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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나는, 여전히 여전히 숨바꼭질 중

숨바꼭질 


‘어, 그냥 지나가네’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을 때쯤이었던 것 같다. 동네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했다. 나는 숨었고, 술래는 찾았다. 정말 꼭꼭 숨었다. 어제는 잘 숨지 못해 술래에게 너무나 일찍 발견되어 속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골목 어귀에 있던 리어카 뒤에 몸을 꼭꼭 숨겼다. 멀리서 다른 친구들이 하나씩 술래에게 잡히는 소리가 들렸다. 내심 뿌듯했다. 어제처럼 너무 빨리 술래에게 잡히지 않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나 보다. 술래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고 있었다. 나는 더욱 숨을 죽였다. 술래는 내가 숨어 있는 리어카 바로 앞까지 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너무 어두워서였을까? 아님 골목길이어서였을까? 술래는 리어카 뒤에 숨은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렸다. 잡히지 않으면 행복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무서워졌다. 술래가 나를 발견하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리어카 뒤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 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술래에게 ‘나 여기 있어!’라고 외치지 못했다. 술래에게 잡히면 안 되는 숨바꼭질 중이었으니까. 그저 속으로만 ‘나, 여기에 있어, 여기 있다니까’라고 되뇌일 뿐이었다. 술래가 리어카 주위에서 멀어져 갈수록 나는 점점 겁이 났다. 나를 발견해줄 사람이 없어져 버려서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운동화를 바닥에 비비기 시작했다. 술래에게 나 여기에 있다고 알리고 싶어서였다. ‘나 여기 있다!’고 외칠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나 여기에 있다’고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그 리어카 뒤에서 나와서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술래는 고맙게도 나의 인기척을 알아채고는 나를 찾아주었다. 나는 짐짓 ‘에이 들켰네’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술래는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물을 찔끔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이나 무서웠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어서 안도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숨바꼭질 중


사람들을 만났고, 또 만나는 중이다. 그 분들을 만나면서 예전의 숨바꼭질이 기억이 났다. 이번에는 내가 술래다. 우리는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숨바꼭질 중이다. 삶에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은 다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 여기 있다!’라고 외치지 않았다. 어떤 분은 너무 꼭꼭 숨어버렸고, 또 어떤 분은 운동화를 바닥에 비비고 있었다. 모두 삶에 지쳤버린 것을 직감했지만, 정작 자신의 진짜 속내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분은 없었다. 술래인 내가 그분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이리저리 찾아다녀야만 했다.


 사람들은 외롭다. 그래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대부분은 정직하게 ‘나는 여기에 있어!’라고 소리 내어 외치지 못한다. 너무 빨리 술래에게 잡히면 속이 상하듯이 너무 빨리 그리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조금은 창피하고 또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것일 테다.  한 사람을 발견한다는 것, 그것은 숨바꼭질인 것 같다. 그 숨박꼭질은 힘든 일이다. 꽤 많은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혼자인 시간이 너무 외롭고 무섭지 않을까 해서 숨어 있는 사람을 너무 빨리 찾아버려서도 안 된다. 아직 더 숨어 있고 싶은 사람들을 너무 일찍 발견하면 그들은 당황하거나 화를 내거나 아니면 울음을 터뜨린다. 그분은 아마 조금 더 숨어 있다가 찾아주기를 바랬던 같다. 외롭고 무섭지만 아직은 세상에 나올 준비가 안 된 사람인 것 같다. 그렇게 조금 더 숨어 있고 싶은 사람도 있다.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반면에 너무 꼭꼭 숨어 버려서 좀처럼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너무 힘든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초조해진다. 리어카 뒤에 숨어 있는 나를 술래가 찾아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그 두려움, 불안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작은 인기척이라도 느껴 보려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그 역시 너무나 간절히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땅거미가 깔리는 저녁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무서움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술래가 섬세하지 못하게 너무 일찍 발견해버려서 속이 상한 분들께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 ‘넌 여기에 있었던 것 이미 알고 있었어’ ‘여기는 다른 사람들도 다 숨는 곳이야’라고 너무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서 혹여 상처 받았던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어두운 골목길 리어카 뒤에 혼자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는 나의 진심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핑계를 대면서.


 앞으로 사람들과 더 긴 숨바꼭질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번에도 내가 술래다. 술래가 숨어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하면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걱정이 앞선다. 혹여 저녁이 지나 어두운 밤이 될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을 만들게 될까봐서. 다시 고된 숨바꼭질을 시작하며 숨어 있는 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혹시 내가 근처에 지나가든 조심스레 운동화를 바닥에 비벼주었으면 좋겠다. 아직 모자란 술래가 숨어 있는 사람들을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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