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적인 힘에 예속되지 않는, 주인으로서의 삶은 가능한가?
외부의 힘에 지배 받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노예라 부르며, 그들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다. 돈을 벌기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 푸코는 ‘에피스테메’라는 세상을 지배하는 강한 구조적 힘에 영향을 받는다. 강한 힘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대다수의 인간이 의식하지 못한 채 그 힘에 지배 받고 있기에 그렇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힘들의 싸움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의 싸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힘과 그 힘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또 다른 힘의 싸움. 그리고 한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그 강했던 힘이 반대되는 다른 힘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렇게 힘 싸움에서 승리한 또 다른 힘은 우리를 구원하기보다 다시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현재 그 힘은 자본주의라는 이름 갖고 있고, 그 힘에 완전히 지배 받은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조금만 경계심을 늦추면 순식간에 우리 고유의 감수성을 제거하고 그들과 같은 감수성을 주입하려 한다. 우리는 그 힘에 따르겠다고 동의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러한 사실을 미리 간파하고 자신들의 고유의 감수성을 지켜낸 ‘탈근대적’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어 왔다. 그들은 힘 싸움이 존재하는 한 적과 동지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끝내 모두를 파괴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러니 지배적인 힘에 휘둘리지 말고 삶을 자신의 힘으로 영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배적인 힘에 예속되지 않는 주인으로서의 삶. 즉 주체로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몇 가지 의문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첫 번째는 ‘그 강한 힘을 이겨낼 수 있는 의지는 도대체 어떻게 생기는 걸까?’이고, 두 번째는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여럿 모이게 된다면, 과연 그들끼리는 잘 지낼 수 있을까?’이고, 세 번째는 ‘그러한 집단이 생긴다면 그 집단 밖에 사람들과는 어떻게 될까? 결국 또 적과 동지로 나뉘어 서로를 파괴하는 일들이 되풀이 되는 건 아닐까?’ 이다. 나는 이러한 의문을 ‘스피노자’를 필두로 조금이나마 풀어보려고 한다.
이종혁 (MC 들뢰즈)
- 철학흥신소 소속 작가. (라고 본인은 한테 설득 중)
- 우울증 핑계대고 퇴사해서, 놀고 먹고 있음
- 놀고 먹다 지쳐, 랩을 만들고 주짓수를 하고 있음.
- 창의적인 인간임(창의성은 놀 때 발현된다는 것을 삶으로 입증 중)
- 아직은 방황하고 있지만, 계속 그럴 같음. (다행히 아버지가 돈이 좀 있음)
- 철학을 삶으로 받아들인다고 쌩똥을 싸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