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실 서울은 천국에 꽤 가까운 도시다. 열렬히 믿어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서울은 통째로 뽑혀서 천국의 지역구로 발탁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서울에 교회가, 밤하늘을 수놓는 붉은 십자가가 많다는 이야기다. 나는 상경 후부터 지금까지 쭉 옥탑방에 살고 있는데, 새벽에 가끔 옥상에서 캔맥주를 홀짝대곤 한다. 그래 봤자 여긴 기껏 삼 층 짜리 옥탑이라 풍경은 시원찮고 제대로 보이는 건 맞은편 창경궁 담벼락에 자리한 작은 교회뿐이다. 그럼 나는 천국이나 구원 따위를 잠시 생각하다가, 금새 배가 고파져서 슬리퍼를 끌고 집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도착한 곳도 김밥 '천국'이다. 이십사 시 운영하는 이 곳은 정말로 나를 (허기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 치고 김밥천국을 모르는 자는 없다. 김밥천국은, 어쩌면 가장 성공적인 대중식당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이제 김밥천국은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다. 단순히 '분식집'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을 만큼 분식賁食 외의 메뉴가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밥천국이 '김밥 전문점' 은 더더욱 아닌 것 같은데, ( 손님들의 대개는 순두부찌개나 돈까스 따위를 먹는다.) 최근에는 정말 김밥만 파는 전문점들이 늘어나서 이들이야말로 '김밥 전문점'이라고 칭할 수 있게 된 것이 그 이유다. 어쨌든, 그래서 김밥천국은 그냥 김밥천국이다.
김밥천국이 유행하면서 자연스레 아류(?) 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김밥 파는 사람들, 김밥 클럽, 김밥마을, 김밥나라 등등, 이름은 다르지만 상기의 이유로 이들은 모두 '김밥천국'으로 표현된다. 덧붙여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간편하게 '김천'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무튼 많고 많은'김천' 들이 공유하는 이미지는 대개 비슷하다. '인스턴트' 에다, '대충' 때울 수 있고, '조미료 맛' 나는 음식을 판다. 그래서 김밥천국은 세간에서 말하는 맛집의 기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뭐 미우나 고우나 우리가 세련된 맛집보다 김밥천국을 더 자주 가는 것은 사실이다. 김밥천국은 이십사 시 여는 경우가 많고, 메뉴가 다양하고 가격이 저렴하며, 언제나 같은 맛을 제공한다. 이제부터 어째서 김밥인지, 어째서 천국인지, 그래서 어떻게 '김밥 천국' 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해 보자.
김밥의 기원에 대한 지리한 논쟁과는 별개로 한국서 김밥이 갖는 위상은 독특하다. 적어도 80년대까지만 해도 제대로 속을 채운 김밥은-직접 만들어 본 이라면 알겠지만- 손이 많이 가는, 나들이 음식이었다. 일상적으로 먹은 것은 아니었고 어쩌다가 한 번씩 먹을 수 있는 특식에 가깝다. 지금도 구식 뷔페를 가면 김밥이 있는 이유다. 여하튼 김밥이란 음식은 IMF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전성기를 맞이한다. 당시의 외식 문화 실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줄에 천 원 김밥'을 필두로 김밥천국이 급격히 성장하게 된 것이다. 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도 가격이지만, 김밥이 한국인에게 하여금 식사를 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음식, 즉 밀이 아닌, 엄마(주방 이모)가 차려 주는 '밥'이라는 점이 성공의 큰 요인이었다. 덤으로 호일에 싼 김밥은 들고 다니거나 아무데서나 먹기에도 편해서, 빚을 갚기 위해 고강도의 노동을 하는- 소위 말하는 밥 먹을 시간도 없는 사람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어쨌거나 김밥천국이 김밥 프랜차이즈의 원조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가게들이 현재도 많기 때문이고,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나름의 근거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당시 '김밥천국' 이 그 이름을 독자적인 상호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김밥' 은 그렇다 치고, 김밥천국이 상호명을 인정받지 못한 결정적 계기는 이름에 들어간 '천국' 때문이었다. 당시 특허청은 '천국'을 식별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천국' 이든 '마을' 이든 '나라' 든, 상호명에 포함되어 있다면 독자적인 상호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90년대의 이야기기는 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천국'과 '나라', '마을'모두 일개 사업자가 그 이름을 빌려서 왕 노릇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현재에는 '알바천국' 같은 상호로부터 알 수 있듯 모두 화랑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여하튼 상표권이 없던 시기에 상기의 종합 분식점, 즉 김밥천국의 아류들이 우후죽순 생겨 지금의 김밥천국 생태계를 이루게 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김밥천국의 역사를 잠시 제쳐 놓고 이제 음식을 살펴본다. 김밥천국은 소위 미식가라는 작자들이 음식 맛을 두고 투덜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새벽 네 시에 오천 원짜리 순두부가 뻘건 고추기름을 튀기며 내 앞에서 끓고 있다면, 거기에 막 부친 계란후라이가 나온다면 이미 평가의 의미가 없다. 그냥 입 다물고 먹는 편이 낫다. 오히려 나는 식사 후에 내민 터무니없이 적은 노동의 댓가가 죄송스러워져서, 잘 먹었다는 괜히 말을 길게 하고 나온다. 피곤과 매너리즘에 찌든 '이모' 들의 얼굴을 볼 때면 더 그렇다. 그래서 김밥천국의 미학은 꼭 생리적인 맛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앞서 말한 IMF에 관련된, 좀 더 문화적이고, 인引에 박힌, 보다 고약하고 고질적인 것에 있다.
