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태어나 세 번 폼나고 싶다
폼 나고 싶다.
내 인생에서 꼭! 폼이 란게 좀 났으면... 싶었던 몇몇 순간들이 있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 시절 00분식점 안에서다.
나는 여고를 나왔고 우리 학교 아주 가까이에는 남고가 있었다.
여고와 남고라니..
(오랜만에 꺼내보는 "여고 & 남고" 이 두 단어를 마주하는 지금
내 눈 앞에 갑자기 풋풋한 설렘과 묘한 케미 입자들이 퐁퐁 터지며 핑크빛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해묵은 기억 속에 묻어둔 그 어떤 것들이 쏟아져 나오려고 아우성이다
내 속에 이야기 보따리가 셀프로 멍석을 깔고 있으니 추억담이 흘러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다)
평일에는 주로 도시락, 급식을 먹었지만 토요일이 되면 엄마들은 도시락 대신 돈을 줬다
우리 엄마도 적당한 점심값을 쥐어주며 알아서 사 먹으라고 하셨다
우리 학교와 그 남고 사이에는 00분식점이 있었다
대충 오전 수업이 끝나고... 보충수업 전 신나는 점심시간.
우리 점심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00분식을 가야 하는 이유를 하나씩 꺼내어 놓는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A: 라면 먹을래?
B: 아~ 그럼 00 분식?
C: 근데 좀 멀지 않나?
D: 날씨도 좋은데 좀 걷자~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 없어지는 기분이야
C: 하긴~ 오늘 날씨 짱짱! 야 나가자!
우리 학교 안에는 큰~~~~~ 매점이 었어서 라면이고 뭐고 없는 게 없다.
심지어 호박전까지 있었으니까.
그리고 학교 코 앞에는 어마어마하게 맛있~~~~는 도넛 집이 있다.
이 둘의 매리트를 제치고, 좀 걷기 멀다 싶은 분식집까지 가려면 약간의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때 C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A,B의 제안에 덥석 모두 오케이 해버리면 대놓고
' 00분식에 가서 남고생들과 썸 타고 싶어'라고 말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한 번쯤 제동을 걸고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우리의 콧대를 지키는 시간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화창한 날씨는 개뿔. 폭풍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토요일엔 어떻게든 00분식을 갔을 것이다
C: 근데 좀 멀지 않나?
D: 날씨도 꾸리꾸리한데 라면이나 먹자
대충 이런 시나리오. 한마디로 답정너!이다.
아! 그리고 C 역할에는 최대한 쿨한 말투가 필요하다.
"야 그냥 귀찮으니까 아무거나 빨리 결정하자" 하는 식의 말투로 마무리해줘야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달까.
사실은 "야 그냥 귀찮으니까 아무거나 빨리 결정하자 (00 분식으로)"이지만.
우리는 이렇게 투트랩으로 속마음을 감춘 채, 여고생의 고고함을 나름 지켰다
우리는 각자의 거울로 힐끗힐끗 미모를 체크한 후 00 분식으로 부끄부끄한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부끄러움이 내 성격의 8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타입이라
00 분식으로 다가갈수록 얼굴이 빨개지는 느낌이 나고 가슴 둥둥거림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선생님이 제발 그만 까불어라고 할 정도로 나의 필드(여자로 가득 찬)에서는 까불기 선수인데
00 분식 앞에서는 어색 대마왕 머저리 느낌이 자각되어 미칠 노릇이었다.
발걸음마저 어색한 그 상황에서는 말을 하면 문장 앞뒷 말이 안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드디어 00 분식집 입성!!!
먼저 온 우리 학교 애들과 먼저 온 남고 아이들이 있다.
여자 교복 센서가 관자놀이, 뒤통수에도 달렸는지 라면을 먹던 남고 아이들의 시선이
기가 막히게 일제히 우리를 향해 꽂힌다.
그 시선은 우리 뒤를 이어 들어오는 다른 여학생들한테도 마찬가지.
반대로 묵묵히 라면 그릇에 코 박고 먹던 우리 학교 아이들도
남고생들만 들어오면 똑같은 센서의 위엄을 보여준다.
