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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은 생각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자신의 맨 얼굴이 얼마나 흉측한지 모르는 사람과 자신의 맨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는 사람. 저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 둘 모두에게 자신의 맨 얼굴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럴 때,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의 반응이 다릅니다. 전자의 부류는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라며 화를 내거나 불편해합니다. 하지만 후자는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네, 감사해요”라고 이야기 하지만 저의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 전자의 부류가 제게 상처를 남긴다면, 후자의 부류는 언제나 저를 안타깝게 합니다.


 저는 전자의 부류를 비난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후자의 부류를 칭찬하고 싶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보지 못하고 있는 맨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들의 흉측한 맨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는 그 맨얼굴에 직면하지 않고는 달라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맨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는 과도하게 스스로를 책망하고 폄하하는 자기비하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도한 자기비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흉측한 얼굴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과거의 상처로 인한 원망, 후회, 자책, 눈물, 절규, 절망, 그 모든 것들이 뒤엉켜 생기는 내면의 어둡고 추악한 괴물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중요한 건, 그 괴물이 아니에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그 괴물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믿지요. 그 괴물이 바로 자신이라고.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결코 눈치 채지 못하는 걸 거예요.


 하얀 스케치북이 있어요. 그 중에 몇 개의 점이 찍혀 있어요. 우리 속의 괴물은 그 검은 점 같은 걸 거예요. 거리를 두어 스케치북 전체를 볼 수 있다면 그 점은 아주 작게 보이거나 어쩌면 보이지도 않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고개를 숙여 그 작은 검은 점에만 집중한다면 자신 전체가 검은색처럼 보일 수밖에 없어요. 점에서 눈을 떼야 해요. 하얀 스케치북을 봐야 해요. 눈처럼 하얀, 그래서 아직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그 아름다운 여백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을 때, 누군가 우리에게 “당신은 생각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게 될 거예요. 누군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해줄 때 그 말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진심으로 믿게 된 만큼 자신의 그 하얀, 그 아름다운 맨얼굴이 드러날 테까요. 그렇게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아름다운 자신의 맨얼굴과 조우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렇게 세상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상처받는 것보다 안타까운 것이 더 힘든 시기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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