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완전한 침묵과 고독 속에서도 기쁨을 느끼는 자신만의 동굴을 가지고 있는가? 자신이 무엇에 몰입했을 때 진정으로 기쁨을 느끼는지 알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을 망설이거나 대답할 수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나를 가장 나답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나만이 창조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보길 바란다. 분명 사느라 바빠서, 아이들 키우느라 시간이 없어서 동굴이니 나다움의 발견이니 하는 것은 사치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나도 불과 몇 년 전까지 그랬으니까.
사실 욕망은 사치 맞았다. 젊은 날에는 부모의 기대감을 짊어지고 어른들이 가라고 하는 그 길을 쫓아가느라, 부모가 되고서는 의무감을 짊어지고 앞만 보고 달리느라 뒤를 돌아볼 새가 없었다. 분명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달리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으나 ‘진정한 나’는 아니었다. 내 취향도 아닌 마라톤복을 입고 내가 편안하게 느끼지 않는 길 위에서 어쩔 수 없이 뛰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원인 모를 우울증에 시달렸고 심리적 공허감을 관계 속에서 채우고자 애를 썼다. 항상 친구들을 찾았고 그 속에서 위안을 받는다고 착각했다. 관계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에 휴대폰 대신 책을 집어 들었다. 학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에 책을 읽었고, 주말에 모임에 나가는 대신 차라리 혼자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다.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그들의 인정을 요구하느라, 매번 이불 킥을 할 만한 말들을 쏟아내느라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오롯이 ‘고요한 나’와 ‘고요한 책’이 만날 뿐이었다.
그렇게 몇 해를 보냈다. 불쑥 외로움이 찾아오면 또다시 습관처럼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무방비 상태에 있는 친구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독서로 가난한 마음이 채워지자 그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오히려 기꺼이 친구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주는 여유까지 생겼다. 그렇게 성숙해진 나 자신이 얼마나 대견했는지.
그러니 고독의 동굴은 꼭 필요하다. 그동안 가면을 쓴 채 마음의 창밖으로만 향해있던 시선을 돌려 민낯의 내가 마음의 창 안에 있는 내면의 나를 바라봐야 한다. 내면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나의 관심과 빛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곳, 눌러왔던 욕망과 내가 몰랐던 가능성이 선택받기를 몸부림치는 곳, 즉 나를 나답게 해주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곳으로 가서 내가 직접 그것을 찾아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참 신기하게도 외면의 나와 타인과의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하고, 내면의 나와 심리적으로 가까워지자 우울증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치유의 독서는 치유의 글쓰기로 이어졌다. 창작에 대해 어디에서 배워본 적도 없는 내가 노트에 무엇인가를 계속 끄적였다. 철학자 샤를 페펭이 ‘성장의 기쁨’은 질투라는 바이러스에 대해 백신이 되어주고 슬픔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다고 했던가. 정말로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일이 줄어들었다. 자기 연민에 빠져 슬퍼하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꼼짝 않고 몇 시간씩 앉아 글을 완성해 갈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힘든 줄도 몰랐다. 백신뿐만 아니라 영양주사까지 맞은 기분이랄까? 그렇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그 무엇을 낚은 것이다.
나만의 글쓰기 동굴로 파고 들어가야 하는 이유
영화 <연인>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에서 한 말은 내가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배우고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부추겼다.
"굴속에, 굴 깊숙한 곳에, 거의 완전한 고독 속에 자리 잡기. 그리고 글쓰기만이 구원을 주리라는 것을 깨닫기. 책에 대해 그 어떤 주제도 없이, 그 어떤 생각도 없이 있기. 그것은 책 앞에서 자기 스스로를 발견하기, 스스로를 되찾기다."
곧바로 책 쓰기 프로그램을 알아보았다. 나만의 동굴로 파고들고 싶은 의욕은 넘쳤으나 방법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열의가 금세 시들해질까 하는 우려도 한몫했다. 책 쓰기 프로그램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적게는 몇십만 원부터 많게는 천만 원을 훌쩍 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우선 일일 특강을 신청해서 들어보았다. 두 곳은 수강료도 너무 비싼 데다가 상업적인 냄새가 풀풀 풍겨서 내가 원하던 방향과 맞지 않았다. 돈보다는 순수하게 글쓰기에 대한 수업을 듣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첫 책 쓰기 모임으로 택한 곳이 ‘글 Ego 자아실현적 책 쓰기 프로젝트’이다. 수강료도 저렴한 편이고, 함께 글을 쓰는 동기들이 있기에 왠지 자극이 될 것 같았다. 한 주에 한 번 총 6주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글쓰기에 대한 대략적인 이론은 2시간씩 소설가 성해나 님께 들을 수 있었다. 결국 글은 혼자서 인내의 시간과 엉덩이의 힘으로 쓰는 일이지만 매주 과제를 제출하는 의무감과 작가님의 따뜻한 피드백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책은 POD 방식으로 출판되었다. 이는 책 구매자의 주문이 있을 때만 책을 제작하는 맞춤형 소량 출판 시스템을 말한다. 10명의 동기의 설익은 글이 <치유 행진곡>이라는 제목 하에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처음에는 동기들이 모두 20대 청춘들이어서 어색했었다. 하지만 첫 책을 쓰겠다는 목적과 진로에 대한 고민은 비슷했기에 나이와 상관없이 용기와 열정을 깨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글 Ego에서 나만의 동굴을 파기 위해 곡괭이질을 조금 했다면 본격적으로 굴을 더 깊게 파기 위해 굴삭기가 필요했다. 다시 말해서 좀 더 숙련되고 전문적인 책 쓰기 프로그램이 필요했던 것이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했던가. 우연히 네이버 카페 첫 화면에 뜬 글쓰기 카페에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들어가 보게 되었다. 상업적인 냄새는 전혀 없었다. 글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 감돌뿐. “아무 스펙도 없는 평범한 교사인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될까요?” 바로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다. “물론이죠.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17기 회원이 되었다.
심리학자 융은 인간의 삶은 결국 자아(의식의 나)가 자기(무의식의 나)를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의 책 쓰기 과정이 바로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였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철학적 질문에 매일 리포트를 써나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무엇에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향후 5년 안에 하고 싶은 욕망은?, 남은 삶이 딱 일 년이 주어졌다면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나의 강점은 무엇인가? 등등. 과제 하나를 하기 위해 이 책 저 책을 읽고 날을 새 가며 온전히 나를 주제로 한 글쓰기에 몰입했다. 관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내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누구죠? 먼저 나에게 대답을 해주세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일어날게요. 그러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말해 줄 때까지 나는 여기서 꼼짝 하지 않을 거예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대사다. 어쩜 그동안 나도 앨리스처럼 바라 왔던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누가 대신 가르쳐주기를, 누가 와서 일으켜주기를. 그러나 내가 스스로 나 자신을 공부하고 파헤치고 그 결과를 글로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나는 자유와 자신감을 느꼈다. 넘어져 있던 내가 벌떡 일어나 “나,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