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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향기 그윽한 사유원 산책 할까요?

대구시 군위 <사유원> 카페, 가가빈빈의 모과에이드와 사유원 산책




<사유원>으로 들어서는 입구엔 사진작가인 준 초이의 작품, '반가사유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유원 입구 계단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도시로부터 따라온 잡념들을 어디에 두고 가야 하나 싶어서.

왠지 여기에선 회색빛 잡념이 아닌 푸르른 상념에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에 설레었다.





<사유원>은 대구시 군위군에 있는 수목원이다. 코비드 악몽이 한창이던 2021년 9월 군위군 창평리 야산에 조성되어 차분하게 개장했다. 대구시 외곽지역이라는 접근성의 난관과 고의 입장료가 걸림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장한 지 1년 만에 방문객이 10배 이상 증가했고 매스컴의 관심도 높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나를 마주하다, 내 안의 숲', '풍류의 산수', '공간 미학의 결정체'라고 표현될 만큼 마니아들로부터 사랑받는 사유원에 대한 선입견은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아닐까 라는 소심한 편견으로 시작했다.




사유원 건축물의 첫인상기묘하게 조화롭고 별하게 부드러운 감동을 전해준다.

콘크리트나 철제 등 거친 재료를 썼는데, 차갑게 느껴지지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다.




풍설기 천년은 '바람과 눈 비를 맞으며 어언 천년'이란 뜻으로 오랜 세월 풍상을 이겨냈다는 의미이다.

사유원의 의미를 담은 수령 300년 이상의 모과나무 108그루가 정겹게 모여 있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설립자가 수령 300년 모과나무가 일본으로 밀반출된다는 소식에 웃돈을 얹어 모과나무 네 그루를 사들인 것은 30년 전의 일이다. 그것이 사유원의 서사를 시작한 계기다. 이후에도 나무들이 밀반출되지 않도록 시가보다 높은 금액으로 모과 108그루를 사모았고 2006년 군위군에 부지를 만들어 수목원을 꿈꾸기 시작했다.




"사유원은 수목원이며 산지 정원이자 사색의 공간입니다. 계곡과 능선을 따라 무념산책을 합니다.

절기의 바람을 품은 산세, 거친 콘크리트와 붉은 철판의 그림자, 때때로 들려오는 풍류의 소리가 부릅니다.

사유원의 아름다움이 본래의 우리를 부릅니다. " - sayuwon-




목련길은 1시간 코스다.

문을 지나 비나리길을 따라 알바로 시자의 대표적 건축물인 소요헌과 소대를 만나는 길이다.

울창한 리기다 소나무숲을 지나 걷다 보면 시자가 좋아한다는 목련 나무가 나타난다. 숲 속을 천천히

걸어가면, '건축계의 거장 시자가 자연과 교감하여 만들어낸 빛과 어둠의 조화'를 맞닥뜨린다.




소대는 20.5m의 전망대다.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망루를 뜻하는 '미라도오'라는 이름을 가진 소대는 '새둥지 전망대'라는 뜻으로

소요헌을 전망하는 곳을 지어달라는 시자의 요청을 설립자가 받아들여 탄생되었다.




15도 기울어진, 높이 20.5m의 전망대는 사유원 곳곳에서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사방으로 완벽하게 탁 트인 소대 전망대에 오르면 사유원과 팔공산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신바람 난 산바람은 모자가 날아갈 만큼 힘도 좋아서 온몸의 스트레스가 날아갈 것 같다.

 계단 벽 구석마다 새들이 지푸라기로 지은 집들이 매달려 있어 완벽한 새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또 다른 매력적인 모습이다. 이렇게 멋진 전망을 가진 건축물이라니!

뜨거운 햇볕에 지친 발걸음도 이곳에선 그냥 망부석처럼 바람에 몸을 맡기고 더운 열기를 식히게 된다.




사유원에 오기 전부터 기대해마지 않았던 소요헌에 도착했다. 소요헌도 역시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본래 시자의 작품은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를 전시하기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에 지어질 피카소 박물관으로 설계된 아트 파빌리온이었다. 설계도는 완성되었으나 게르니카 유치에 실패하면서 건립 자체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설립자가 시자의 아트 파빌리온을 끈질긴 설득 끝에 설계 작업을 거쳐 사유원에 옮겨 지은 것이다.




소요헌의 안쪽 끝 위에는 지붕을 뚫고 내려오는 코르텐강의 철제 구조물이 보인다.

1937년 독일군 공습 때 게르니카 주민의 지붕을 뚫고 들어온 포탄을 상징하여 표현했다는 작품은

편협하고 무모한 폭력을 상징하고 있다. 전쟁의 폭력과 참상, 그 너머의 희망을 전달해 주는 작품이다.




소요헌은 장자의 '소요유'에서 이름을 가져왔으며 '자유롭게 거닐며 다니는 집'이라는 뜻이다.

