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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찬칼럼]구겨진 종이, 울컥함

감정쓰기 수업을 끝내며

글쓰기 수업이 끝났다. 이번주까지 하면 70여편의 글을 쓴다.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이다. 다양한 주제로 글쓰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감정의 폭발이 일어나거나 한적은 없었던거 같다. 그건 내가 오랜 시간 이 문제들과 감정들을 안고 왔기 때문인거 같다. 어설프게나마 끌어안고, 뭐라 딱히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견뎌왔던 시간, 때로는 낭비했던 시간들이 있어서 그런거 같다.


오히려 여러 주제와 감정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 방황의 시간들을 정돈하는 기분이었다. 얼기설기 뭉쳐있던 감정을 스피노자의 세밀한 언어로 분리하고 가공해서 좀 더 명확하게 바라보는 작업을 한거 같다. 이름 붙이지 못했던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고,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잘못 이해하고 있던 감정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어설프게 정돈되어 있던 내면을 좀 더 세밀하게 정돈했다. 정돈한 후에 느끼는 약간의 안정감.


스피노자의 세밀한 언어의 감정보다 이 글쓰기 수업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더 큰 영향을 준거 같다.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 이해보다는 진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느낌.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나의 내면을 들어내고, 싸구려 동정이 아니라 스피노자가 말한 동정을 받을때 치유되는 느낌. 이것이 글쓰기 수업의 가장 큰 힘이었던거 같다. 나 역시도 살면서 누군가를 동정, 스피노자가 말한 동정을 타인에게 느낀건 거의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나보다 조금이라도 잘나가면 속으로 씨바 망해라하는 생각을 항상 했으니까. 겉으로는 웃으면서. 질투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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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전에 시민연극단에 하는 연극 수업 봄학기가 시작되었다. 작년에 듣고 이번이 두번째다. 첫 수업시간이라 가볍게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수업을 담당하는 연출님이 A4 수업 한장씩을 나눠주며, 최근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보라고 했다. 뭘 표현할까 하다가, 그때 한창 글쓰기 수업을 하는 중이라 그걸 표현했다. 종이를 왕창 구긴다음에 일부만 펴고 나머지는 구겨놨다. 글쓰기 수업이 나에게는 구겨져 있던 나의 내면을 펴는 과정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표현을 했다.


내 차례가 와서 종이를 들고 설명을 했다. 요즘 내 감정에 대한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는데, 나의 내면을 정돈하고 있다, 불라불라. 별 생각없이 말을 하다가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씨바. 갑자기 울컥하면서 울뻔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울컥함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런 적은 생전 처음이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참으며 설명을 끝냈다. 그때의 울컥함은 '나 졸라 힘들어' 이런 슬픔의 울컥함은 아니었다. 오래 묵혀왔던 숙제를 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치유와 기쁨, 이런 것들이 뭉쳐져 있는, 기쁨의 울컥함이었을거다. 나는 그렇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필진 소개
강성찬 감독
- 철학흥신소 수석 요원.
- IBM을 그만두고 퇴직금 탈탈 털어 세계일주를 다녀왔음.
- 그래서 요즘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계형 지식근로자가 되었음.
- 저서, '방황해도 괜찮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안 괜찮음)
- 텍스트보다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작가.
- 잠재력은 무궁무진한데, 계속 잠재해 있을 것 같음

- 사랑할 준비를 하고 있음(이라고 쓰고 여자친구 찾고 있음이라고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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