김밥천국은 모두의 욕망을 싸잡아 충족시켜 준다. 수십 종의 음식이 메뉴판에 적혀 있는데, 아무리 골똘히 추리해 봐도 어떤 족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므라이스와 갈비탕, 라면, 볶음우동과 캘리포니아 롤과 치즈떡볶이가 혼재되어 있는 식이다. 정말이지, 외국인이 거긴 뭐 만드는 가게야?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다 만드는 데야, 라고밖엔 대답할 수 없게 된다. 메뉴가 이렇게 많지만 사실 잘 팔리는 메뉴만 잘 팔리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찬밥 신세다. 예를 들어 미역국이라거나, 계란찜, 캘리포니아 롤 따위를 시켜 먹는 이를 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잘 팔리는 것들은 보통 뜨겁고 맵고 자극적이다. 그렇다고 너무 익숙해서도 안 된다. 김치 우동이나 돌솥비빔밥같이, 늘 접하는 한국 가정식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 제육볶음 같은 평범한 음식들도, 이를테면, 길쭉한 그릇에 밥과 흥건한 고기반찬을 같이 담고 마지막으로 김가루를 조금 뿌려서, '덮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밥에 반찬을 올리는 이 단순한 행위는 밥 한 공기와 (야채가 반인) 제육볶음 세 젓가락을 '제육덮밥'이라는 요리로 변모시킨다. 실은 메뉴의 삼 분의 일은 뭐 이런 식이다. 이 정도 가격의 요리에 양질의 단백질을 사용하기란 쉽지 않고, 모든 메뉴는 탄수화물과 지방, 조미료로 만들어진다. 아무튼 내가 어떤 음식을 주문하든, 대개는 불평 없이 먹을 만한 음식이 나온다. 내가 주문한 것들은 낙지 돌솥밥과 치즈 김치볶음밥, 순두부찌개다. 일부러 붉은 것만 주문한 것은 아니다. 셋 모두 김밥천국에서 잘 나가는 메뉴다. 옥탑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풍경이 붉은 것처럼, 김밥천국의 밥은 붉다.
왼쪽 위는 맨 처음에 시킨 낙지 돌솥밥이다. 시판 고추장에 물엿과 물을 첨가해 만든, 묽은 고추장 소스는 자극적일 정도로 맵고 짜고 달다. (중국산인) 낙지는 의외로 큼직하고 양이 많다. 돌솥은 아주 뜨거워서 비비기도 전에 고추장 소스가 눌어붙는다. 돌솥은 한동안 굉장히 뜨거워서, 고추가 타서 나는 매캐한 향과 물엿스러운 끈적함이 밥에 섞여 쌀을 눌린다. 바삭한 쌀과 물컹하면서 질긴 낙지의 식감이 대비된다. 반면 야채는 아주 조금이고, 콩나물이나 숙주 따위는 들어가 있지 않다. 아주 조화롭고 익숙하며 질서 있는, '아는 맛'이다.
