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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돌아보며 배운 교훈

《증권맨 일기》 11편

by 주알남

쉼 없이 흔들린 시간

여의도에서 보낸 10년은 고요한 적이 없었습니다.
시장은 매일 움직였고, 숫자는 늘 요동쳤습니다.
한순간의 뉴스가 하루를 바꿨고,
정책의 방향이 한 달을 흔들었습니다.

그 속에서 증권맨의 하루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락장에서는 고객의 전화를 피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고,
상승장에서는 모든 것이 내 덕인 듯 착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장은 늘 사람의 감정을 시험했고,
저는 그 파도 위에서 조금씩 성장해갔습니다.


시장이 가르쳐준 것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공포를 배웠습니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시장에는 “내일이 올까” 하는 불안이 짙게 깔렸습니다.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시장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손실이 아니라 ‘불확실성’이라는 걸.

2015년 중국 증시 폭락 때는 무력감을 배웠습니다.
아무리 리포트를 써도,
아무리 지표를 분석해도 시장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논리와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느꼈습니다.

2020년 코로나 쇼크는 변화의 상징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멈췄던 시기,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에 뛰어들었고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새로운 역사적 장면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은 공포 속에서도 매수 버튼을 눌렀고,
그 용기가 시장의 무게 중심을 바꾸었습니다.

2021년 공모주 광풍은 집단심리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두가 청약을 외치고,
“따상”이 일상어가 되던 시절.
그 열기 뒤에는 탐욕이 있었고,
그 탐욕은 결국 조정이라는 냉정한 현실로 되돌아왔습니다.


여의도 안에서 본 사람들

여의도의 트레이딩룸은 언제나 뜨거웠습니다.
모니터 수십 대가 불을 밝히고,
수백 개의 종목이 실시간으로 뛰어다녔습니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성과 압박은 늘 있었고,
보너스 시즌이 다가오면 사무실의 공기도 달라졌습니다.
한 사람의 성과가 연봉을, 자리의 무게를,
때로는 인생의 방향까지 결정했습니다.
누군가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떠났고,
남은 사람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다시 경쟁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도 인간적인 온기가 있었습니다.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오늘은 괜찮겠죠”라고 위로하던 동료,
힘든 장에서 서로를 격려하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여의도라는 이름의 또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고객에게서 배운 진짜 시장

10년 동안 가장 많이 배운 건 고객에게서였습니다.
고객의 목소리 속에는 시장의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오를까요?”
“이제 다 끝난 건가요?”

그 질문들 속에는 숫자보다 더 깊은 감정이 있었습니다.
희망, 두려움, 후회,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투자는 결국 심리의 싸움이라는 걸 체감했습니다.

어떤 고객은 수익보다 신뢰를 더 중요하게 여겼고,
어떤 고객은 손실보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남겼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증권맨도 결국 사람이다

증권사에 다닌다고 해서 항상 냉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 역시 제 돈을 넣고, 제 감정에 흔들렸습니다.
차트를 보고도, 리포트를 써놓고도
정작 내 계좌에서는 그 원칙을 지키지 못한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지식보다 중요한 건 멘탈이고,
정보보다 강한 건 원칙이라는 것을.

시장은 늘 유혹합니다.
“지금 사면 늦지 않다.”
“이번에는 다르다.”
그 말에 넘어가는 순간,
10년의 경험도 소용없다는 걸 너무 잘 압니다.


결국 남은 한 줄

10년을 돌아보면 수많은 순간이 떠오릅니다.
성과를 자랑하던 날,
고객의 한숨에 마음이 무겁던 날,
밤새 리포트를 고치던 새벽.
그 모든 시간이 모여 하나의 문장으로 남았습니다.

“투자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정보를 얼마나 아느냐보다
감정을 얼마나 다스리느냐가 더 중요했고,
남보다 빠르게가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가는 것이 결국 정답이었습니다.

시장은 언제나 변하지만,
그 안에서 버티는 법은 변하지 않습니다.
버티기 위해서는 욕심을 줄이고,
흔들릴 때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의 글

《증권맨 일기》는 여기서 한 챕터를 마칩니다.
하지만 시장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기술, 세대, 그리고 투자 문화가 등장하면서
또 다른 변화의 파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 장에서는 그 변화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10년의 기록이 보여준 과거 위에,
새로운 세대의 시장을 비춰보는 시선.
그것이 제가 앞으로 써내려갈 《증권맨 일기》의 다음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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