세월의 바람과 햇볕과 공기를 품으며 변해가는 건축물의 빛깔은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소요유라는 이름처럼 건물 안을 자유롭게 거닐다 보면, 작품에 대한 경외감이 스며든다.




사유원에서는 누구나 길을 잃기 쉽다. 아니 길을 잃어야 뜻밖의 힐링 장소를 만날 수 있다.

목적지를 정하고 코스대로 걷다가도 예쁜 초록길에 정신을 놓아 자주 길을 잃게 마련이다.

비상호출을 불러야 할 만큼 급한 경우는 사유원 마감시간이 아니고는 필요할 것 같지 않다.




백일홍길은 2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다.

알바로 시자의 소대와 소요헌을 관람한 후, 쉼자리길을 따라 올라가면 '별유동천에 신선처럼 자리 잡은 백일홍 고목들'을 만날 수 있다. 백일홍은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면 피기 시작한다. 풍설기 천년이 보이는

벤치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걸으면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현암이 나타난다.




모과길은 3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사유원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코스다.

모과나무는 '4월에 분홍색 꽃을 피운 후 콩알만 한 열매였다가 한여름에 어른주먹만 한 크기'로 자란다.

풍설기 천년을 지나 전통정원인 유원을 따라 걸으면 '보현산의 기운'을 담은 내심낙원에 다다른다.

명정에선 '고요한 산책'을, 정향대에서는 '느티나무숲의 푸른 기운'을 한껏 즐겨볼 수 있다.  

산길을 걷는 동안 검은 철제 안내판이 나타난다. 설립자의 목소리를 담은 글들이 마음에 다가선다.




고송길은 4시간이 소요되는 코스다.

자태가 아름답고 '오래된 소나무는 사유원의 가장 소중한 나무'들 중 하나다.

고송길을 택한 관람객들은 '오당과 와사의 호젓한 외로움'과 고즈넉한 고독의 시간을 느껴볼 수 있다.

자연이 건축물과 얼마나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어우러지는지, 진한 감동이 천천히 다가온다.




'맑은 정원'이라는 뜻의 유원은 정자와 계곡, 작은 연못 등이 어우러진 전통 한국 정원이다.

유원에는 설립자가 평생 수집하여 모은 소나무, 매화나무, 회화나무 등이 정원 곳곳에 심겨 있다.

오후에 가야금 연주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시원한 대청마루에 앉아 느긋하게 쉬어갈 수 있어 좋다.




유원 내에 있는 아름다운 사유정은 옛 전통방식을 지켜 만든 잘 생긴 정자다.

정자 주변으로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꼿꼿이 자라고 있는 소나무의 자태가 압권이다.

어디에서 이리도 멋지고 우아한 소나무를 모셔다 심어 놓았는지 감탄이 나온다.




반들반들하게 윤기 나는 대청마루와 오롯이 자연을 담은 나무액자 같은 창문으로 바람이 춤을 춘다.

아직 사유원의 반도 보지 못했는데, 마음만 바쁘고 몸은 일어서지지 않는다. 한 잠자고 싶었던 곳.




사유원의 미덕은 풍요로운 자연이 오롯이 나를 위한 공간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작은 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마치 오늘의 나를 환영해 주는 마음이 들 만큼 편안하다.




설립자가 취미처럼 사서 모았다는 작은 석상들은 보기만 해도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그 집을 보면 그 주인의 인품과 취향이 느껴지듯이 설립자의 마음과 의지가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몽몽마방에서 마련한 런치 코스로 이탈리안 런치를 즐겼다.

타임 드레싱을 곁들인 참치 다타키, 치킨 슾, 바질 드레싱을 얹은 부라타 치즈 샐러드.

텃밭에서 키우는 유기농 채소로 요리한 음식이라 더 싱싱하고 더 맛있다.




요리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느껴지는 셰프님도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사유원의 작은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목소리에서 순수한 열정이 느껴졌다.




적절한 재료와 파스타의 식감이 어우러져 생크림 맛이 더 고소했던 크림 파스타.

런치코스가 포함된 입장료가 살며시 부담되기는 하지만, 여유자작 사유원을 즐기는 최고의 코스다.




카페 가가빈빈은 건축가 최욱의 작품이다.

멀리서 보아도 쾌적한 실내가 그려질 만큼 넓고 아늑하게 지어진 공간이 믿음직하다.




주변이 온통 초록이라 한낮의 뜨거운 햇볕만 아니라면, 산바람을 맞는 티타임도 좋다.

사유원을 돌아보며 가을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느끼게 만들었던 공간 중의 한 곳.




핸드드립 커피와 에스프레소, 콜드브루 등 다양한 커피 종류가 있어 취향껏 골라 마실 수 있다.

사유원의 모과나무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모과청을 넣어 만든 모과에이드가 꼭 마시고 싶었다.




디저트로 여름향기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레몬커스터드와 크림치즈로 만든 치즈케이크도 주문했다.