사실 그 공간의 모두는 라면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들어간 라면이 코로 도로 나오는지 알지 못했을 거다.
분식집 사장님만 최적의 입지조건을 차지한 탓에 라면을 아무렇게나 끓여도
사춘기 손님들이 버글버글했으니 땡잡았지.
여하튼 라면 맛보다 은근하게 오가는 눈빛들이 더 예민했던 그곳에서
나는 폼 나고 싶었다.
최대한 많은 남자들의 시선을 받고, 잘생긴 아이들과는 몇 번 눈빛도 마주쳐가며 씩...
모두들 말은 하지 않지만 "이 구역 주인공은 너야 너!"라고 말해주는 눈빛 레이저를 받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라면을 여느 여고생들이 먹는 것처럼 숟가락에 얹어 후후 불어 식혀 먹는 방법 대신
그냥 후루룩 면치기 기술을 필살기로 꺼내보았다.
왜냐면 지난 주말에 성당에서 그 남고를 다니던 내 친구가 한 말.
"여자애들은 왜 숟가락에 라면을 덜어 먹는 거야?"
"그거 되게 꼴 보기 싫은데 00 분식 가면 애들 다 그렇게 먹더라?!"
"차라리 후루룩 먹는 게 내숭 없어 보이고 좋아"라며 의도치 않은 천기누설 했기 때문이다.
나는 폼 나는 쿨녀로 등극하기 위해 면치기를 후루룩후루룩 하고 주변 시선을 느껴보았다.
아...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대신 아무 필살기가 없던 내 친구가 주인공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 대한 묘한 경쟁심이 있었는데 그 시작은 중학교 때부터이다.
우리는 한 달을 간격으로 나는 서울에서, 그녀는 대구에서 전학 온 동병상련 친구였다.
전교생의 폭발 같은 관심 속에서 우리는 비공식적으로 암암리에 저울질되고 있었는데
사실 초반에는 나의 인기가 우세한 듯했으나
급작스럽게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끼고, 급작스럽게 식욕이 늘어 살이 찌고
급작스럽게 여드름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급작스럽게 어깨가 넓어지면서
다른 건 몰라도 미모 경쟁에서는 밀리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내 친구는
급작스럽게 예뻐지고 급작스럽게 더 예뻐져 넘사벽 얼짱이 되었다
성격이 무딘 편이었고, 친구들과 장난치고 노는 게 최고 재미있었던 나에게
미모의 현실 간극보다는 대미지가 덜 했던 게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00분식점. 그 공식적인 자리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고 싶지 않았다.
시선의 쏠림이 내 예상과 반복되어 빗나가자
아 이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구나... 깨달았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사춘기의 미묘한 감수성
인정받고 싶은 마음
돋보이고 싶은 마음 등이 뒤섞인 그때
나는 좀 멋져 보이고 싶었다
두 번째 그 감정은 느낀 건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에 입학했을 때이다
대학 교정을 거니는 매 순간순간.
00 분식집에서 로망 했던 것보다 더 폭발적인 욕망으로 나는 폼나 보이고 싶었다.
그 감정의 맥락은 00분식집과 동일하니 길게 얘기하지는 않겠다.
그저 예뻐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하지만 고등학교 때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술'이라는 복병을 만나게 되어 안 그래도 찐 살이 더 쪘던 것이다.
매일 치킨을 먹고
양념 탕수육을 먹고
어떤 날은 핫도그를 하루에 세 개를 먹었다
세 개를 먹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라고 말해도 될 만큼 무아지경 속에서
지갑을 마구 열어 재껴 음식을 사서 배 속에 넣었다
내 뷰티 센스 또한 끝내줬다
끝나지 않은 사춘기 열병은 아직 피부 곳곳에 불그스레 남아 있었고
그 흔적을 감추기 위해 달걀귀신 스타일로 메이크업을 두텁게 하고 다녔던 것이다
술이라도 마시는 날에는 2,3,4차로 갈수록 더욱더 하얀 피부의 소유자가 되어 갔는데
그건 술을 못 마셔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게 아니라
붉은 얼굴을 감추기 위해 페인트 버금가는 커버력을 지닌 '시세이도' 컨실러를 덧칠? 아니 떡칠해서이다
그때 느꼈다
폼 나고 싶은 마음 맨 위에는 인정받고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 밑 저~ 아래에는 2% 부족한 것 같은 나, 자신감 없는 내 모습,
초라한 내 모습이 넓게 깔려 있었다는 걸 말이다.
