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윤정칼럼]철학과 깨달음

깨달음의 위험과 희망

깨달음은 위험하다. 하지만 그 위험이 없다면, 희망도 없다. s. spinoza


철학 수업을 들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하나씩 배울 때마다 꼬리를 무는 많은 생각에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맞는 이론인 것은 알겠지만 실행할 수 없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나의 무능력 때문인가 실행력의 부족인가, 머리로 생각하는 것 이외에 마음으로 깨닫지 못한 정리되지 않은 불편함이 느껴졌다.


새로운 내용을 배울 때마다 생각은 달라졌지만 깊은 비관과 우울 여전히 남겨졌다. '나는 비정상이야'라는 비관과 '왜 살아야 하는 거지?'라는 근원적 질문에 답하지 못해 생긴 우울. 죽고 싶은 건 너무나 살고 싶은 것이라는 걸 겪어본 사람은 안다. 너무나 살고 싶은데 죽고 싶다. 이 간극의 문제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삶의 의지와 죽음의 비밀을 풀지 못해 삶의 의미를 잃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어디서 가져와 당연하게 사는 걸까? 그들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으려 했다. 싫어하는 것, 괴로운 것을 없애는 걸로 삶을 연명해 온 것 같다. 그런 스트레스들이 내가 진짜 죽음을 실행하게 만들 것 같아서, 죽음의 낭떠러지 앞에 열심히 비닐하우스 온실을 만들어서 살았다. 흔히들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라'고 한다. 이처럼 말은 쉽고 실행은 어려운 일이 있을까.


drop-of-water-693412_1920.jpg


항상 생각의 생각을 많이 했는데, 오늘 그냥 내 마음과 감정으로 깨달아 버렸다. 나는 작곡을 배우고 싶다. 작곡을 배우고 싶어 한지는 10년쯤 지난 것 같다. 맘에 드는 선생님을 찾고도 한달을 망설이다 연락을 했다. 다음 달에 시작하기로 했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그 설렘이 소름 끼치고 두근거린다. 내가 막 살아있는 느낌이 난다. 나는 살아 있다.


나의 에너지는 새로운 것에 대한 그 설렘에 있었는데 항상 많은 이유와 사회의 생각에 절제 혹은 자제해야 할 것으로 여겼다. 자본주의적 시선에서 ‘배움’은 생존(?)에서 가장 멀고 높은 가치다. '배움'은 의미 있지만 그걸로 인해 다시 돈을 벌지 않을 경우 여유로운 자의 취미 정도로 여겨진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고 돈을 모아야 할 것 같아서 어느 선이 넘으면 망설여졌다. 이 모든 생각들이 결국 내가 정한 틀과 생각에 나를 가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소름끼침과 설레임으로 얻은 깨달음.


미디 작곡 수업을 하기로 하고 선생님은 참고될 만한 몇 곡을 보내줬고, 내가 좋아하는 곡을 보내달라고 했다. 무슨 곡을 보낼지 생각하고 들었던 음악들의 기억을 돌아보는 일에 너무 즐겁다. 원하는 시간에 수업을 할 수도 없었고, 왕복 2시간이 넘게 배우러 다녀야 하고, 가격도 비싸다. 내가 생각했던 모든 조건에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설레고 신난다. 이 에너지를 삶의 의지로 이해해도 될까?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아 놓치고 싶지 않다.


book-1836380_1920.jpg


시작도 안한 수업의 기대감으로 똑같은 일과 일상에 대한 감정이 손바닥 뒤집 듯 바뀐 걸 머리로는 이해가 어렵다. 살면서 설레는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여행을 가거나, 기대되는 일이 있으면 항상 설렜다. 하지만 이전엔 그 설렘을 맘껏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 할 일을 못하고 들떠있다 던지, 감정적인 사람으로 여겨지고, 쾌락에 지나지 않은 설렘으로 치부했다. ‘돈 쓰면서 노는데 즐겁지 않겠니?’라는 시니컬한 시선으로 절제해야 할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틀과 일상에서 뛰쳐나가지 못하는 내가 용기가 없는 찌질이 같아서 괴로웠다. 하지만 이제 깨달았다. 변화를 위해 물리적 환경을 바꾸는 행동만이 문제의 답이 아니라는 걸. 동시에 생각의 환경도 또한 뛰쳐나가야 한다. 환경 뿐만 아니라 생각도 내가 선택해 다시 꾸릴 수 있어야 변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 생각의 선택이, '힘내야지!'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라고 마음먹고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그걸 깨달아버렸다.


사회의 생각, 자본주의적 생각에서 벗어나 철학자들의 생각으로 생각의 환경을 만들고,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배치로 모든 변화가 가능하다는 걸 느꼈다. 다 철학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이다. 철학자들의 생각의 반복이고, 그 반복의 그 기초 내용이 있어 가능한 생각의 변화들이다. 하지만 또 알고 있는 것과 경험으로 느끼는 건 참 다른 일이라는 걸, 다시 경험으로 깨닫는다. 깨닫는다는 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앎과는 달라서 위험하기도 희망적이기도 하다.




신윤정

미술공예를 가르치고, 공예품을 만들고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음.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 방황하고 있고,

사업가와 아티스트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있음.

하지만 곧 방황 끝낼 것 같음.

철학흥신소에 와서 인생 조땐 대표적 예술가.

조땐 인생이 얼마나 행복한지 곧 체감할 예정.


0507-1447-5593

spantasticplace.co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김혜원 칼럼]남혐과 여혐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