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유퀴즈에 캐스팅 된다면

시청률 100%에 도전합니다.

by 안경

죽고 나서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무지개 다리처럼 찬란한 빛을 지나니 도착 먼저 떠나셨던 부모님도 만나고, 똘똘이도 만나고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들 모두 만났습니다. 언젠가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아저씨, 편의점에서 내 앞에 계산했던 학생까지도 모두 알아볼 수 있었어요. 나보다 먼저 오셨었구나.. 뒤늦게 알아차리기도 했고요.

모든 이들은 살아 생전 모습 그대로 였고, 대신에 표정은 훨씬 밝고 피부도 투명하게 빛이 났습니다.

모두 예쁘고 모두 기분 좋았습니다.


생전의 모든 인연들이 다가와서 저를 반겨주더니 저를 어떤 주인공 자리에 앉혀주었습니다.

마치 유퀴즈 방송 프로그램의 게스트처럼 제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 앉았고, 저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질문에 답하며 지난 생 살아 온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 냈습니다.


라는 상상이 유퀴즈 최대훈 배우편을 보면서 스쳤습니다.

최대훈 배우 대신 내가 그 자리에, 그리고 방송 촬영이 아니라 천국에서의 토크쇼.


그때 저의 상상은 두 가지 모습으로 갈라졌습니다.


하나는 "내가 00을 하자마자 대박이 나더라고요. 너무 좋았어요"로 끝나는 이야기와

"00를 시작했는데 처음에 너무 힘든거예요. 그런데~" 라고 말하는 제 모습었습니다.


첫 번째 대박으로 시작해 대박으로 끝난 이야기를 들려주자 사람들은 귀를 파고 하품을 하고 슬슬 자리를 떠나고 있었습니다. 저도 뭐 더 할 얘기가 없어서 마지막으로 자리를 뜨던 부모님과 그 자리를 함께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도착할 사망자를 기다리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으면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두 번째 우여곡절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의 느낀바를 생생하게 풀어내는 모습에서는 주변 모두가 더 초롱한 눈빛을 하고 제 이야기에 울고 웃어주었습니다. 저 또한 더 신이나서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잠시 그때를 회상하느라 조용히 이야기를 멈추기도 했고요. 너무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유쾌한 토크쇼는 성황리에 직전 죽음의 이야기로 끝이 났고 사람들은 박수도 쳐주고 포옹도 해주었어요. 마지막으로 부모님이 다가와서 수고했다고 잘 살았다고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답니다. 서러운 마음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뿌듯함과 환희로 토크쇼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올 손님을 위해 제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나중에 내 두 아이들을 만났을 때 아이들에게서도 재밌는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너무너무 기대가 되더라고요.


천국에서의 유퀴즈

두 모습의 차이는 지금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박이 나지 않을 것 같아 무언가를 시도하기 망설이는 삶.

수십수천명이 죽고 태어나는 하루이고, 수천수만개의 나뭇잎이 지고 나는 하루이고, 옆집에 누가 죽고 윗집에 누가 태어나는 하루인데 그냥 살아가는 하루만 싸다(배출하다)가 떠나는 삶.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번째 같은 인생을 살다가 천국 유퀴즈 토크쇼를 말아먹으면 어떡하지.

그렇다면 조금 서글플 것 같았습니다.


대단한 에피소드도 없는 오늘 아침, 이런 생각이 막 스쳐가는데 참 신기하고 감사한 하루입니다.


모든 우여곡절을 선물처럼 받아들이고 나만의 항해에서 이야기 보따리 가득 채워 하늘로 올라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너무 벅차고 아름다워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매일 10시 15분에 글쓰기 3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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