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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소 Nov 18. 2023

6. 뼈의 기억

몸이 땅에 스미고 나면

돌아왔습니다. 기자 준비를 했고, 덜컥 됐고,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난 후에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글밥은 여의도에서 나왔는데, 여의도는 주소와 좌표로만 띄워진 섬이었습니다. 나는 길을 잃고 빙글빙글 돌았고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니 간신히 먹고사는 일의 아수라도에서 탈출했습니다. 들어가는 일에 비해 나오는 일은 허탈할 정도로 간단했습니다. 결국 나를 붙잡은 것도 내 번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나는 서울특별시의 겨울이 유난히 춥다는 사실을 뼈로 알았는데, 뼈로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살로 말할 것 같으면, 살은 뼈보다 한 수 아래입니다. 살은 튕겨내고 뼈는 스밉니다. 그래서 뼈는 기억합니다. 뼈의 기억은 무의식에 깊게 스미니까, 죽은 몸이 땅에 스며들면 뼈밖에 남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뼈는 기억합니다.


모 작가는 글쓰기는 근육이다,라고 혹은 그 비슷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 글쓰기는 뼈를 하나씩 빼 쓰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근육은 결국 축축하고 따뜻해지니까, 근육의 기억은 용해되어 줄줄 흘러 버리니까. 글이 축축하고 따뜻해지기 전에, 뼈로 장렬히 싸운 사람으로 전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자 일을 세 달만 더 했다면, 하마터면 축축하고 따뜻해질 뻔했습니다. 엿이나 먹기를 바랍니다.


유난한 꿈을 자주 꿉니다. 이틀 전에는 원숭이와 보물찾기를 하고 있었는데, 배고프다고 칭얼대기에 크림빵을 줬습니다. 그걸 먹고 깜짝 놀라며 찌릿하다고 했습니다. 찌릿, 실험실에서 느꼈던 전기충격과 비슷한 찌릿. 그 정도로 맛있고 충격적이다. 사실 이것은 내가 아닌 내 뼈의 기억입니다.


잡설이 길었는데 나는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겨울이 가기 전에 뼈를 뽑아서, 좋은 이야기를 몇 편 써 볼 생각입니다.

추운데, 모두 건강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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