진짜 폼 나는 친구들을 보면
잘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예를 들면
3개월 내내 새벽 6시부터 운동하기 (남친이 가서 따라간 거지만)
6시 이후로 금식 (오로지 금식. 금주는 실패) 등등을 통해 6kg을 감량한 거나
피부과에 다니며 치료발 제대로 받아 중딩시절 밝은 혈색을 회복 같은 것 같은.
그런 식으로 낮은 자존감의 흔적들을 지워나가다 보니
멋지고 싶다, 폼나고 싶다 뭐 굳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근 몇 년 사이 오래간만에 멋지고 싶다! 폼나고 싶다! 고 느낀 일생일대의 사건이 생겼다.
임신을 했을 때
그리고 전업주부로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이 그렇다
어젯밤 갑자게 "폼나는 육아"라는 말이 떠 올라
나도 모르게 아기의 화이트보드 판에 그 다섯 자를 적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핫도그를 세 개째 사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처럼 제삼자의 눈으로)
아... 나는 지금 폼 나고 싶구나...
일을 하며 결혼 전에는 커리어우먼, 골드미스 왠지 멋져 보이는 워딩의 울타리 안에서 살았다
아기를 낳은 후에도 다 양보하고 '워킹맘'이라는 말이 일하는 걸 좋아하는 내 자존감의 끈을
붙잡아 주고 있었는데
미국에 와서, 전업주부가 되면서 내가 한 번도 상상치 못한 생활을 맞이 하게 되면서
나 어쩌면 조금 약해진 것 같다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 키우고, 집안 단속하는 것.
말로는 아름다운 일이다. 숭고한 일이다. 또 다른 직업이다 할 수 있겠으나
솔직히 내 인생에서 가치를 두고 산 적이 없었기에
난데없이 주어진 직업 변경에 당황스럽다
하는 일은 정말 많은데 이게 티가 안나고 (우리엄마의 18번 멘트였음. 이해 못했음)
2살배기 비위 맞춰 주는게 또라이 상사 맞추는 것 보다 더 어렵고
24시간 전담 케어라니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남편이 올 때 되면 밥을 해야 되는데 이 사람이 7시에 올지 8시에 올지 9시에 올지
예측을 할 수 없으니 바쁜 사람한테 밥 타령 하는 게 싫어서 혼자 예지력을 발휘해 보지만
예상과 빗나가면 분노가 극에 달한다는 부작용까지 감수해야 한다
아... 이렇게 폼 안나는 일이 있을까. 실속 없는 일이 있을까.. 싶어 한동안 힘들었다
물론 지금도 극복 중...
나의 난데 없는 미국행. 강제 전업주부로의 인사이동은
평생을 영업부서에 있다가 갑자기 기술개발실로 발령받은 것 같은 느낌?
연예인이 갑자기 강제 은퇴당하고 카페 차린 느낌 이랄까.
어쨌든 낯설고 내가 가치를 두던 것과 전혀 다른 판이라는 얘기다
위기는 기회. 기회는 위기라는데
이런 '폼'에 대한 '욕망'은 '결핍'에서 시작되지만 결국에는 '극복'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위기와 기회처럼 결핍과 성장은 붙어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위의 세 줄은 뭘 해야 할지, 뭐에 가치를 둬야 할지 혼란스러운 지금
이 상황 조차 폼나고 싶어 멋지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아닌게 아니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고
집안일 하나하나 애정을 가지려고 노력하니 살림이 조~금 재미있어 진다
아기랑 놀아봤자 고작 몇년이라고 생각하니 또 소중해지기도 한다
(참.. 철없는 주부네요. 갑자기 고백 ㅋㅋ)
여튼 이제 나는 폼나는 육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질때까지
폼나는 육아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나는 늘 이렇게 폼이 나고 싶다.
역시 나는 폼생폼사 세대~
나... 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