오른쪽 위의 치즈 김치볶음밥은 볶음밥에 체다 치즈와 모짜렐라 치즈를 얹어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준다. 볶음밥 역시 냉동을 널찍한 팬에 데워서 내는 것이다. 웍에서 데우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수고 덕분에 치즈 김치볶음밥은 내가 가는 김밥천국에서는 가장 비싼 메뉴(6500원) 중 하나다. 체다 치즈는 모짜렐라의 부족한 풍미를 보완해 주고, 모짜렐라는 체다의 물컹한 식감을 보완해 준다. (적고 보니 꼭 비꼬는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왼쪽 아래 순두부찌개는, 사진에 나오진 않았지만 계란후라이와 함께 나온다. 김밥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메뉴 중 하나이기도 하다. 펄펄 끓는 상태로 상에 낸다. 이때 고추기름이 사방팔방으로 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고춧가루와 조미료를 넣어 맵고 자극적인, 착착 붇는 맛이다. 순두부는 시판 제품을 비닐만 벗겨 그대로 쓰기 때문에 맨들맨들하고 보드랍다. 바지락과 양파와 파 등이 들어 있다. 여기에 순두부 대신 참치를 넣으면 참치찌개가 되고, 김치를 넣으면 김치찌개가 된다.
오른쪽 아래는 반찬이다. 라면이나 김밥만 시키면 김치와 단무지만 나오는 반면, 공깃밥이 딸려 나오는 본격적인 '식사'를 주문한다면 위와 같이 여러 반찬이 나온다. 반찬은 가게마다 다르게 낸다. 이곳의 기본은 김치와 오뎅이다. 거기에 보통 청포묵이 나오고, 나머지 한 종류는 매주 바뀌는 편이다. 그렇다 해도 보통은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데, 가지무침이나 밀가루 전, 운이 좋다면 분홍 소세지 등이 나온다. 이 날은 특이하게도 숙주 오이 냉채가 나왔다. 메인 요리가 붉은 것에 반찬은 그 보색을 이룬다. 푸른 야채를 챙겨 먹어야 한다는 한국인의 강박은 소위 밥반찬에 대한 강박이다. 가난한 노동자의 몇 안 되는 건강보조제인 비타민은 김밥천국의 반찬들과 같은 역할을 한다.
마치며
나는 김밥천국을 주로 아침에 간다. 그것도 실은 버릇처럼 간다. 아침이 지나면 다른 식당이 문을 여니 잘 가지 않게 된다. 김밥천국에서는, 배가 딱히 고프지 않더라도 주문해서 먹고 나온다. 물론 나뿐만이 아닌데, 아침 시간대에는 언제나 익숙한 얼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모'들은 얼굴만 보고,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늘 먹던 것을 내주기도 한다. 그렇게 노동자들이 김밥천국에서 모이는 것은, 어쩌면, 우리 아빠가 목숨 걸어 성취하고 내게 전해준 'IMF 정신'의 연장선이다. IMF 정신이랑 근검절약과 살아님기의 전략이다. 아침을 꼭 먹어야 하고, 그래야 하루 종일 일할 수 있고, 그래야 빚을 갚을 수 있다. 만복감이란 채워 놓으면 점차 소비되기 때문에 미리미리 채워두기 위해 주유하듯, 혹은 은행에 돈을 넣듯, 든든함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마다 김밥천국에 가는 것이다.
김밥천국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종류이든 간에 허기를 채울 수 있다. 단지 내가 시킨 음식들은 모두 공산품이며 하나같이 맵고 짜서 내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든다. 목이 콱 조이고 눈에서는 눈물이, 정수리에서는 땀이 흐른다. 모두들 그걸 먹고 큰 교훈을 얻어 출근길에 나선다. 든든히 챙겨 먹는 노동자들은 입을 다물고, 눈을 감고,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는 교훈이다. 내가 받는 시급은 방금 먹은 참치김밥과 라면보다 저렴해서 아침 9시부터 나를 주문하는 사람도 나에게 미안해해야 마땅한데, 그렇지 않고 되려 당당하게 나를 부린다. 뭐, 그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은 우리를 싸구려 대중식당에 데려간 적 없다. 외식을 할 때에는 무리해서라도 언제나 불판 위에서 구운 누군가의 살점을 뜯거나 씹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참 기뻐 보였다. 평생 당신들의 살점만 뜯겼을 테니 누군가의 살점을 뜯는 건, 그들에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의 살점을 뜯는 나를 보며 희망 비슷한 것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산업 사회 인간의 조건은 이렇게 대물림되어 학습된다. 그래서 나에게는 김밥천국이 집밥이다. 언제 먹어도 아주 편안하고 익숙한 맛이다. 그렇지 않은 맛-질서가 무너진-문화적 맛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나는 흰머리가 성성한 어떤 '한식 대가'가 TV에 나와 자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공장제 간장을 판매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하늘에 십자가를 메다는 것이 천국에 가는 올바른 방법이 되듯, 모든 것에 질서가 생기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