 사람이 진짜(실질적인) 부자라고 말하는 셈이다. 이는 놀라움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한 이야기 아닌가?


마르크스에 따르면, 10억 원을 가진 사람보다 10만 원을 가진 사람이 더 부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대기업 임원과 동화 작가가 있다. 대기업 임원은 10억 원이 있지만, 정신없는 회사 일에 매여 하루의 자유시간(가처분 시간)이 1시간이다. 반면 동화 작가는 통장에 10만 원밖에 없지만, 하루의 자유시간(가처분 시간)이 10시간이다. 둘 중에 누가 더 부자인가? 임원은 분명 동화 작가보다 분명 ‘경제적인 부’는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즉 ‘경제적인 부’의 관점에서는 임원이 부자다.


하지만 ‘실질적인 부’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동화 작가가 부자가 된다. 임원은 하루에 1시간의 자유시간밖에 없지만, 동화 작가는 하루에 10시간의 자유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임원은 하루 종일 자신 원치 않은 일을 하다가 늦은 밤에 1시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삶을 산다. 반면 동화 작가는 동화책을 쓰는 동안(6시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또 사랑하는 이들과 식사와 차(3시간)를 즐기고, 산책(1시간)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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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부자는 누구인가?

마르크스의 말대로라면, ‘경제적인 부’자는 임원이지만, ‘진짜(실질적인) 부’자는 동화 작가 셈이다. 이는 황당한 말장난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마르크스의 논의는 분명한 삶의 진실이다. 마르크스의 논의는 어째서 삶의 진실인가? 이는 우리가 왜 돈을 벌려고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찬우’와 ‘성길’이 있다. 둘은 최신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서 알바를 하고 있다. 한 달 동안 알바를 해서 둘 모두 스마트폰을 살 돈(경제적인 부)을 모았다. 그리고 둘은 모두 스마트폰을 하나 샀다.


그 후에 ‘찬우’는 알바를 그만두었고 ‘성길’은 계속 알바를 했다. 당연히 ‘성길’은 스마트폰을 하나 더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더 모았다. 그렇다면, ‘찬우’와 ‘성길’ 중 누가 더 부자인가? ‘경제적인 부’자는 당연히 ‘성길’이다. 돈(경제적인 부)이 더 많으니까. 하지만 ‘성길’이 ‘실질적인 부’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성길’은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느라, 정작 스마트폰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가처분 시간(자유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의 척도는 어쨌든 이제 노동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가처분 시간이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칼 마르크스


마르크스에 따르면, ‘찬우’야말로 진정한 부자다. ‘실질적인(진짜) 부’자. 그는 한 달 알바를 하고 그만두었기 때문에 돈(경제적인 부)은 많이 없다. 하지만 그 대신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유시간(가처분 시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에게 ‘찬우’가 전혀 부자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성길’이 더 부자인 것처럼 보인다. 이는 우리가 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왜 자유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 진짜 부자인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리는 왜 돈을 벌려고 하는가? 이런저런 물건을 사고 싶어서? 흔히 사람들은 유·무형의 상품(집·차·컴퓨터·스마트폰·음식·음악·영화 등등)을 원하기 때문에 돈을 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상품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시간이다. 집과 차에서의 안락한 시간,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할 시간, 음식과 음악,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다. 이는 사실이지 않은가? 열심히 일을 해서 집, 차를 샀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일을 하느라 집에서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거나, 드라이브를 즐길 시간이 없다면 그를 정말 부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무형의 상품 역시 마찬가지다. 값비싼 뮤지컬이나 음악회에서 온통 일 생각을 하느라 그것을 제대로 향유할 수 없는 이들을 진정한 부자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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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시간을 위한 수단


우리가 돈(경제적인 부)을 원하는 이유는 ‘상품’을 갖고 싶어서가 아니다. 자유시간(실질적인 부)을 갖고 싶어서다. 치사스럽고 고된 직장을 다니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옷인가? 가방인가? 집인가? 차인가? 아니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퇴사 아닌가? 직장인들의 ‘소비 욕구’는 ‘퇴사 욕구’가 좌절되었기에 만들어진 반작용일 뿐이다. 직장인들의 마지막 소망은 자유시간이다.


매일 일만 하느라, 많은 돈을 벌었지만 정작 자신만의 시간(실질적인 부)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놀랍게도, 이들은 ‘경제적인 부’가 거의 없는 가난한 사람들만큼의 허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는 마르크스의 논의에 따르면,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그들 역시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제적인 부’자일지는 모르겠지만 ‘실질적인 부’는 거의 없는 가난한 이들일 뿐이다.


돈은 중요하다. 그걸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내 삶을 자유롭게 꾸려갈 수 있는 자유시간. 그것이 없다면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한없이 가난한 사람일 뿐이다. 돈이 우리를 불행으로 몰아넣을 때가 있다. 돈을 왜 버는지 모른 채로 돈을 벌려고 할 때이다. 돈이 없으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것은 숙명이다.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사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그 숙명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돈이 결코 우리의 자유(가처분)시간보다 중요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이제 돈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답할 수 있다. 돈은 시간(자유)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자신의 삶을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을 얻기 위한 수단. 이 통찰에 이르면 돈을 어떻게 또 얼마나 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답할 수 있다. 돈에 대한 두 가지 지침이 있다. 자유로운 시간을 위해 돈을 벌 것! 그리고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만큼 돈을 벌 것! 돈에 대해서 고민될 때 마르크스의 이 전언을 다시 꺼내 되새길 수 있다면 좋겠다.


사람들(people)에게는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창조하고 정신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철학수고」 칼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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