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문환혁 칼럼]'로퍼'를 벗으며

감정쓰기 수업이 내게 준 것.

철학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씩씩한 삶으로 다가설 수 있으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s. spinoza


오늘 오랜만에 모임이 있었다. 머리를 하고 옷을 챙겨입고 양말과 시계를 신경써서 차고 예전에 즐겨신던 로퍼를 신었다. 발이 아파서 하루종일 혼났다. 예전에 스페인인가 어디꺼라고 한국 들어오기를 고대하다가 산 로퍼다. 소위말해 '인정'받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실상 이 로퍼는 내 발에 맞는 신발이 아니고 발등과 새끼발가락을 빨갛게 압박하는 몹쓸 신발이었다. "어우 이걸 어떻게 참고 신고다녔대?"라고 자문하며 저녁 내내 걸어다녔다.


거의 100일 동안의 글쓰기 수업이 끝났다. 매일 썼다. 이 수업을 통해 느낀바도 오늘 밤의 자문과 비슷하다. 타인의 욕망을 잘도 신고 그게 예쁜줄 알았던 나는 이 수업을 통해 내 자신의 고통을 조금 자각하게 되었다. 선함, 착함, 내 '역할'을 하는 것, '의무'를 다하는 것 이 모두는 내게 맞지 않는 구두 같은 것이었다. 모두 내게 그것 정말 멋지다고, 네게 잘 어울린다고 말하니 나는 그저 그런줄로만 알았다. 내가 갖고있는 알 수 없는 내면의 고통에 이름붙일 수 없었기에, 나는 밖으로는 마냥 미소를 띈채로 속으로 썩어가고 있었다.



비록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 수업을 통해 몇 가지 감정들을 분류해 낼 수 있었고, 그들의 이름을 알게되었다. 누군가가 불쌍해 보이면 그것이 동정인지 연민인지, 음식을 먹을 때면 미식욕을, 술을 마실때면 음주욕을 떠올린다. 사랑과 감사와 호감을 구분하려 노력한다.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더 많이 집중하게 되었고 그만큼 내 외부의 것들에 덜 신경쓰게 되었다. 욕망에 내가 씌웠던 누명을 벗겨주고보니 그것들을 따를 때에만 나는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던 그렇지 않던 간에, 내 안에 있는 감정과 욕망들을 쫓을 때 내 눈은 빛났고, 나는 며칠을 밤새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나중에 그것이 타인의 욕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난 해 보았다.'라는 후회없는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나는 욕망들을 악하다고, 더럽다고, 천박하다고, 육신의 것이라고 천시했으며 그들에게 누명을 씌웠다. 그래서 이제껏 너무 조금밖에 살아보지 못했다.


이제 알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최대한도로 내 삶이라고 하는 것을 살아보고자 한다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겠다. 내 안의 감정과 욕망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분류하고, 그것들이 '내 기준'에서 '기쁨'이라면 따라가 보는 수 밖에 없다. 내가 스피노자도 아니고 아직 못겪어본 감정들도 많이 있다. 앞으로도 분별에 실패해서 엉망진창으로 실수할 나날들도 있을것이다.


허나 이제 나는 조금쯤은 후회없는 삶의 비밀을 알 것 같다. 아니 그 삶의 비밀을 모르더라도 적어도 씩씩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 때 거기서 한 발 내딛어 보았다. 내 욕망에게 몸을 던져 보았다."



문환혁

- 철학흥신소 비밀 요원.

- 철학흥신소 간판 미남(남자가 많이 없음)

- 술과 음악, 책,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함.

- 하지만 술을 많이 마시면 위에 거 아무것도 못함. 음악을 못들음. 동물화되어서.

- 혼또니, 모태신앙. (하지만 교회를 안감)

- 철학흥신소에서 사탄화(라고 쓰고 주체화고 읽음) 진행 중.

- 끼어있는 삶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중.

-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 (현재 30대 중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김혜원칼럼]나의 아이돌, 이세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