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지금 나에게 맞울림(공명)을 주는 모든 영화가 바로 좋은 영화다. 황진규
마흔까지 미혼으로 영화 하나만 바라보던 찬실이. 영화 피디로 일해왔던 그녀는 항상 함께 일 했던 감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다. 내 나이 서른 다섯. 찬실이와 겨우 다섯살 차이다. 그래서 초반에 찬실이가 느끼는 상실감 등을 보며 남 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만약에 나이 마흔에 내 평생의 전부라고 여겼던 것을 상실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찬실이처럼 내 인생을 전부 걸어 열정을 다한 일이 없었다. '나이 마흔에 회사에서 짤리게 된다면?' 뭐 이 정도 상상해 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별 거 아니었다. 지금 회사에서 짤려도 뭔가 또 밥벌이 할 일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찬실이가 아는 동생의 집에서 하는 가사도우미 일과 같은 것이겠지. 오직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 같은 거. 그것은 찬실이에게도 나에게도 기쁨을 쫓는 일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똑같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 밥벌이를 위해 하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냥 남들에게 직업을 얘기 했을 때 어떻게 비추어지느냐의 차이 일뿐. 모든 밥벌이는 고귀하다. 찬실이는 자신에게 돈을 빌려주겠다는 동생에게 당당히 가사도우미 자리를 요구한다. 자기는 돈을 벌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찬실이는 그 일도 정성스레 한다. 그런 그녀가 궁상맞거나 불쌍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응원을 해주고 싶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우리가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아는 것처럼 영화 내에서 찬실에게만 보이는 장국영 귀신이 나타나 그녀에게 친구가 되어준다. 장국영은 찬실이에게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라고 한다.
"아 내가 진짜 원하는 것, 내 욕망은 무엇일까?" 요즘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고 가장 답을 얻기 힘든 질문 이었는데 우연히 본 영화에서 이런 질문을 받게 되니 소름이 돋았다. 찬실이는 가사도우미를 하며 한 남자에게 끌린다. 가사도우미를 해주는 동생의 불어 과외선생님이다. 그는 찬실이보다 5살 연하다.
찬실이는 영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그에게 끌림을 느낀다. 물론 서로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다른 점을 알고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끌림을 따라 그 남자에게 직진 대쉬를 한다. 그리고 차였다. 차이고 돌아오던 날 그녀는 장국영 귀신에게 따진다. “잘 된다고 했잖아요!!” 장국영은 말한다. “제가 언제 잘된다고 했어요. 잘 지낸다고 했지.” “몽땅 가지고 싶다는 마음만 버리면 얼마든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외로운건 그냥 외로운거에요 사랑이 아니에요”
아, 나는 늘 연애를 할 때 상대의 모든 걸 다 가지고 싶어 했다. 일거수일투족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고 반대로 나에 대해서도 다 알려주려고 했다. 설명하는 관계의 연애만 했던 것이다. 나에게 철학을 가르쳐 주는 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말을 해야 아니?" 쌤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런 반감이 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그럼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아냐!"
결혼한 어느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기왕 할 결혼이면 베스트 프렌드랑 하는게 낫다" 같은 맥락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영화를 보며 그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아내와 티키타카 하면서도 친구같이 지내는 그 부부 모습이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몽땅 가지려고 하지 않는 친구같은 관계처럼 보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울컥했던 순간은 찬실이가 집주인 할머니가 쓴 시를 읽을 때 였다. 이제 갓 한글을 배워서 발음 나는대로 쓴 할머니의 시는 찬실이만 울린게 아니라 나까지 울컥하게 만들었다. 할머니라는 존재. 늙은 여성이라는 존재. 한글도 제대로 못 배웠을만큼 소수자로 태어나 일평생을 소수자로 살아왔던 할머니들.
영화를 보면서 할머니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우리를 더 작은 완전성에서 큰 완전성으로 만들어주는 따뜻한 존재. 나도 그렇게 따뜻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반드시 내 혈육의 할머니가 아니라도 좋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할머니.
아, 여기서 할머니가 해주는 명언이 하나 있다. "이 나이가 되니 하고싶은게 없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 대신 애써서 해" 그 날 하고 싶은 것만 하되, 애써서 한다는 그 대사에서 그 철학 쌤이 생각났다. 그 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글쓰기나 운동이나 수업이나. 대신 정말 애써서한다. 그 점이 처음에는 정말 이질감으로 느껴졌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서는 부러웠고, 현재는 그렇게 사는 삶 자체보다 무엇인가 욕망하는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럽다.
내가 최초에 욕망하던 삶은 돈걱정없이 사는 삶이었다. 그러니 내가 했던 일에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돈에 눈이 멀어 욕망의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잡기도 했었다. 지금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찾지 못했지만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내 욕망이 아니라는 것은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찬실이가 막판에 무언가 깨달들은 듯이 장국영에게 말한다. "목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그 모습에서 딱 돈에 목 말라서 미친듯이 돈을 벌고 싶다고 막연하게 갈망꿨던 내 과거가 생각났다. 동시에 사랑받고 싶어 발버둥치던 내 지난 모습도 생각났다. 돈이든 사랑이든 목 말라서 소금물을 들이키던 과거같다.
그래서 이제 급하게 내 욕망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조급하게 굴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지난 온 삶, 내가 지나 가고 있는 삶, 내가 지나갈 삶. 그 전체를 조망하면서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봐야겠다. 아직 갈길이 멀기에 조바심 내지 말고 월급주는 회사를 좀 더 다녀야겠다. 욕망을 찾는 일도 욕망을 실현하는 일도, 현실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현실을 딛고 일어나는 일이니까.
거창한 이야기는 다 필요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가 즐겁고 따뜻해서 좋았다. 찬실이 썸탈때 내가 설렜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자본주의에서 인문주의로 이사 중(존나 고된 이사임)
-강한 주체성과 낮은 공감능력이 매력임.
-철학흥신소에 와서 '사람'되어 가고 있음. (공감 및 교감 능력 배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