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란 칼럼] 불안증에서 수영을

불안증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여기부터는 읽지 않아도 돼. 왜냐면 너는 알아서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 거든. 근데 길을 모르고 갈 때는 길게 느껴지지만 알고 가면 가깝게 느껴지잖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지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쓴 거야. 그러니까 딱 그 정도 마음으로만 읽으면 돼.



넌 지금 갑자기 물에 빠진 거야. ‘왜 내가 하필 이런 상황에 처했을까?’ 그런 생각도 들지. 내가 나약해서 그런 게 아닐까 남들은 안 그런 것 같은데. 아니야. 누구나 그런 날이 있을 거야. 다만 자기가 그걸 아느냐 모르느냐 주변상황이 그걸 얼마나 견딜 수 있게 해 주느냐 차이일 뿐이지. 지금까지는 무릎정도의 물에 빠진 적이 있거나 지나가다 물벼락을 갑자기 맞은 날도 있었을 거야. 그 때 따뜻한 햇볕이 있어서 금방 말랐을 거고 얕은 물이라 네가 나오고 싶을 때 걸어 나왔을 거야.


지금은 네 키보다 딱 10cm 깊은 물에 빠진 거야. 누가 밀었을 수도 있고 네가 실수로 헛딛었을 수도 있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정말 중요한 건, 네가 발버둥을 치지 않고 가만히 웅크리고 있으면 네가 물에 빠진 걸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야. 네가 잠수를 하고 있는지 물에 빠진 건지. 그러니까 살려달라고 열심히 발버둥 치면서 소리쳐야 돼. 누가 구멍조끼를 던져 줄 수도 있고,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너를 건져 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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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의 난 네게 조금 다른 제안을 하고 싶어. 어차피 물에 빠져버린 거 그냥 수영을 배우러 온 거라고 생각해 버리면 어떨까? 누가 건져 줄 수도 있겠지만, 수영을 배워 버리면 다음에 더 깊은 물에 빠져도 무서워하지 않고 잘 헤엄칠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때 불안이라는 물속을 잘 헤엄치는 사람이 될 수 있어. 그 땐 허우적거리고 싶어도 허우적거릴 수 없어. 너는 수영을 할 줄 알게 돼 버렸거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많은 책과 동영상들을 보고 있지? 보면서 “이걸 누가 몰라서 그러나! 다 똑같은 얘기구만 왜 이렇게 많은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렇게 계속 하면 돼. 아직 머리로만 이해한 거야. 보다 보면 같은 얘기라도 네 마음에 잘 와 닿게 설명 해 주는 부분이 있을 거야. 또 다른 책에서 또 비슷한 이야기들을 찾게 될 거야. 널 도와주기 위해 조금이라도 네 마음에 잘 와 닿는 설명을 해 주기 위해 여러 개의 비유와 내용으로 많은 책들이 만들어진 거더라.


수영 교재는 여러 개잖아. 어린이용도 있고 어른 것도 있고 책도 있고 영상도 있고 그런데 보다보면 내가 모르는 부분을 이해가 아주 잘 되게 설명해 놓은 교재가 있을 거야. 그걸 한 번에 찾기는 힘들겠지. 그리고 어떤 한 권만이 내가 모르는 부분을 전부 설명해 놓을 순 없을 거야. 그런 거지 뭐. 그리고 교재는 읽어도 되고 읽지 않아도 돼. 수영 배우는 데 지장이 없어. 하지만 읽으면 배울 때 안 읽은 것 보다는 도움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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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교재만 읽어서 ‘수영이 이렇게 하는 거구나’ 아는 거랑 내가 물에 직접 들어가서 하는 거랑은 정말 다르잖아. 읽었으면 연습을 해 봐야겠지. 처음에는 잘 안 될 거야. 하다보면 될 거야. 매일매일 눈 뜨면서 ‘오늘은 괜찮아지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진정되지 않을까?’ ‘어느 날 갑자기 눈 뜨면 아무렇지 않게 그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런 걸 바라고 있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절망할 필요 없어. 발버둥을 치다보면 그냥 서서히 괜찮아질 테니까.


너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 갑자기 뒤를 돌아보면 그 전의 너보다 더 강해져 있을 거야. 불안증도 수영이랑 똑같아. 처음에는 안 될 거야. 물도 깊고 너무 무섭고 키판을 잡고 있어도 겨우 뜨는데 내가 수영이 될까 의심했잖아. 그런데 계속 연습하면 되잖아. 그렇게 어느 날 떠 있잖아. 그런데 뜨고 나서도 잘 될 때도 있고 물 먹을 때도 있고 그러다가 계속 하면 나중에는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잖아.


조바심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수영을 배울 때 갈 때마다 ‘오늘은 뜰 수 있을까?’ ‘오늘은 갑자기 선수처럼 자유형을 할 수 있을까?’ 조바심을 내면서 수영장에 가진 않잖아. '지금은 안되지만 언젠가는 되겠지'란 여유를 갖고 수영을 배우러가잖아. 너도 그렇게 살면 돼. 지금 잘하고 있어. 지금 불안을 다루는 방법을 연습 중이야. 생각보다 너무 긴 기간 동안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지? 하지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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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똑같은 기간 내에 수영을 배울 수 없잖아. 조금 길게 걸리는 사람도 있고 빨리 배우는 사람도 있잖아. 저 사람은 빨리 배우는데 나는 왜 이렇게 빨리 못할까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잖아.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야. 불안증에 시달린 기간 같은 걸 가늠해 보는 건 아무 의미도 없어. ‘벌써 이런지 몇 달이다. 도대체 얼마나 지나야 괜찮아질까? 라는 생각들은 너를 더 힘들게 할 뿐이야. 결국 수영을 배워서 몸에 익으면 알게 돼. 물이 그리 깊지 않았단 걸.


불안증에서 힘들어하는 시간은, 인생이라는 시간 속에서 그리 긴 시간이 아니야. 지금까지 내 얘기에 ‘뭔 소리 하는 거야’라고 생각해도 되고 ‘그런가?’라고 생각해도 돼. 다 필요 없어. 이것만 알면 돼. 확실한 건 너는 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거야. 반드시 지금의 불안들을 언젠가는 다 껴안을 수 있을 거야. 정말이야. 맏어도 좋아. 5년 뒤의 나는, 지금 그러니까.




이아란

좌충우돌했던 10대와 20대를 거치며, 서른에 접어들었고요,

극심했던, 불안증의 터널을 빠져 나왔고요,

지금은 '철학흥신소'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더 건강한 삶을 희망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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