모과청으로 만든 모과 에이드는 새콤한 맛이 좋고 비타민C가 듬뿍 든 것 같아 피로감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팔공산 능선이 바라보이는 정상 주변에 자연 족욕탕을 만들어 놓았다.

물기를 닦을 수 있는 종이타월과 방석이 준비되어 있으니 누구나 족욕을 즐겨도 좋다.




산 위에 부는 바람이 알맞게 식혀놓은 찬 물은 적당히 시원해서 발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그 자리에 반드시 앉아야 제대로 보이는 풍경이 있다. 귀챦아도 신발을 벗고 발을 담가 볼 것.




사유원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내심낙원은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내심낙원은 '동양철학과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통해 찾아가는 마음의 정원'이다.

김익진 선생과 찰스매우스 신부의 우정을 기리기 위하여 김익진 선생의 가톨릭 번역서,

내심낙원에서 이름을 가져왔으며 2018년 6월 24일 채플 축복식을 가졌다고 한다.




내심낙원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소작농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가톨릭에 귀의해

고요하고 청빈한 삶을 살다가 가신 김익진 선생을 추모하는 작은 경당이다.




북쪽 봉우리에 있는 명정은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다.

사유원에서 두번째로 지어졌으며 사유원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를 지어달라는 요청과 달리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하로 파내려 가듯 설계한 건축물'이다. 수목원 관람 동선의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본 경관을 다시 되새김질하듯 성찰의 공간'으로 전망대를 구현했다고 한다.




"명정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공간으로 기다란 통로를 내려가다 보면

아름다운 풍경도 잊게 되고 마당에 다다르면 오로지 하늘만 보게 된다. 앞으로 흐르는 물은 망각의

바다이며 그 건너편에는 명부의 세계를 상징하는 붉은 벽이 드리워져 있다."


 

 

사유원의 건축물에는 공통점이 있다. 건축 안으로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을 실컷 보여준다는 것.

때로는 익숙한 선과 면의 조화가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낯설고 투박한 면과 선들을 보여준다.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자연 속의 건축물들이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사담은 '깊은 생각을 담은 연못'으로 건축가 승효상 작가의 작품이다.

작은 연못을 바라보는 객석처럼 꾸며진 벤치가 유명한 공연장처럼 느껴진다.

사유원에 사는 동물들이 아침 일찍 물을 마시러 오는 곳이라고 하니 정겹다.




'오묘하고 아름다운 집'이라는 의미를 담은 현암에 도착했다.

건축가 승효상 작가의 작품으로 사유원의 건물 중 첫 번째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산, 하늘, 구름, 바람, 햇볕 그리고 맑은 공기가 그곳을 모두 채우고 있었다.




오른편에는 새들을 위한 건축물이자 새들을 위한 수도원, 조사가 있다.

새들의 특성상 새들이 선호하는 높이에 따라 머물 수 있도록 둥지를 수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암의 옥상, 정상에는 멀리 창평지와 사유원 전체의 산세를 바라볼 수 있다.

 산자락의 물결이 파도처럼 때로는 온유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움직이는 풍광을 보여준다.




사유원의 가장 외딴 장소에서 만나는 와사는 다섯 개의 연못, 오당에 있다.

붉은빛으로 녹슬어 더 인상적인 코르텐강 철제 박스가 세 개의 연못을 가로지른다.




'깨달음이 있는 연못'이라는 뜻의 오당은 '수목원 아래쪽 가파른 계곡에 조성된 5개의 연못'이다.

붉게 산화되어 더욱 인상적인 코르텐강 철제 박스를 지나는 동안 콩콩 작은 울림을 전달한다.




붉은 철제건물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 초록의 자연이 환상적인 문양을 만들어낸 것이나,

그 구멍으로 들어오는 강렬한 여름 햇볕의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무늬의 향연이나,

그 터널을 지나는 동안, 뜨거운 여름날의 멋진 그림으로 기억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당은 관람객이 명상하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계곡의 낙차를 이용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와사는 5개의 연못을 연결하기 위해 '누워있는 수도원'이란 발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사유원은 모두 예약제로 운영 중. 관람 예약은 방문일 하루 전, 식사 포함 예약은 방문일 이틀 전까지

해야 한다. 하루 입장 인원을 350명으로 제한하고 있고 현재는 대구시로 편입되어

대구 가볼 만한 곳으로 주목받고 있어 미리 여유 있게 예약하는 것이 좋다.




하루 입장 350명 제한에는 관람객과 건축물에 대한 배려가 숨어있다.

사유원의 드넓은 숲을 걷는 동안 타인과 마주칠 확률을 최소화시킨 숫자가 아닐까.

실제로 느린 산책을 방해받는다는 느낌은 사유원,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http://www.sayuwon.com/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76

문의 : 054-383-1278

운영시간 : 09:00-17:00

매주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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